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제66화 화교(54)
한국전쟁이 났을 때 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서울왕십리에서 경화루를 경영하고 있었다. 이밖에 부근에 간장공장(덕천장유)과 마포 경기공고옆에 배갈공장(은주주조공장)도 갖고 있었다.
-
국회본회의 질문·답변 요지
권의 신임문제=지난번 선거에서 엄청난 권력과 금력을 총동원하고도 공화당정권이 꽤 국민으로부터 불신임당하는 득표밖에 할수 없었다. 그이유를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한다. 그 이유는 첫
-
왜관지구 전적기념관 6·25「3년동란」…"피의 발자국"이 한눈에
『영령들이여! 우리는 보았노라, 들었노라, 기억하노라. 이곳 낙동강기슭에 남긴 그때 그날의 거룩한 희생을, 고귀한 피의 발자국을 우리겨레는 영원히 소중하게 간직하리라』-.「낙동강방
-
최초의 아파트 「유림」일부 철거 도로확장에 밀려…30년에 건립
우리 나라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유림「아파트」(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3가 250의6·사진)의 일부가 충정로 확장공사로 헐리고있다. l930년 일본인 「도요따」씨 (풍전종송)가 세워
-
남몰래 논두렁도 많이 다녔지요…|내가 모신 박 대통령 박종규(전 대통령경호실장 10대의원당선·공화)
박정희 대통령은 27일 제9대대통령에 취임, 새로운 6년 임기를 시작했다. 80년대에는 고도산업사회건설을 통해 기필코 복지국가를 이룩하겠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포부이자 시정목표.
-
『다큐엔터리 최은희』출간|이기봉씨가 실종내막등 추정
□…배우 최은희씨의 실종내막을 파헤쳤던 『다큐멘터리 최은희』가 단행본 새제목 「사랑방손님과 어머니」가탈이 되었다로 출간됐다. 『다큐멘터리 최은희』는 최씨실종직후 「주간중앙」에 연재
-
의관 전투지역
【대전】왜관지구 전적비와 기념관(경북칠곡군석적면중지동)이 완공돼 30일 상오 준공식을 가졌다. 이 전적비와 기념관은 교통부의 6·25 전적지 개발계획에 따라 총 사업비 2억1천33
-
6·25때 노획, 미국으로 건너갔던|김일성 승용차 곧 서울에
6·25때 북괴 김일성이 독전차 서울을 거쳐 왜관까지 타고 다녔던 것으로 알려진 소련제 「리무진」승용차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유엔」참전국협회의 지갑종 회장은 지난주에 「뉴
-
작전지휘권 공동 행사|새로 발족된 한미연합사의 기능
한미연합사(CFC)는 한 미군 지휘관과 참모가 동률로 참여하고 만장일치에 의해 한국군과 주한미군에 대한 작전 통제권을 행사하는 새 사령부다. 한국의 입장에서는6·25이후 대전 협정
-
어느 사형수의 기구한 사연|"나는 살고싶다"|사형선고… 6·25…석방… 또 사형선고 본인은 멋모르고 14년간 사회생활|48년 살인누명 구속
제대로 재판도 받지 못하고 사형이 확정된 한 사형수-. 사형수가 된것도 모르고 14년동안이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했다. 뒤늦게 붙들려 재심을 요구했으나 29년전의 1심 재판 기록이
-
남기고싶은 이야기들 「미국의 소리」
「미국의 소리」에서 25년간 근무하면서 나는 수천명의 국내외인사들을 만났다. 대개는 취재와 대담 「프로」를 위한 「인터뷰」였는데 그 가운데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도 많다. 6
-
구구식 소총서 「미사일」까지 건군30년…한국군사력 어디까지 왔나
건군30년을 맞은 국군은 이제 「성년」을 지나 「장년」이 됐다. 국방경비대로부터 출발해서 6·25를 겪고 30년을 자라는 동안 국군은 한대도 없어 쩔쩔매던 전차를 직접 만들게 됐고
-
6·25의 상처
6·25가 터지기 전의 일이다. 1950년1월9일, 전국의 종합병원장과 서울시 의사회간부 48명은 육군군의학교(경기도 부평 소재)에 들어갔다.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서다. 6·25를
-
짓밟힌 『프라하의 봄』10주년-「나토」엔 날벼락…소군 침공
「바르샤바」조약기구 군의 「체코」침공 10주년(8월20일)을 맞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사령부는 정보판단 착오와 소련의 평화공세를 쉽게 믿은 실수에 대해 자가비판을 하고 있다고
-
(하)|격전장과 책 속의 역사-노병과 신병의 대화
6·25의 격전장을 누볐던 노병 조복원 준위(49·육군2378부대본부)와 신병 허봉성 일병 (23·명지대법과재학·2378부대경비소대)이 대좌했다. 노병은 28년 전의 상흔 담긴 과
-
(상)|적정 종합 판단서
「적정 종합 판단서」-. 육군 본부 정보국의 작전 정보실이 작성, 49년12월28일자로 상부에 보고한 군사 정보 기록이다. 6·25 발발 6개월 전에 적의 남침을 예고한 이 판단서
-
6·25때전우 추념식 스미드부대 장병들 죽미령 기념비앞서
6·25동란때 미국지상군으로 제일 먼저 참전, 북괴군과 최초로 전투를 벌였던 「스미드」 특공대인 미제25사단 제21보병대(당시제24사단소속)는 「팀·스피리트78」 한미연합작전 훈련
-
「브라운」국방 보고
「브라운」미 국방장관의 국방보고는 주한미군의 장래문제와 대한지원에 관해 대체로 지난해 한미안보회의의 결정사항과 별다름 없는 입장을 재 천명했다. 80년 이후에 가서도 미2사단의 상
-
국회예결위 질문·답변 요지
▲김용환 재무장관=부가세의 실무·기술적인 것 한두 가지를 고치면 더욱 편리하겠으나 안 고친다고 제도 정착에 크게 불편한 것은 아니다. ▲이선중 법무부장관=한국「플라스틱」의 한기태
-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 다큐멘터리로 영화화
한국 기독교에서 대표적인「예수의 행적」을 남긴 것으로 널리 알려진 활석 손양원 목사(사진)의 일대기가 영화화되어 본격적인 기독교 선교영화로 10월에 개봉될 예정이다. 6·25동란
-
미 6·25대 한국망명정부 수립 계획
【워싱턴8일 외신종합】미국은 한국동란 (1950∼53) 초기에 「유엔」군이 적에게 압도당할 경우 한반도로부터 한국정부를 철수시켜 모처에 망명정부를 수립할 것을 고려했던 것으로 8
-
(하)숙군에 앞장선 대남 강경파가 주도|강재윤
지금 북괴군의 실력자는 오진우다. 6·25때 사단장이던 그가 군부 1인자가 된 과정에서 군부의 성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김일성이 당료 파(이효순 박금철 김도만 등)를 숙
-
유월 이십 오일
27년이 흘렀지만 우리에게 6·25는 한낱 지난날의 역사가 아니다. 지금도 지울 수 없는 악몽으로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우리는 이 악몽으로부터 우리의 삶을 해방시켜야만 한다. 그
-
(상)강재윤
북괴 노동당 규약에 의하면「군은 당의 혁명적 무 장력」이 된다. 이것은 당이 혁명정신을 세우기 위하여 군이라는 무 장력을 수단으로 삼는 무력혁명의 본색을 명백히 한 것이라고 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