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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 대립|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전 남노당 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 편력 회상기(43)
미군이 서울에 첫 진주한 1945년9월8일은 박헌영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역사적인 의의가 담긴 뜻깊은 날이기도 했다. 바로 이날 조선 공산당이 1928년 코민테른의 지령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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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노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42)-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제2부
9월8일에 미군이 인천에 상륙한다는 것을 알게된 건준 위원장 여운형은 부위원장 허헌과 그의 측근 정백 (장안파 공산당대표의 1인이며 건준조직시의 조직부장) 과 9월4일 허헌이 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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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전 남노당 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 정국의 좌우대립
이정윤 아지트의 투보 편집실에는 조선공산주의 운동에 관한 자료가 상당히 있었다. 방구석에는 나의 어깨높이로 등사물이 쌓여 있었다. 그것은 총독부 경무국이 몰수한 조선공산주의 단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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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감각 부족 뒷북치다 1년|조순 경제 팀 출범 1년의 명암
5공청산 등 연말·정치권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싸여 개각설이 나도는 가운데 조순 경제 팀이 5일로 출범 1주년을 맞는다. 현 경제 팀은 「전환기의 상황」이 그렇듯이 취임 초부터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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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뽕 밀조범 첫 사형선고
【부산=강진권 기자】국내 최대 히로뽕 밀조범 최재도 피고인(54·전과5범)에게 법정최고형인 사형이 선고됐다. 부산지법 제4형사부 (재판장 이석우 부장판사)는 1일 오전 10시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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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
이우적은 몽양을 만나고 나오면서 『몽양에게 가까이 하지 마시오』 라고 충고했다. 그는 『몽양은 지금 좌우 양쪽에서 공격을 받아 오래 못 가요. 늘 흔들리며 사람을 잘못 써요. 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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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전 남로당 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
내가 정계진출을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마음먹고 있던 8월말쯤 때마침 김형기·하태·정봉식이 김창숙 선생을 모시고 서울로 왔다. 해방당시 심산(김창숙의 호)은 일경의 모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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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전 남로당 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
내가 서울에 올라오자 이우적이 나를 데려간 곳은 세종로근처에 있는 서울청년회계열의 이정윤의 아지트였다. 당시 각 파벌의 아지트 가운데 가장 강력했던 곳은 명륜동 김해균의 집에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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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전 남노당 지하 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
지리산에는 징용·징병을 피해 오는 청년들이 불어나 그들을 먹이는데 돈이 들었다. 들이 입산할 때는 양식·간장·된장·김치는 물론 미숫가루까지 준비해와도 그것이 오래가지 않았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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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전 남로당 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1부 독립을 위하여
나는 늘 김찬기의 성공을 빌며 무사귀국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희망에 차 있었다. 1945년 4월10일이었다. 나는 정봉식의 은신처를 찾았다. 그런데 그 집 안주인은 나를 보자 정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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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노당 지하총책 박갑동 씨 사상편력 회상기(34)-제1부 독립을 위하여
그때 나는 사실 이우적에게 실망했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했다. 감옥 안에 오래도록 들어앉아 있으니 외부소식도 갈 들을 수 없고 하물며 일본의 중심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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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전 남노당 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
1943년 봄에는 기차로 함경남도 삼방석왕사 안변을 거쳐 간성으로 가 금강산과 설악산의중간에 있는 건봉사를 찾아들어 갔다. 경찰이 내 뒤를 파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건봉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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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노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32)제1부 독립을 위하여
1941년6월22일 히틀러가 돌연 소련국경을 돌파해 맹진격을 시작했다. 일본정계와 군부도 크게 긴장해 대병력을 만주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내가 7월 여름 방학 때 부산에 도착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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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31) 제1부 독립을 위하여
몽양 여운형이 일본에 온 40년 초의 정세는 일본군이 중국의 수도 남경과 한국을 점령하고 장개석 정부는 중경으로 피난 가 있었다. 그러나 화평의 가망성은 보이지 않아 일본이 초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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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로당 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30)제1부 독립을 위하여
조선공상당이 코민테른의 소위 「12월테제」 지령에 따라 1929년6월 해체되자 그때부터 조선공산당을 재건하기 위한 이른바 재건운동이 지하에서 활발히 전개됐다. 지금까지의 인텔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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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29)제1부 독립을 위하여
여기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1920년대 조선공산당의 내력을 간단히 설명하겠다. 조선공산당은 맨 처음 1925년 4월17일 김재봉을 책임비서로 서울에서 결성되었다. 이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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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독립을 위하여
나는 조선독립을 하자면 국내에 뿌리를 박고 싸울 수 있는 주체적인 정당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러한 정당의 핵심은 노동자·농민계층 뿐이다고 생각했다. 해마다 공장에서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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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27)
제1부 독립을 위하여 김덕연은 나의 반론에 대해반론을 제기했다. 그의 이론이『조선공산당의 볼셰비키 화를 위하여』에 쓰여있는 것과 똑같아 나는 그가 어떤 공산주의 클럽에 속해있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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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 그 시작과 끝(26)|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
제1부 독립을 위하여 1936년 내가 와세다 제일고등학원에 입학한 시기에 경남 고성출신의 강태열이란 친구가 입교대학 예과에 입학했다. 그와는 중앙고보에서 알게되었다. 그런데 또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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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전 남로당 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고기
제1부 독립을 위하여 그 당시 내 하숙 가까이에 와세다제일고등학원 1학년에 다니는 박인석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그는 진주사람으로 경성 제일고교를 졸업한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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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복「피터판」회장부부가 주범|덜미잡힌 히로뽕 밀조 조직
검찰에 적발된 이번 히로뽕 밀조·밀매조직은 히로뽕 범죄사상 최대규모인데다 그 총책이 유명회사의 회장부부였다는 점에서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더구나 이들은 서울서초동 고급주택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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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경양 수사결과 발표-요지
지난 6월30일 임수경(21·외국어대 용인분교 불어4)은 「전국대학생대표자 협의회」 (이하 「전대협」) 대표임을 자처하고 북한이 연공 통일전선 확대와 반미. 통일투쟁선동 등 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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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양 입북은 북한 「조평총」공작〃
국가안전기획부는 8일 임수경양(21) 밀입북 사건은 북한이 우리 사회내부를 교란시킬 목적으로 대남 사업담당비서 허담이 관장하고 있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통일전선부」 등 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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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전 남노당 지하 총책 박갑동씨 사상 편력 회상기|광주학생 운동 연루 형 피검|어머니 "왜놈 죽기전엔 죽을 수 없다"|집안살림 타격…진주로 이사
『큰일났네! 광주학생들이 많이 다치겠는데…』 내가 보통 학교 4학년때인 1929년 늦가을 어느날 안방에서 신문을 보시던 아버지가 이렇게 혼잣말을 하셨다. 그해 11월 3일 광주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