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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격리「콜레라」환자와 함께 기거|『세브란스』와 『에비슨』
「그는 영예로운 교수직과 의사로서의 안락한 생활을 박차고 동양의 은둔 국 한국에 와서 현대의학의 씨를 뿌렸다. 그는 한국 최초로 현대식병원을 세웠고, 현대 의학교육을 한국에 소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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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전 초대 유미 사절단|순한글 신임장 휴대
한미수호통상조약체결 다음해인 1883년9월18일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을 방문한 유미 사절단(전권 대신 민영익, 부대신 홍영식)일행 11명이 뉴욕의 핍스 애비뉴 호텔 대접견실에서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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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군사기술. 대외이전 금지
【워싱턴20일 공동=연합】 미국은 일본 및 서구국등 다른 나라에 대한 군사기술 이전을 사실상 금지시키는 입법조치를 취함으로써 맹방들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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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사,「한국통단합」 파티
○유병현주미대사는 5일저녁 신임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월리엄·클라크」씨와 「홀드리지」 국무성 동아시아담당차관보등을 부부동반으로 초청해 대사관저에서 디너파티를 가졌다. 파티에는 이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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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지사등 9명 이동
정부는4일 개각에 따른 후속인사로 정인용재무차관을 경재기획원차관에 임명하는 것을 비롯, 5명의 차관, 3명의 지사와 치안본부장등 9명의 차관급 이동을 단행했다. 차관에는 ▲내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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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한 폴란드 대사'
【워싱턴22일AFP=본사특약】지난 20일 미국에 망명한 주미폴란드대사「로무알트·스파소프스키」씨 는 내년 새 학기부터 워싱턴에 있는 조지타운 대학에서 강의를 맡기로 했다고 워싱턴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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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가 인간존엄성체험할때까지 투쟁하겠다|주미 폴란드대사 망명성명(전문)|자유수호는 미국의 전통, 인간애로 지원해주길|“폭력과 억압은 사태악화시킬뿐”
본인은 워싱턴주재 폴란드대사입니다. 본인은 폴란드외무성의 최고참외교관이며 주미대사직은본인의 다섯 번째 대사직입니다. 본인은 두 번째로 워싱턴주재 대사직을 맡고있읍니다. 본인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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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폴란드새사 망명|바웬사 체포충격 조국전쟁상태 묵과못해
【워싱턴-김건진특파원】주미폴란드대사 「로무알트·스파소프스키」(61)가 19일 미국에 정치적망명을 요청, 미국정부는 이를 허용했다고 「알렉산더·헤이그」국무장관이 20일 발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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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군이 폴란드에 쳐들어와도 미선 군사행동은 “”자제
폴란드에 비상사태가 선포되지 세계인들의 시선은 바르샤바와 함께 모스크바 쪽으로도 모아지고 있다. 국제정치의 시각에서 본 폴란드 사태는 소련의 침공여부에 초점이 맞춰져있고, 이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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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영사 8명 이동|공사 4명도 전보
정부는 3일 주시애틀총영사에 이문수주보스턴총영사를 전보발령하는등 8명의 총영사와 공사급 4명에 대한 인사이동을 단행했다. 발령내용은 다음과같다. ▲주후꾸오까(복강) 총영사 정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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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문화권 개발 어디까지 왔나|화려한 청사진…진도는 소걸음
백제문화권개발의 웅장한 팡파르가 울려 펴진지 금년말로 만3년이 됐다. 개발의 청사진은 공주·부여를 중심으로 옛 백제문화유적의 정화를 통한 관람기능과 화려한 현대적 대규모 관광편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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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은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
지난 3월 30일 워싱턴 힐튼호텔에서 「레이건」 대통령을 저격한「존·힝클리」는 무죄판결을 받아야 한다-담당 변호사들의 주장이다. 정신이상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이러한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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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방위공약 성실히 이행
【워싱턴5일=연합】노신영외무장관은 5일 상오 워싱턴에서 「알렉산더·헤이그」미국무 장관과 회담하고 한반도정세를 비롯한 상호관심사를 논의했다. 노장관과 「헤이그」장관은 약1시간동안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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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제 등 푸짐한 한달
10월중의 문화행사 이모저모 10월은 문화의 달-. 높고 푸른 가을 하늘아래 풍성한 수확과 함께 갖가지 문화예술 행사들이 푸짐하게 펼쳐진다. 「문화의 날」(10월20일)을 정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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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9)제74화 한미외교 요람기|집필을 마치며
나는 60년2월말 3·15총선거전이 시작될 무렵 이승만대통령으로부터 일시 귀국하라는 훈령을 받았다. 진해별장으로 귀국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이대통령은『곧 정·부통령선거가 있 으니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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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방한희망|한미우호 더욱 증진
【워싱턴-김위진 특파원】「레이건」미국대롱령은 21일 유병현 주미한국대사로 부터 신임장을 제정받는 자리에서『대통령 재임중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fp이건」대통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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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8)제74화 한미외교 요람기(85)한표욱|한국국보 미 순회 전시
50년대 주미대사관이 벌인 문화외교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국보전시회였다. 58년1월 워싱턴에서 시작해 뉴욕·보스턴·미니애폴리스·캔자스시티·시애틀·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호놀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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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7)제74화 한미 외교문화요람기(84)
양유찬 대사와 내가 워싱턴에서 하도 일본을 비난하고 다녔더니 정년초 「델레스」 국무장관은 양 대사를 세 차례나 불러 일본을 너무 욕하지 말라고 귄유했다. 「덜레스」의 충고에도 꺾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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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4)제74화 한미 외교 요람기(81)
예비회담에 이어서 열린 제1차 한일회담은 52년4월21일까지 계속되었다. 우리측에서는 예비 회담 때 교체 수석대표였던 신성모씨가 빠지고 김용식 주일대표 부 공사가 교체수석이 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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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외교 요람기|(80) 한목항
평화선은 우리의 해양주권을 최초로 대외에 선포한 것이며 우리의 어업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연합국은 일본이 항복한지 닷새후인 1945년8윌20일 일본의 어로 수역을 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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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2)제74화 한미외교 요람기|?? 덮은 한-일 회담|이 대통령, 일 특사 파한 제의 .필요 없다" 거절|52년1월18일 돌연 평화 선을 선포|의제 등은 합의했지만 파란예고
한일 예비 회담을 앞두고 부산에 와있는 동안 나에게 지금 폼은 공개해도 괜찮을 신상문체가 발생했다. 하루는 변영태 외무장관이 불렀다. 변 장관은 의무차관자리가 공석중인데 나더러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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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에 불리한 증언은 잘못
○…미하원외교위 공화당간사인 「더윈스키」의원은 11일(한국시간) 하원의원회관에서 권정달민정당사무총장을 위해 리셉션을 베풀었다. 「더윈스키」의원은 이 자리에서 권총장에게 지난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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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한미 외교 요람기|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재한 일 재산권: 포기조약 찬 약에 명시|연합국 일원으로 참석은 실현 안돼|옵서버 자격으로 임병직 대사 등 3명을 파견
정부는 미국의 대일 평화조약 초안과 관련한 대미각서를 보낸 것과 비슷한 시기인 51년7월20일, 유진오 고려대 총장과 임송본 조선식산 은행총재를 일본에 보내 한일회담에 관한 사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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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9)|제74화 한미외교요람기|재한일재산권 문제|미와의 협정근거, 이미 한국귀속 주장
주미 대사관이 한일 문제 때문에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5l년 3월게 부터였다. 그때 미국은 「애치슨」국무장관의 진두지휘아래 「덜레스」특별 보좌관과「앨리슨」차관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