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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3)|내가 아는 박헌영(172)-박헌영계 숙청
이승엽「그룹」에 대한 재판은 1953년 8월 3일에서 6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되었었다. 재판장은 김인선이며 담당판사는 방용숙·박영호였다. 검사 측은 명사부총장 김동학이 참가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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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없는 소년
16세 소년의 살인강도사건에 이어 연달아 일어나고 있는 요즘의 소년범죄는 우리사회를 울리는 거다란 경종이 아닐 수 없다. 소년들의 범행 동기가 명절을 앞둔 가난과 고독에서 빚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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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8)|내가 아는 박헌영(157)|박갑동
김일성은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온다 온다는 중공의 원병은 오지 않고「유엔」군은 38선을 넘어 질풍과 같이 쳐들어오는 것이었다. 모택동은 김일성에게『기본방침은 구원병을 파견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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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제31화 내가 아는 박헌영(150)
6월28일 서대문형무소에 가서 방방이 다 들여다봐도 이미 벌써 다 뛰어나가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며 다만 「알루미늄」의 식기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소공동에 있는 정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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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제31화 내가 아는 박헌영(149)|박갑동
나는 6월26일「라디오」방송에 의하여「유엔」이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군의 공격을 침략이라고 인정하며 38선 이북으로 철퇴를 요구하는 결의를 한 것을 알았다. 그리고 27일에는「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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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제31화 내가 아는 박헌영(140)
경북 팔공산의 「빨치산」을 서울로 소환하여 체포된 김삼룡의 탈환공작을 할 계획이 불가능하게되자 나는 나의 의견을 정태식에게 이야기하였다. 『조급히 서둘러서는 안됩니다. 김삼룡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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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3)|제31화>내가 아는 박헌영-성시백의 영향
47년5월에 남파된 성시백이 50년5월10일 ,검거될 때까지, 서울에서 벌인 그의 활동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평가될 것이지만 그의 풍부한 정보계통에서의 경험 등으로 수준급 이상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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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적 통해서 박 만나러 상경했으나 라이벌파인 이정윤 아지트로 안내돼
죽창훈련을 받으러 가는 틈을 타 도망칠 기회만 느리다 해방이 됐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한동안 멍했다. 그러나 기뻐할 수 만은 없었다. 복잡한 심정으로 밤 늦게 동네에 돌아와보니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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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싶은 이야기들(717)|제자 박갑동|제31화 내가아는 박헌영
국내에서 탈출, 용하게 소련으로 도망친 박혜영은「블라디보스트크」에 머무르마가 처 주세죽과 합께 「모스크바」에 갔다.「모스크바」에서 박헌영은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들어가 2년간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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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제31화 내가 아는 박헌영(33)박의 법정난동
첫날부터 풍파를 일으켜온 공판은 나흘째인9월20일(1927년)에 또 한가지 소동을 빚게 했다. 일경에서 사건을 취조하던 중 한양청년연맹집행위원이었고 당시 시대일보기자 이던 박순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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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제31화 내가 아는 박헌영(29)6월 사건
1926년4월25일 이조의 마지막황제였던 순종이 승하했다. 순종의 승하는 나라를 빼앗긴 민중의 슬픔을 한층 더해 돈화문 앞에는 3천리 근역 백성의 통곡이 그치지 않았다. 국장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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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싶은 이야기들(710) 내가아는 박헌영
신의주사건을 계기로 고려공산육영회의 비밀조직이 표면에 드러나자 신의주경찰은 아연 긴장했다. 신의주경찰은 그동안 일경구타사건에 관련해서 신민회 회원 18명을 모질게 취조했다. 그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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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비극적체험과 비극적형상화-현진건시고|전영태
불국사 석가탑에 얽힌 전설을 소재로 씌어진 『무영탑』에서, 원래 전설의 당나라 성공을 신라에 망한 백경의 석공 「아사달」로, 당나라 여인을 백제의 「아사녀」로 바꾼 것은 민족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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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제29화 조선어학회 사건
홍원경찰은 l943년4월 중순에 한글학자에 대한 고문과 학대로 꾸며진 조서를 겨우 끝냈다. 1월 하순부터 쓰기 시작한 조서가 만 3개월이나 걸린 것이다. 홍원경찰서는 조서결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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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1)제29화 조선어학회 사건(16)
일제경찰은 조선어학회의 기관지 「한글」의 발행도 물고 늘어졌다. 조선어학회 연구기관지 「한글」은 학회이름이 조선어연구회였던 1927년2월10일에 동인지로서 창간되었다. 매월 한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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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제자는 정인승|조선어학회 사건(12)
우리 세명 담배동지들의 담배도둑질은 귀신같았다. 홍원경찰은 예심조서를 꾸미기 시작하면서 다시 우리들을 바삐 끌어 내어다가는 볶아대었다. 그리하여 담배동지 세명은 하루에도 한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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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 조선어학회 사건|정인승
홍원경찰서에 끌려온 지도 석달이 넘고있었다. 밖에는 흰눈이 내리 쌓이고 찬바람이 스며들어 유치장 벽에 몸이 닿으면 아리도록 추웠다. 석달간을 취조했으나 이렇다할 범죄사실을 밝혀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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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8)정인승
취조관들이 밤사이 서로 모여 머리를 짤 대로 짜서 다음날 내놓은 심문이란『사건에 왜 임진왜란이라고 왜 자를 썼느냐』『동경이란 말을 간단히 설명하고 경성에 대해서는 왜 자세히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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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조선어학회사건(7)정인승
홍원 경찰서에서 우리 동지들이 취조를 받은 곳은 널따란 연무장 이었다. 우리동지 29명에 대해 10여명의 전담 취조반이 편성되어 넓은 연무장 마룻바닥에 띄엄띄엄 책상과 걸상을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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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조선어학회 사건(4)|정인승
정태진은 나와 연희문과 동창생이다. 미국에 유학을 하고 돌아와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조선어 사전편찬 일을 하자고 내가 제의하여 교편생활을 그만 두고 나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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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조선어학회사건(3)|정인승
북풍 찬바람에 몸이 오싹해지는 새벽에 기차는 함흥정거장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을 끌고 가는 형사들이 두런두런 귀엣말을 주고받더니 이극노 권승욱 그리고 나 셋만을 내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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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비난한 보충수업
문교부는 지난달 31일 중학교의 보충수업을 시정하는 방안을 마련, 각 시·도 교육위원회에 시달했다. 문교부가 시정방안을 마련하게 된 동기는 체력장 제 실시와 발을 맞추기 위한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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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적군파, 광란의 살인
【마에바시(전교)10일AP동화】일본경찰은 10일 일본역사상 최악의 살인사건이라고 알려진 일본연합적군파 『인민즉결재판』에서 처형된 3명의 시체를 동경북부의 한 산골짜기에서 추가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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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죄 없는 죄인」…교도관 23년 서울구치소 출정과 김선배씨
죄인이 아니다. 전과도 없다. 그러나 살아온 절반을 붉은 벽돌담으로 둘러싸인 감옥에서 보냈다. 흔히 죄 없는 죄수라 불린다. 요새말로 교도관이란게 그런 생활이다. 서울구치소 출정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