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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우정 80년|강직순
필자 강직순씨 (69)는 1919년 체신국 전신 사무원으로 체신계에 발을 디딘 이래 보험 과장, 남원 우체 국장, 인천 우체 국장, 부산 체신청장을 역임하고 1949년 제3대 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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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70만 교포 성공과 실패의 자취|미주(5)|한국상품 파는 백화점주 남궁봉씨|【로스앤젤레스=김석성 순회 특파원】
로스앤젤레스 시 남쪽 고속도로로 약 1㎞쯤 차를 달려 맨치스터라는 곳에 이르면 트레이드·페어라는 이름의 백화점이 있다. 입구에 높이 10m가량의 드높은 아크릴선전 간판이 유난히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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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은 누가 많이 내나|국세청 발표 70년도 고액납세자 랭킹
국세청은 3일 70년도 고액납세자명단을 법인·개인 및 업종별로 구분, 발표했다. 최고액 납세법인은 국영기업체인 석유공사로서 직접세 17억4천만원과 간접세 1백49억원 등 모두 1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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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평화다."사다트 뉴스위크지 회견서 밝힌 협상 조건
편집자주=이집트는 야링 유엔 특사의 집요한 중재 노력 끝에 중동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 제의를 최근 발표했다. 가자 시나이 지역엣 이스라엘 군이 철수하고 접경지대에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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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선물
그날 따라 날씨가 맵싸하고 바람이 불어 얇은 신부 「드레스」가 춥지나않을까 염려하던 일도 이젠 지나가 버리고 남의 아내가 된 아기씨는 지금쯤 신혼여행을 즐기고 있을 시간이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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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투신·익사를 구하는 『한강의 파수』
생목숨을 고기낚듯 강물에서 건져주며 살아온 반생이었다. 한강 중지도에서 올해 꼭 18년째 잉어를 낚으며 살아온 최윤길씨(64·서울영등포구본동산3)는 지금까지 한강인도교 난간에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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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중앙문예 당선 소설|사당
그것은 캄캄한 마을에서 들려온 소음에서 비롯했다. 처음에 가위눌린 듯한 젊은 여인의 외마디 비명, 뒤이어 그 소리는 곡성으로 변해가다가 야무진 남자의 질타소리로 뚝 그치고, 문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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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신여성 교육 (8)|서은숙
우리 나라 여성으로서 최초의 외국 유학을 갔던 분은 하난사 선생이었다. 선생은 미국 「오하이오·웨슬리언」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귀국, 3·1운동 직전까지 10여년간 이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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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분석과 해소 방법|안방에도 피로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호소해 오는 축적된 피로는 육체적인 원인에서보다는 피로의 80%가 거리의 소음, 과도한 경쟁, 긴장감,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생활, 그리고 운동부족에서 온다. 이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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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영친왕 내외분은 l945년 4월에 은혼식을 거행하였으므로 꼭 4반세기만에 금혼식을 하게된 셈인데 1945년은 태평양전쟁 말기 즉 해방이 되던 해로 동경은 B-29의 공습으로 폐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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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해방에서 환국까지
장면총리의 회한-. 영친왕 전하 옥안 하 천만몽외로 축하의 서한을 배승하오니 감패불망이오며 4·19혁명은 불의와 부정에 대한 민중의 분노와 항거가 마침내 혁명으로 결실된 것이 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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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당시 영친왕이 귀국을 주저하게된 또 한가지 이유가 있었다. 소위 왕위계승 문제였다. 봉건시대와 달라서 군주가 직접 정치를 하는 것도 아니요, 1910년 한일합병과 더불어 왕실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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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종홍·장숙진씨 내외
「백년해로」의 가연으로 맺어져 한 지붕 밑에서 고락을 같이하는 부부―. 이들이 엮어 가는 「가정」은 사회의 기본단위며 국가의 원동력이다. 이 「시리즈」는 본지 3일자(지방은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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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셈을 세는 버릇이 있어서 이제 반백이 되는 나이에도 길을 가다가도 우두커니 서서 올라가는 고층건물의 층수를 세기가 일쑤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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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이탈은 자아발견서
「가톨릭」신부들이 성직을 버리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교회당국과 일반신도들은 다같이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한때는 공식적으로 비밀에 붙여 두었던 신부의 성직이탈이 늘어감에따라 요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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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8·15 해방이 되어 독립만세의 우렁찬 소리가 3천리 방방곡곡에 소용돌이칠 때 무엇보다도 먼저 필자의 머리에 떠 오른 것은 해외에 있는 망명영수들의 모습이었다. 미국의 이승만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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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안보기구 창설제의
소련을 비롯한 「바르샤바」조약국가들은 지난 21, 22일 양일간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바르샤바」조약기구외상회의 끝에 취해진 새로운 조치로서 27일에는 정식으로 미국과「캐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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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해방에서 환국까지
평소에는 아무 말이 없고 웬만한 일은 다 순순히 양보하던 영친왕이 구라파여행에 한해서만은 그같이 강경히 주장하여 『누가 무어라 하더라도 나는 꼭 가고야 만다』는 태도를 보인 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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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해방에서 환국까지
영친왕의 결혼식이 동경에서 거행될 무렵 서울에 계신 순종황제는 매우 섭섭하게 생각하여 일본에서 결혼식이 끝나거든 곧 귀국해서 한국식으로 다시 식을 올리자고 하셨으나 일본 궁내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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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영친왕의 손아랫사람으로 영친왕이 항상 가엾게 생각하는 인물이 또 하나있었으니 그것은 8·15 해방직전에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에 죽은 이우 공이다. 이우 공은 고종황제의 둘째 아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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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그와 같이 해방 직후에 연합군 최고사령부에서 영친왕을 특별히 잘 보호해준 일이라든지, 1·4후퇴 때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나이 많은 상궁들만 데리고 오도가도 못하게 된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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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서 각광받는 「과학사」
지금 미국학계에서는 「과학사」라는 새로운 학문이 각광를 받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과학사가로 자처하는 사람은 점성가가 대학강의를 맡으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푸대접을 받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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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연구실
지난 25일에 있은 고대 졸업식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은 박성의교수(53·고대민족문화 연구소장)는 다음날 아침에도 그의 연구실에 앉아 있었다. 박 교수는 모교이며 재직중인 고려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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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로장수의 꿈과 실험보고|동경대학 병리학박사 서방지삼랑씨
나는 금년에 만87세인데 동경에서 출생했다. 원래 서방가는 결코 장수하는 가계는 아니다. 예를들어 조부인 홍암은 의학소 (현동대의학부)의 두취(현학장)로 있던 1863년 돌발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