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대신당 생긴다”… 휴일 대충격/숨가빴던 청와대ㆍ여야 표정
◎노대통령 신당의 총보스 역할 기대 청와대/제2의 6ㆍ29선언… 혁명적인 변화 민정/당내 중진 대부분 합류쪽으로 선회 민주/JP 구상 실현에 만족… 무조건 추종 공화 ○청와대 ○…
-
김대중 총재, 「안기부진술」내용 설명
김대중 평민당총재는 2일 기자들에게 안기부요원들과 만나 문 목사 방북에 관련해 자신이 진술했던 내용을 설명. 김 총재는 먼저 자신이 3월16일과 19일 두 차례 문 목사를 만났다고
-
풍랑은 일겠지만 민주항로 낙관 4당대표 신년회견
민정당 박준규대표위원은 「민주개혁완결」을 민정당의 89년목표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헌정사 40년여의 권위주의를 완전 청산하는데 기사년의 뱀같은 슬기와 지혜를 발휘하여 민주개혁 완
-
대표회담 주후반에나 가능
○…신민당의 이민우총재는 16일 3당 대표회담에 대해 『임시국회가 빨리 열려야 하는 만큼 서로 빨리 만날 수 있으면 좋겠으나 저쪽이나 우리나 당내 형편이 있는 것 아니냐』 면서 『
-
〃아무할말 없다〃김영삼씨 일체함구
〃잠안와 뒤척거렸다〃 ○…온양으로 잠적해버린 이민우총재는 8일 상오 7시쯤 잠자리에서 일어나 1시간여쯤 목욕을 한뒤 기자들과 아침식사를 함께 했는데 『잠이안와 뒤척거리기만 했다』면
-
〃대통령직선제는 신민당의 뿌리〃
○…전두환대통령은 6일 저녁 대한상의가 주최한 신년인사회에서 87년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강조한뒤 『지난 한해 보여준 우리국민의 저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올해도 열심히
-
여야 개헌협상 곧 본격화-「이민우 구상」놓고 대화분위기 성숙
개헌정국이 타협국면으로 들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이민우 구상」을 민정당이 적극적으로 평가, 7가지 선행조건에 대한 협상 용의를 밝히고 전면적인 대야대화를 추진하고 있으
-
서울 개헌대회 「태풍의 눈」으로
신민당의 서울대회 개최를놓고 정부·여당이 단호한 저지와 전면봉쇄방침을 확정한데 반해 신민당은 예정대로 29일 여의도광장에서 이를 강행할것을 다짐하고 있어 정국의 긴장이 급격히 고조
-
시국수습 위한 결단 역설
청와대 3당대표회동에 앞서 열린 30일 상오의 확대 간부회의에서 신민당 간부들은 29일에 있었던 정부·여당의 정책조정회의의 내용이 당초 기대보다 별 내용이 없었다고 보고 실망을 표
-
내일 3당 대표회동
노태우민정당대표위원과 이민우신민당·이만섭국민당총재가 참석하는 3대대표 모임이 이재형국회의장 초청으로 29일 저녁 여의도국회의장공관에서 열린다. 이의장은 28일 상오 김동영신민당총무
-
전대통령·3당대표 내일 회동
전두환대통령은 2일 낮 노태우민정당대표위원, 이민우신민, 이만섭국민당총재를 청와대로 초치, 오찬을 함께 하며 이번 미국방문결과에 대해 설명한다. 심명보 민정당대변인은 전대통령이 직
-
"재출발" 닷새만에 백기
전당대회에서 총재를 뽑고 재출발을 다짐한지 닷새만에 민한당이 내외의 압력에 못 이겨 백기를 들고 신민당에 흡수통합 됐다. 지난 4년 간 제1야당을 지탱하던 민한당이 2·12총선거
-
대세는 "우리손으로 총재한번뽑자"|현장대결 벌인 민한당 전당대회
민한당은 야당사상 드물게 아무것도 예정한것 없이 29일 전당대회를 맞았다. 각파간에 아무것도 사전조정이 안된채로 3가지의 당헌개정안과 3명의 총재경선자가 나와 모든 것을 대의원의
-
지자제합의에 야「완봉승」표정
지자제실시시기를 삭자로 밝힐수는 없다던 민정당은 23일의 3당3역 회의에서 마침내 지자제실시의「87년」카드를 내놓아 5개정치의안을 일괄타결하고 11일간의 국회공전사태를 정상화. 이
-
3당 총장 내일 회동
3당3역 회담의 합의에 따라 여야 영수회담이 전두환 대통령이 각 정당대표를 초청하는 형식으로 오는 11일께 청와대에서 열릴 것 같다. 민정당의 권익현, 민한당의 유한열, 국민당의
-
3당대표 내일회동
민정당의 이극형 대표위원, 민한당의 유대송 총재 및 국민당의 김종철 총재는 7일 저녁 플라자호텔에서 3당대표 만찬을 겸한 요담을 갖고 정치현안에 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8일
-
문세광 송치의견서|박 대통령 저격사건 총결산
가. 문이 김호룡에게 포섭 당한 경위 ①7·4남북공동성명 직후인 1972년9월3일경 대판소재 「페스티벌·홀」에서 민단과 조총련이 회동하여 단합대회(공동대회)가 열렸을 때 문세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