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6·25 20주 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북과 남의 형세(1)
이번 회부터는 북과 남의 형세 부제로 6·25직전의 북괴와 우리 한국의 실정을 비교 대조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결론부터 한마디한다면 여기에는 북괴의 빈틈없는 남침준비와 우리측(
-
(37)6.25 20주 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가장 길었던 3일(37)
(4) 한강교 폭파는 결과적으로 사후약방문격이 됐지만 마지막 순간에 가서 또 한번 연기될 뻔했다. 28일상오 l시40분쯤 채병덕소장이 육본을 빠져나간 후 서울에서 사실상 참모총장
-
13회 연장전끝에 무승부|청룡기 야구
대구상고와 배문고는 16일 저녁 서울운동장에서 나이터로 열린 청룡기쟁탈 제25회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치열한 투수전으로 장장 3시간10분동안 13회까지 연장전을 벌였으나 0-
-
(28) 금은의 반출(상) 가장 길었던 3일(28)|6·25 20주 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
6·25의 서울 엑서더스(대탈출)에는 국가경제의 바탕이 되는 정부보유 금은의 반출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하마터면, 당시 한은에 보관중인 1t반(현싯가 12억8천1백만원)의 지금
-
두 독일인, 금괴대량밀수
치안국외사과는 30일하오 6시40분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대규모 국제금괴밀수단의 한국운반책인 독일인 후너·바흐씨(46)와 귄터·루트비히씨(29)등 2명이 대량의 금괴를 밀수입
-
(25) 가장 길었던 3일 (25)
한 나라가 외침을 받아 수도가 함락 직전에 놓였을 때 국가의 상징이며 민족의 구심점인 대통령의 일거일동이 그 나라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재기할 기회가 있는
-
각고 12년... 인기의 정상에 오른 김 시스터즈 멀고 서러웠던 「영광의 길」
12년만에 모국을 찾은 김 시스터즈 3자매가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보컬·트리오로 성장하기까지에는 갖은 고생과 피눈물나는 노력이 뒤따라야만 했다. 조선호텔 15층 특실에 여장을 푼
-
(14) 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영친왕의 손아랫사람으로 영친왕이 항상 가엾게 생각하는 인물이 또 하나있었으니 그것은 8·15 해방직전에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에 죽은 이우 공이다. 이우 공은 고종황제의 둘째 아드님
-
본사 사회부 눈에 비친 그 실례
지난해 9월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하기 위해 70만원의 뇌물을 주려던 무면허의사 정경식씨(55)를 검찰에 고발한 국립보건연구원 고시과장 이충식씨는 모범공무원으로 매스컴의 각광과 함께
-
억대의 모사밀수
【부산】21일 부산세관은 l억원상당의 수출용원자재를 면세도입, 전량을 시중에 팔아먹은 뒤 가공 수출한 것처럼 수출 면장 등 관계서류를 위조, 5천만원의 관세 담보금마저 빼내려던 서
-
(18)|가장 길었던 3일(18)|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
미국 시간으로 25일에 트루먼 행정부나 유엔이 취한 조치에는 북괴군에 대해 어떤 군사적 제재를 가하는 결정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제1 회 블레어·하우스 회의에서는 다만 한국에 있
-
(3)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패전 직후의 일본사람의 생활이란 비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공습으로 도시라는 도시는 모두 잿더미가 된데다가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으니 당시 9천만에 가까운 일본국민도 꼭
-
25시간 간직한 영친왕의「촌지」
영친왕의 빈소가 마련된 악선재에는 정부고관에서부터 백립에 휜 두루마기를 입은 무명의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비운으로간 황태자의 마지막 길을 추모하기 위한 조객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
(14)가장 길었던 3일(14)|「6·25」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
6월25일 아침부터 28일 새벽 2시반에 한강다리가 폭파될 때까지 서울시경 산하의 5천여 경관이 어떻게 움직였는가를 당시의 몇 시경찰관들의 증언을 통해 다시 알아보자. ▲이계무씨(
-
화폭에 살아난 충무공 이순신
28일은 이충무공탄신 4백25주년. 이날을 며칠 앞둔 아산 방화산아래 현충사 앞뜰에는 봄꽃이 환하게 피었고 참배객들의 울긋불긋한 행렬이 종일토록 끊이질 않는다. 현충사를 성역화하여
-
(11)|(11)|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
합동통신사회부의 이우태 기자 (현 신민당 중앙위원·47)는 25일 상오8시 을지로 입구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후암동 집을 일찌감치 나와 정릉에 있는 친구한테 놀러 가려고 동대문행
-
(7)가장 길었던 3일(7)
25일 밤늦게 조지훈(시인·고대교수·고인)씨는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 가친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문이나 라디오에서는 연방 전황이 좋다고 보도하지만, 26일 하오부터 이미 고대
-
「날림」이 부른 참사|와우 시민 아파트 도괴
8일 이른 아침의 와우시민「아파트」단지는 『쾅. 와르르…』하는 굉음과 함께 육중한 5층「아파트」가 무너져 내리면서 삽시간에 피와 울부짖음이 뒤범벅이 된 수라장이 됐다. 대부분 영세
-
JAL기 피납 김포서 40시간
1일 하오 2시 20분부터 2일 상오 7시 30분까지의 관제탑과 피납 JAL기의 기체 내부와의 교신내용을 시간에 따라보면 다음과 같다. ◇1일 하오 2시 20분 ▲「하라다」JAL
-
기협서 강연하게된 유 당수
1월 전당대회에서 당수로 뽑힌 후 공식적으로는 일체 입을 다물었던 유진산 신민당 대표는 3월 들어 5일께 첫 기자회견을 갖고 10일에는『한국야당의 어제와 오늘』이란 연제로 기자협회
-
「붉은 지옥」을 증언한다.(상)
1969년 12월 11일 낮 12시 25분. 서울을 향해 강릉비행장을 떠난 KAL 소속 YS·11기는 예정보다 약간 늦게 이륙했다. 기체가 안전 고도를 잡고 서울로 향해 나는 줄
-
"목메어 부른 「가고파」합창"
북괴에 억류된 65일은 공포와 초조에 싸인 나날이었다. 북괴의 억류에서 풀려 자유의 품에 안긴 귀환자 39명은 15일 하오 3시 당국이 마련한 기자회견을 통해 납북경위, 억류생활의
-
(10)어린이 유괴|마수에 걸린 새싹 1,863명
지난 10년만큼 어린이 유괴사건이 잦은 때가 또 있었을까. 서울의 「조두형군 유괴사건」 (62년9월10일), 대구「유수남군 사건」(63년3월), 서울의 「김희규군 교살사건」(63년
-
(7)3선 개헌-국내
69년의 정치를 뒤흔들어놓은 3선 개헌은 71년을 향한 시련의 서막이었고 그 후유파동운 70년으로 여울지고 있다. 『나는 여야정치인의 논쟁의 초점이 되고 있는 개헌문제를 통해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