‘부수상인 등소평’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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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0]
1981년 2. 5 : 허담(외교부), 비동맹외상회의 참석차 뉴델리에 체류 중 성명 발표, 「세계비동맹운동이 제국주의자들의 침략 및 전쟁정책에 대항, 더욱 회원국들간의 단결을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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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0]
1971년 1. 4 : 노동당 중앙위 비서 양정섭, 최용건 병문안차 동독 향발(9일 귀환). 1.22 : 외무성, 미국이 인지 전역에서 「침략전쟁을 확대」하고 있다고 「성명」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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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후계자 부상(2)|병약한 김영주대신 정치훈련
박금철·이효순 사건의 여파가 진정된 것은 67년 말이었다. 그러나 반년도 지나기 전에 「김일성-김영주-다음세대」 후계구도에 대한 두번째 도전이 터져 나왔다. 이번엔 빨찌산 그룹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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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후계자 부상(1)
김정일은 1980년 10월 조선노동당 6차 대회직후 일약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등장,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임을 안팎에 과시했다. 70년대 후반에도 그의 권력부상 소문이 간간이 흘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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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사태 아니더라도 조자양 숙청
자오쯔양(조자양)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실각은 당내 보수파원로들에 의해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돼왔던 것이며, 지난봄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시위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는 다른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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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출당한 조자양|13년전 등신세 비슷
「자오쯔양」(조자양) 총서기의 실각은 당적만 남긴채 모든 당직에서 축출됐다는 점에서 76년 주자파로 몰려 일체의 당직에서 쫓겨났던 「뎡샤오핑」(등소평) 의 두번째 실각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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