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남 전략에 이용하려 석방"
북한억류 2백89일만에 풀려난 어선 해왕호선원 23명은 귀환 9일만인 21일 상오 전국 항운 노조 인천지부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살까지 시도했던 억류생활의 나날을 되새기며 자
-
두 얼굴을 가진 다리|경남 의령과 함안군 잇는 정암교|교각·다리모양 각각
경남의령군과 함안군을 잇는 정암교가 균형을 잃은 듯한 모습으로 45년 간을 버티고 서 있어 이곳을 지나는 외래인 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현지주민들에 의해 「솔 바위다리」라 불리는
-
해왕6·7호 내일새벽 인천에
북괴에 납치됐던 해왕6,7호와 선원들이 돌아왔다. 해왕6,7호는 11일 낮12시50분 백령도 서쪽 6「마일」 해상에서 우리해군구축합의 호위를 받으며 인천항을 향해 항해 중이다. 해
-
북괴피납 해왕 6,7호 선원 선체 반환 북괴 중앙통신 '9일 정오 남포항 출발했다 24명중 선장은 부상 사망했다'고만|석방인원수는 안 밝혀|오늘 자정 늦게 도착, 가족들 인천서 마중
북괴에 납치됐던 우리 어선 해왕 6.7호와 선원들이 돌아온다. 북괴는 9일 지난1월 납치했던 두 배와 선원들이 9일 정오 남포항을 띠났다고 북괴 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두
-
건군과 국사 방위에 바친 일생
육군의 거성이던 송요찬 장군. 뜻하지 않았던 송장군의 부음은 비통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놀라움과 슬픔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온 겨레의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거성은 갔지만
-
우리가 만든 무기로 뭍과 바다와 하늘을 지킨다-32돌「국군의 날」을 통해 본 장비 국산화 현황
『「탱크」를 향해 육탄돌격을 감행했다. 어떤 병사는 장약 주머니를 들고 「탱크」밑에 뛰어들었다. 또 다른 병사는 기다란 보자기에 화약심지를 꽂고 불을 붙여 돌격했다. 결사적으로「탱
-
김대중 사건 논고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심판관 및 법무사님, 연일계속 된 재판일정 속에서도 피고인들에 대한 방대한 양의 공소사실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신중하고 소상하게 심리하여 주신데 대하여 감
-
내가 아는 전두환 장군 |청년 장교 때부터 지휘력 뛰어나|자상하나 의리 저버리면 서릿발
새 역사 창조에 신명을 바칠 것을 겨레 앞에 서약하고22일 예편한 전두환 장군은 민주복지국가와 정의사회의 구현을 자신의 국가 경륜으로 제시했다. 10·26사태 이전까지 만해도 장군
-
전두환 대장 전역서 전문
장관님, 합참의장님, 각 군 총장님, 내의 귀빈 여러분, 그리고 친애하는 장병 여러분-· 나는 오늘 지난30년 간 정들었던 군을 떠남에 있어 과거를 향한 숱한 감회와 미래에 대한
-
김대중 등 24명 공소장 전문
죄명 가, 내란 음모 나, 내란 선동 다, 계엄법 위반 라, 계엄법 위반 교사 마, 국가보안법 위반 바, 반공법 위반 사, 외국환 관리법 위반 ※이름·나이 직업·죄명 순 ◇피고인등
-
제4차 통화교환
제3차 통화교환 조치에는 은행점포68개, 금융조합점포2백39개, 총사원3천7백50명. 연인원3만7천5백명이 동원되었다. 교환액은 전체교환액의 32%에 해당하는 2백34억2천9백만원
-
(상)전후세대의 안보관|"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다"…월남의 비극 통해 절감
동족상잔(동족상잔)의 처절함을 말로만 전해 들어온 전후세대들-. 그날의 비극을 실제로 체험하지 못한 서른 살 미만의 이들 젊은 세대는 전후에 밀려들어온 서구의 물질문명과 자유분방한
-
상이용사30여명 30년을 병상에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30돌. 30년간 병상에서 전상(전상)을 달래는 전쟁상이자들에게는「6·25의 비극」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아직도「현실」이다. 6·25 30돌인 25일 국립원호병
-
(중)증인들이 말하는 비극의 현장|밀고밀린 3년…산하도 모습을 바꿔
한세대를 마감하면서 6·25그날을 다시 맞는다. 낙동강을 배수진으로 압록강까지, 밀고 밀린 3년여. 수도서울을 두번이나 빼앗기고 뺏으면서 강마다 봉우리마다 삼천리강토는 피로 물들었
-
(상)"무쇠덩이" 남침에 "맨주먹"뿐이었다
한국전쟁발발 3O주년-. 1950년 6월25일 새벽4시. 유난히 안개가 자욱했던 서해안 옹진반도로부터 서해안까지의 3백km 38선 전역에서 북괴는 소제T-34종[탱크]를 앞세우고
-
(2848)-제68화 개헌비사 제삼공화국개헌(85)펜을 놓으며…
필자는 그동안 제3공화국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나는대로 간추려보았다. 얘기를 끝내려고하니 미진한 점이 한둘이 아닌것을 느끼게 된다. 특히 당시의 사진들을모두 모아
-
아무리 튼튼한 요새라도 내부에 금가면 무용지물…|국가안보…현충일에 생각해본다
좌담참석자 신응균 대한재향군인회 부회장 유희숙 대한전몰군경 미망인회 사무국장 정승희 한국여성사격연맹 회장 최태호 대한상이군경회장 6일은 스물다섯 번째 맞는 현충일. 나라 안팎이 어
-
정보부장 서리에 전두환 중장
최규하 대통령은 14일 전두환 육군중장을 중앙정보부장 서리로 임명, 이날 하오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주었다. 전두환 신임 중앙정보부정 서리는 현역 육군중장으로서 현재 맡고 있는 국군
-
서부전선 간첩잡은 황중해일병과 김범규이병|30m밖 접근 기다려 M-16 불 뿜어
『어슴푸레 비치는 강물위로 처음에 한사람이 솟아 올랐을땐 작전훈련중인 우리해병대 장교인줄 알았읍니다.』23일 새벽2시50분 최초로 3인조 북괴무장간첩을 발견, 당황하지 않고 3명을
-
정승화전육참총장 군재
◇사안의 진상 이건에 있어서는 무엇이 진실인가, 공판진행과정에서 밝혀진 사안의 진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이건 공소사실에 의하면 피고인이 1979·10·26 대통령시
-
정승화 전 총장 15년 구형
정승화 전 육군참모중장 겸 계엄사령관(51)에게 15년형이 구형됐다. 국방부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 검찰관 원강희 중령은 11일 하오2시 국방부 법정에서 열린 정 피고인의 내란 방
-
(2)|내각책임제론의 대두
발췌개헌안파동을 말하기에 앞서 당시의 국내 경치 정세를 좀더 설명해야할 것 같다. 50년「6·25」사변이 발발했을때 그 해 5월30일에 선거를 치른 제2대 국회는 첫 소집지인 불과
-
6·25참전용사/「위안의밤」성료/2백여명 참가
「주한6·25참전용사 위안의 밤」이 21일 하오6시「호텔신라」2층「다이너스티·홀」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주영복국방부장관을 비롯, 유병현합참의장, 3군참모총장·차장등 현역군고위장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제66화 화교 (56)|??광
유국화씨가 한국으로 온 것은 6·25전해인 49년3월이었다. 이때 중국본토와 만주는 모택동의 중공군이 거의 석권하고 있었다. 유씨는 이들에게 반동분자로 몰리게 됐다. 중앙군(국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