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439)전시의 문화인들(4)

    문인들의 종군 활동은 6·25직후부터 시작되었지만 이들이 정식으로 단체를 만들어 조직적인 활동을 벌인 것인 마해송씨(고)를 중심으로 한 「공군 문인단」이 제일 먼저였다. 51년3월

    중앙일보

    1973.03.30 00:00

  • 가정부의 실태|-조선대 박춘자교수 조사-

    한국의 도시가정에서는 가정부의 존재가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불편한 생활의 조력자로 생겨난 이 가정부는 요근래 한가정의 여러부분에 영향을 미치게되어 그 부작용도 많은 문제가

    중앙일보

    1973.03.29 00:00

  • (706)내가아는 박헌영

    1925년4월17일 하오1시쯤, 지금 서울을지로1가에있는 중국음식집 아숙원2층의 연회실에는 20여명가까운 청년들이 점심을 겸해서 연회라도 하는듯이 모여 앉아있었다. 요리가 연방

    중앙일보

    1973.03.12 00:00

  • 그애환을 되새겨보는 특별기획(7)

    ▲사회=거의 한평생을 이역땅에서 살아오던 여러분께서는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으셨을줄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실 이야기도 고생만큼이나 많으실 것이고 또 감개무량하실 것으로 짐작

    중앙일보

    1973.01.15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643)서북청년회(3)문봉제

    첫눈에 비친 46년 봄의 서울은 꼭 사공 없는 나룻배였다. 굳게 믿었던 10만 광복군은 헛소문에 불과했고 장안의 거리는 치열한 좌·우 공방의 무대로 변해 있었다. 당시는 박헌영의

    중앙일보

    1972.12.23 00:00

  • 일본고대사 시민적 입장서 재정립 움직임

    【동경=박동순 특파원】최근에 와서 피크를 이루고 있는 일본의 이른바 고대사 붐을 계기로 일본의 역사를 동아시아라는 보다 근원적이며 객관적인 시대 및 지역의 차원에서 재정립하자는 움

    중앙일보

    1972.12.19 00:00

  • (635) |조선어학회 사건|정인승

    한글의 맞춤법 통일안·표준어·외래어 표기법 등 사전 편찬의 기초 작업은 모두 완성되었으나 실제의 사전 편찬 업무는 참으로 험난한 길이었다. 1929년10월31일 서울 수표동 「조

    중앙일보

    1972.12.14 00:00

  • (634) |조선어학회 사건 (19)|정인승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제정으로 우리말의 올바른 표기법은 결정되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들의 공통어가 될 표준말의 확립이 무엇보다도 필요함을 느낀 조선어학회는 1935년1월

    중앙일보

    1972.12.13 00:00

  • (633)제29화 조선어 학회 사건(18)

    홍원경찰이 조선어학회 동지 33인에 대한 조서를 꾸미면서 무엇보다도 중요시한 것은 역시 조선어 사전을 편찬하고 있는 일이었다. 경찰은 사전을 편찬하게 된 동기서부터 사전 편찬회를

    중앙일보

    1972.12.12 00:00

  • 소련의 한국학 연구

    한국과 소련의 정치적·경제적 관계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그것에 비하여 대단히 부진하다. 그것은 한국이 1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쇄국정책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앙일보

    1972.12.12 00:00

  • (632)조선어학회 사건(17)|정인승(제자 정인승)

    「가갸날」은 1931년까지 음력으로 지켜오다가 1932년에 학회는 우리의 문학생활이 모두 양력으로 표준하는 현대에 있어 「가갸날」을 음력으로 지킨다는 것은 시대사조에 어긋나는 일

    중앙일보

    1972.12.11 00:00

  • (629)제29화 조선어학회 사건(14)

    조선어학회는 실제로 1921년12월3일 휘문의숙(현 휘문 중·고등학교)에서 「조선어연구회」란 이름으로 처음 탄생했다. 그 당시 사립학교 조선어선생을 지내던 임경재(휘문학교 교장)

    중앙일보

    1972.12.07 00:00

  • (628)제29화 조선어학회 사건(13)

    조선어학회와 상해임시정부사이의 연관이란 사실 터무니없는 올가미였다. 조선어학회 간부들의 행동을 과거에서부터 하나하나 조사하던 경찰은 1927년8월 이윤재가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

    중앙일보

    1972.12.06 00:00

  • (622)조선어학회사건(7)정인승

    홍원 경찰서에서 우리 동지들이 취조를 받은 곳은 널따란 연무장 이었다. 우리동지 29명에 대해 10여명의 전담 취조반이 편성되어 넓은 연무장 마룻바닥에 띄엄띄엄 책상과 걸상을 놓

    중앙일보

    1972.11.29 00:00

  • (63)기자

    한국에서 여성이「저널리즘」에 진출한 것은 1920년대 초의 여성관계 잡지가 그 처음이다. 일간 신문에 기자로 여성이 채용되기는 이보다 늦게 1924년 최은희씨가 조선일보에 입사한

    중앙일보

    1972.11.29 00:00

  • (616)조선어학회 사건(1)|정인승

    1942년10월1일. 옷깃을 쌀쌀한 바람이 파고들기 시작하는 희뿌연 한 첫 새벽길이었다. 나는 밤을 새워 사전편찬 일을 한 피로를 싸늘한 새벽바람에 씻어가며 혜화동 성벽 밑 막바

    중앙일보

    1972.11.22 00:00

  • (614)제28화 북간도(34)

    독립운동의 거성들이 빛을 잃은 대신 북간도에도 개화바람이 들어와 문화가 꽃피게 된다. 첫 문명의 전도자는 물론 선교사들이었다. 1910년께 선교차 들어온 「캐나다」선교사 박걸은

    중앙일보

    1972.11.20 00:00

  • 최세진의 언해본 『노걸대』 발견|국어 음운 연구의 귀중 문헌

    언해본 『노걸대』 가운데 가장 오랜 것으로 보이는 최세진의 『노걸대』 1책이 최근 학계에 소개되고 있다. 남광우 교수 (중앙대·국어학)는 9일 이 책을 공개하면서 『이 책은 「언해

    중앙일보

    1972.11.11 00:00

  • (35)농아에 심는「일자승천 금」|진해 농아학원장 김무현씨

    『벙어리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가슴을 치며 겨우 짜내는 진해시 농아학원(장천동372) 김무현 원장 (54)의 절규다. 『일본사람이나 중국사람 벙어리는 교육을 받으려고 애쓴다. 그

    중앙일보

    1972.06.10 00:00

  • 『한국잡지총서』 전5권 간행

    구한말에 창간된 『황성신문』의 영인본과 해방이전 한국잡지들의 창간호를 영인 수록한 『한국잡지총서』 전5권이 한국문화개발사에 의해 각각 간행됐다. 『황성신문』은 1898년9월에 창간

    중앙일보

    1972.05.02 00:00

  • 「잡지」 육성 위한 정책 지원을|전국 잡지인 대회, 5개항 결의문 채택

    한국 잡지 협회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70여년 잡지 사상 처음으로 전체 잡지인이 한 자리에 모인 제1회 전국 잡지인 대회를 20일 하오 2시 서울 YMCA강당에서 열었다. 189

    중앙일보

    1972.04.21 00:00

  • (358)-제자는 필자|발명학회(12)

    새로 단일화한 과학보급협회는 한동안 뒤에 회장 윤치호씨 부회장 원익상씨, 그리고 상무이사인 나의 3인체제로 이끌어 나갔다. 전무이사였던 김용관씨와 상무이사였던 김희명씨는 협회를

    중앙일보

    1972.01.17 00:00

  • 광복군 관계서류 등 발견

    서울시는 13일 밤 일제 때 마련되어 시청본관4층 북쪽에 놓여있는 금고를 20여년만에 열어본 결과 1946년의 한국잡지 및 해방 전 광복군관계서류, 고 김구 선생 친필, 탄약 등

    중앙일보

    1972.01.14 00:00

  • (354)발명학회(8)|목돈상

    그 동안 김용관씨 이름이 여러 차례 등장했다. 사실 김용관씨처럼 발명학회나 과학 지식보급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사람은 따로 없었다. 1924년 10월1일 발명학회가 장사동의

    중앙일보

    1972.01.1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