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8)이방인 지대

    중앙우체국을 옆에 끼고 중국 대사관 담을 거쳐 「코스모스」 백화점으로 빠져나가는 명동 2가 83∼105번지 일대는 요즘도 아침이면 『니 하우마?』(안녕하십니까?)라는 중국말 인사가

    중앙일보

    1977.12.13 00:00

  • 동남아서 푸대접받는 화교들의 「한자신문」

    동남아의 2천여만 화교들에게 오랫동안 정신적 지주역할을 해오는 한편 이 지역의 언론계에 큰 영향을 끼쳐온 한자신문들이 정세의 변화에 따라 시련을 겪고 있다. 화교국인 「싱가포르」는

    중앙일보

    1977.07.02 00:00

  • 다양해진 민속놀이 대학축제|학교마다 숨은 전통예술발굴에 열 올려

    지난5월은 대학가에 축제가 풍성했던 한 달. 매년 대학마다 갖는 행사지만 각기 개성 있는 전통을 굳히려하고 특히 강령탈춤·부락제·옛마을 장터·바라춤·승무 같은 민속제가 그들의 축제

    중앙일보

    1977.06.01 00:00

  • 1인1효

    10년 전에 미국의 사회학자들이 지역별 범죄율을 조사한 적이 있다. 이때 가장 범죄율. 특히 소년범죄가 적은 곳이「샌프란시스코」의 중국인 지역과「뉴요크」의「브루클린」유대인 지역이었

    중앙일보

    1977.03.14 00:00

  • 주비화교 백만명에 마르코스, 귀화 종용

    【마닐라 26일 AP합동】「페르디난드·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26일 약 1백만명에 달하는 「필리핀」 거주 중국인들에게 「필리핀」 시민이 되라고 촉구하고 그들의 일부 지도자들

    중앙일보

    1976.11.27 00:00

  • 대만의 밀사

    백악관에서 가까운 곳에 「트레이더·빅」이라는 중국음식점이 있다. 닉슨」은 지난 72년에 중공을 방문하기 전에 여기서 중국음식을 익혔다. 73년, 중공의 외교관들이 처음으로 「워싱턴

    중앙일보

    1976.11.08 00:00

  • 위폐|진권과 똑같이는 못 만든다

    『10년전만해도 위조지폐가 나왔다하면 겁이 덜컥 났지만 요즘은 괜찮은 셈입니다.』 46년 조선정판사위폐사건도 은행에서 직접 겪어보았다는 한국은행 조남사발권부장의 말이다. 그만큼 지

    중앙일보

    1976.08.18 00:00

  • 비, 모든 화교 중공시민 간주

    【마닐라25일AP합동】「필리핀」에 거주하는 화교들은 앞으로 결혼하려면 중공에 대한 충성심에 관계없이「마닐라」주재 중공대사관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고「비센테·아바드·산토스」「필리핀」법

    중앙일보

    1976.06.26 00:00

  • 중국문화원 도서관 개관

    장서 1만권·열람실(30평)·시청각실(40평) 등을 갖춘 중국문화원 도서관이 고장개석총통 1주기를 맞아 지난4일 개관됐다. ▲한국친선 ▲음악 미술 영화 등을 통한 중국문화의 한국소

    중앙일보

    1976.04.09 00:00

  • "인정에 끌려 한국인이 되었읍니다"­귀화신청한 중국여인 손승방씨

    한국의 생활풍습과 인정에 끌려 한국인이 되겠다고 귀화신청을한 중국여인이 있어 흐뭇한 화재가 되고 있다. 법무부인권과 (과장 하일부검사) 를 통해 24일 법무부장관으로부터 대한민국

    중앙일보

    1976.03.26 00:00

  • 속속 귀국하는 자유중국의「해외두뇌」

    【대북=김영치 특파원】『자유중국이「뉴스」세계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렇다고 결코 초조해하지 않습니다. 와서 한번 보시면 자유중국이 얼마나「뉴스」가 많은 나라라는

    중앙일보

    1975.09.11 00:00

  • (1373) 제46화 세관야사(20)

    1950년3월1일 싯가 1천만원짜리 국보급 금부처가 김포공항을 통해 밀반출되기 직전 압수된 사건이 있었다. 이 금부처는 외교문서를 가장한 봉투 속에 넣어 공항검사대를 빠져나가려

    중앙일보

    1975.06.26 00:00

  • 필리핀 내 화교들 중공서 관장계획

    【마닐라6일AFP동양】「페르디난드·마르코스」 「필리핀」대통령은 중공방문을 하루 앞둔 6일 인도적인 이유를 들어 근 2천명의 화교들에게 영주권을 보장해주는 법령을 발표했다. 「필리핀

    중앙일보

    1975.06.07 00:00

  • 필리핀, 대중공수교의 속셈

    작년 9월 「이멜다」여사 방중 후 9개월 안에 이뤄진 「마르코스」의 북경행은 대중공 불신태도 종식과 66년 집권 때 제창한 이념 초월 정책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필리핀」

    중앙일보

    1975.06.07 00:00

  • 주비 대만 대사 귀국

    【마닐라6일 로이터합동】「필리핀」과 중공과의 외교관계수립 및 「필리핀」과 대만과의 단교설이 나도는 가운데 유서 「필리핀」주재 대만대사가 「마르코스」 「필리핀」대통령의 중공방문을 하

    중앙일보

    1975.06.07 00:00

  • 월남 정부의 항복

    「포드」 미국 대통령은 29일 비통한 어조로 과거 15년에 가까운 미국의 「인도차이나」개입에 종지부가 찍혔다고 선언했다. 다음날 「두옹·반·민」 월남 대통령도 「베트콩」에 무조건

    중앙일보

    1975.05.01 00:00

  • 주한 중국대사관서 추도식

    주한 중화민국대사관은 6일 상오 9시 대사관 2층 중정청에 장개석 총통의 빈소를 마련, 7일 상오에는 대사관직원 60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을 갖고 각계인사의 조문을 받고있다.

    중앙일보

    1975.04.07 00:00

  • (26)-방콕에 정착한 전 영화감독 이경손씨(끝)

    6·25동란·남북분단, 그리고 그 이후의 정당 불안 등 고국에서 들려오는 잇단 보도들은 모두 이씨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들뿐이었다. 게다가 고국에 생존해있던 유일한 혈족인 가형마

    중앙일보

    1975.01.28 00:00

  • (25)「방콕」에 정착한 전 영화감독 이경손씨(8)

    『「커미션」을 적게 받을 터이니 일을 맡겨달라』는 이씨의 애소는 의외로 쉽게 화상의 마음을 움직여 이씨는 곧 수출중개를 맡을 수 있었다. 그가 곧 착수한 일은 화상이 태국 각처에서

    중앙일보

    1975.01.25 00:00

  • (24)방콕에 정착한 전 영화감독 이경손씨(7)

    이씨가 그토록 열망하던 외국유학의 꿈을 포기하고 태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것은 현 부인과의「로맨스」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부인「부라영」여사는 당시 중국국민당 간부가 경영하는「태문

    중앙일보

    1975.01.23 00:00

  • (23)「방콕」에 정착한 전 영화감독 이경손 씨(6)

    1획야의 항해 끝에 이씨가 도착한 곳은「방콕」의 강 부두였다. 난생 처음 보는 원색의 야자수, 푹푹 찌는 더위, 까무잡잡한 피부에 새카만 눈동자의 사람들-이 모두가 신기하고 낯설기

    중앙일보

    1975.01.21 00:00

  • 중공의 형으로부터 25년만에 회답 받아

    【속초】강원도 속초시 동명동56반에 사는 중국인 상홍덕씨(58·중화요리)는 l개월 전 고향인 중국 산동성 문등현 선가주촌의 맏형 상자형씨(69)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지난17일 죽은

    중앙일보

    1975.01.18 00:00

  • (22)방콕에 정착한 전 영화감독 이경손씨(5)

    김구 선생은 벌써 이씨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는 이씨에게 『내가 보기에 경손씨는 아무래도 종교방면으로 나갔으면 좋을걸 그랬어요. 연예 그만두시고 종교방면으로 나가 독립운동을 도왔

    중앙일보

    1975.01.16 00:00

  • (14)대북의 한상 이성사씨(끝)

    1949년1월 중국정부가 대만으로 철수하자 뒤를 이어 이씨가 몸담고 있던 해군정보처도 대만으로 옮겨 고웅에 자리잡았다. 이씨는 대만에 온 뒤에도 계속 중국군대에 머물러 있었으며 5

    중앙일보

    1974.12.1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