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64명에 훈장,표창

    지난달 19일 중동부전선 북한강상류에 침투했던 북괴의 3인조 무장공비를 소탕하는데 무공을 세운 장병들에 대한훈장,표창수여식이 5일 상오 육군 제2102부대와 제2032부대 연병장에

    중앙일보

    1976.07.06 00:00

  • 남우목표 탐지가 목적

    대간첩 대책본부는 5일 지난달5일 중동부 전선에 침투했던 무장공비는 북괴 전방전술부대에서 고도의 특수 정찰훈련을 받고 남파된3인조 경찰조로서 남침 공격목표를 탐지,분석하기위한 군사

    중앙일보

    1976.07.06 00:00

  • (5)박형훈 향군사무총장

    멸공전선에서 생명을 바쳐 싸우다 고향에 돌아온 예비역 군인들의 단체인 재경군인회. 박형훈 사무총장(54·육사2기·예비역소장)은 무더운 날씨도 아랑곳없이 3백30만 회원들의 친목 도

    중앙일보

    1976.06.25 00:00

  • 정 의장, 태국수상과 회담

    【방콕=이찬기 특파원】정일권 국회의장은 태국방문 3일째인 23일 상오 수상관저로「세미·프라모지」수상을 방문하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우리의 기본정책임을 강조하고 태국이 계속「유엔」에

    중앙일보

    1976.06.23 00:00

  • 3명 모두 사살 무장공비

    대간첩대책본부는 21일 하오 지난 19일밤 중동부 전선의 아군지역으로 침투해온 무장공비는 모두 3명으로 아군 수색대가 교전끝에 전원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대간첩대책본부에 따르면 침

    중앙일보

    1976.06.22 00:00

  • 무장공비 2명 사살 중동부 전선서

    대 간첩대책본부는 지난 19일 밤 중동부 전선에서 아군지역으로 침투해온 무장공비 2명을 사살했다고 21일 발표했다. 대 간첩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19일 밤늦게 중동부전선 남방 한

    중앙일보

    1976.06.21 00:00

  • 50년만의 「5월 강설」

    입하(입하)인 5일 강원도 내 중동부 전선고지와 설악산일대에 평균8cm의 눈이 내렸다. 5일 상오9시께 부터 하오1시까지 강원도산악지방에 내린 눈으로 설악산 일대는 15∼20cm,

    중앙일보

    1976.05.06 00:00

  • 북괴탱크 2대 비무장지대 침입

    주한「유엔」군 사령부는『지난 7일 비무장지대 북방한계선남쪽 2백50m지점에 북괴전차 2대가 출현, 8일 북괴측에「메시지」를 통해 이를 조사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9일 하오 발표했다

    중앙일보

    1976.04.10 00:00

  • 북괴, 휴전선 전역서 대남 비방방송재개

    정부는 북괴가, 휴전선 전역에서 대남 비방방송을 재개하면서『무력에는 무력으로 맞선다』는 등 종래에 없던 자세를 나타낸 것을 중시, 이에 대한 대응책을 짜고 있다. 24일 정부당국에

    중앙일보

    1975.01.24 00:00

  • 김 총리, 전방 위문

    김종필 국무총리는 9일 상오 서종철 국방장관과 이현진 국가 안보 회의 사무국장을 대동하고 서부 및 중동부 전선의 군부대를 시찰, 장병들을 위문했다.

    중앙일보

    1975.01.09 00:00

  • 전방 고지 부대에 꿩 사육 7백 마리

    장병들의 생활 실습을 겸해 군부대 최초로 대규모 돼지 사육에 성공했던 육군 제2032부대가 험준한 산악에서 다시 꿩의 집단 사육에 성공했다. 창설 25년의 이 부대는 「상승 칠성

    중앙일보

    1974.12.02 00:00

  • 아랍석유상회의 개막

    【트리폴리 (리바아) 외신종합】 대미단유 해제문제를 둘러싼 「아랍」 산유국들간의 의견대립이 대미단유를 50%정도 완화시키는 방향에서 절충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도는 가운데 「아랍」

    중앙일보

    1974.03.13 00:00

  • (489)-미결의 종장(4)

    1954년 6월15일, 이날 「제네바」회의는 6·25 전쟁과 관련된 한국 문제를 정치적으로 타결할 가망이 없다는 것을 공식으로 선언하였다. 이는 곧 국토 분단선의 이름이 38선에서

    중앙일보

    1973.07.27 00:00

  • (488)|미결의 종장(3)|제네바 정치회의(3)

    1954년1월25일부터 베를린에서 3주간 계속된 미·영·불·소의 4상 회의는 원래 독일과 오스트리아 문제가 주의제였지만 부산물로 한국문제의 정치 본회의 개최에 합의를 보았다. 약소

    중앙일보

    1973.07.25 00:00

  • (487)미결의 종장(2)|제네바 정치회의(2)

    53년 10월 26일부터 판문점에서 열린 정치예비 회담은 43일만인 12월 l2일에, 그리고 54년 4월 26일부터 제네바에서 막을 연 정치본회의는 50일만인 6월 15일에 각각

    중앙일보

    1973.07.23 00:00

  • (481)|인도군의 포로 관리 (6)|설득 설전 (2)

    공산 측은 53년10월15일에 가서야 겨우 반공 포로들에 대한 첫 설득 작업을 시작하였다. 설득 장소 시비로 3주간을 허송한 공산군은 우선 중공군 출신 반공 포로들의 귀환 회유에

    중앙일보

    1973.07.09 00:00

  • (472)휴전회담(후반부)(24)|한미관계의 긴장(4)

    6월25일부터 시작된 서울의 「소 휴전 회담」은 18일 만인 7월12일에야 일단락 되어 공동 「코뮤니케」가 발표되었다. 「아이젠하워」대통령의 특사 「월터·로버트슨」차관보는 처음에는

    중앙일보

    1973.06.18 00:00

  • (441)|전시의 문화인들(6)|해군종군작가단

    대구에 피난 온 문인들이 공군과 육군종군작가단을 만든 지 얼마 안되어 부산항도의 문인들은 해군정훈감실에 모여 해군작가단을 만들었다. 해군작가단의 경우 해군본부가 부산에 있는데다가

    중앙일보

    1973.04.04 00:00

  • (429)⑮|의무(1)

    6·25전쟁 3년 동안에 각 육군병원으로 후송된 부상자와 그 밖의 환자는 모두 70만 9천 9백 75명이나 됐다. 이는 월 평균 1만 8천 6백여 명 꼴이며 연도별로는 50년을 제

    중앙일보

    1973.02.26 00:00

  • (417)지원작전(3)|군수보급(3)

    부산항에 산적된 미 군수물자들은 다시 육로와 해상을 통해 신속히 전방으로 수송 됐다. 한국군에 대한 수송·보급은 주로 우리 육본 군수 국과 해군수송선들이 담당, 추진했다. 인사(G

    중앙일보

    1973.01.22 00:00

  • (344)동계 대 기동훈련| 힘의 연마 거듭하는 설원의 열기

    해발 1천m이상의 고지로 이뤄진 동부에서 평양행 길목, 임진강 어귀에 이르기까지 전전 선은 실을 에는 듯한 추위와 눈 속에 묻혀 조용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 전선에 깔려 있는 군

    중앙일보

    1973.01.13 00:00

  • 육군 동계 대기동훈련

    혹한기 적의 기습공격을 막기 위한 육군 동계 전선 대 기동훈련이 연초부터 중동부전선 일대에서 전개됐다. ○개전무단과 공수·유격 등 비정규특수전부대가 참전한 이 기동훈련은 육군이 계

    중앙일보

    1973.01.09 00:00

  • (412) 네델란드군 대대-우방 참전부대(13)

    「네덜란드」군 대대는 한국전이 벌어진지 5개월만인 50년 11월 23일 부산에 도착, 예비 훈련을 받을 사이도 없이 곧 전선으로 이동하여 많은 전투를 치렀다. 「네덜란드」는 식민지

    중앙일보

    1973.01.08 00:00

  • (404)|우방참전부대⑤|이디오피아 황제근위대

    「이디오피아」정부는 한국전이 일어난 다음해인 51년5월7일 황제 근위대의 일부 병력을 1개 대대로 편성, 한국에 파병했다. 한국참전 16개국 중 정예를 자랑하는 황제 근위대를 참전

    중앙일보

    1972.12.1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