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383)경무대 사계|윤석오(제자는 필자)

    『각하, 이승만 박사 부인이 왔습니다.』 『무슨 귀찮은 소릴 또 하려고 찾아 온 거야….』 『출타 중이라고 할까요.』 『그럴 수가 있다면 좋겠지만… 들여보내요. 단 면회시간은 5

    중앙일보

    1972.02.15 00:00

  • (380)-제자는 필자|경식대 사계(7)

    ㉮ 이 박사의 정치구상은 초기의 정치 혼돈과 미군정의 방향착오로 숱한 장벽에 부딪쳤다. 공산당의 집요한 정치공작을 분쇄하기 위한 민족진영의 단합이 최대의 과제였지만 난마처럼 얽힌

    중앙일보

    1972.02.11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59)-제자는 필자|「카페」시절(1)

    필자 이서구씨(73)는 동아일보기자(20년), 토월회동인(26년), 대한극작가 협회장(45년), 대한무대예술원장(49년), 국방부종군극작가단장(52년), 한국방송인협회이사장(66

    중앙일보

    1972.01.18 00:00

  • (349)제24화 발명학회(3)

    『과학조선』발간 거물급 유지들의 후원을 받고 재출발한 발명학회는 회원이 2백여명에 이르렀다. 학회는 기회를 확대하여 다방면의 사업을 전개했다. 전무 김용관씨와 상무 김희명씨를 주축

    중앙일보

    1972.01.06 00:00

  • (311)신년특집 금강산-분단27년…영산 1만2천이 바로 눈앞에

    금강이 무엇이뇨 놀이요 물이로다 돌이요 물이러니 안개요 구름일러라 안개요 구름이어니 있고 없고 하더라. 이것은 내가 일찍 1930년 여름, 금강산에서 읊은 노래다. 금강의 황홀

    중앙일보

    1972.01.01 00:00

  • (321)-제자는 필자|가요계 이면사(1)

    고복수씨는 1929년 콜럼비아·레코드 회사에서 주최한 전선가요 콩쿠르에서 1등 당선함으로써 가요계에 데뷔, 『타향살이』·『짝사랑』등 많은 인기 곡을 불렀다. 1955년 은퇴 후 동

    중앙일보

    1971.12.01 00:00

  • 말과 뜻

    요즈음 현상을 보면 우리는 말과 실제가 완전히 분열한 상태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이상과 현실의 거리라든가 영과 육의 갈등이 아닌 묘한 분열이 날로 심해가고 사람들은 사사건건

    중앙일보

    1971.11.30 00:00

  • (314)제22화 부산통화기금(7)

    한편 연구작업을 거의 매듭지은 김정렴·배수곤 「팀」은 송도 「아나고집」(미진장 「호텔」아래편 해변가에 있던 음식점)을 마지막으로 송도에서 철수, 시내 동대신동에 있던 김광형 부총

    중앙일보

    1971.11.23 00:00

  • (310)부산 통화개혁|김유택(제자는 필자)

    조선은행 백원권 교환을 끝낸 후 한은은 본격적인 화폐개혁의 필요성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 백두진 국무총리서리 겸 재무부장관(현 국회의장)의 승인을 얻어 이승만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중앙일보

    1971.11.18 00:00

  • 법 준수해야 학원자유향유

    나는 그동안 일부 불순학생들에 의해 파괴되었던 우리 학원이 대다수의 선량한 학생들과 교수들, 그리고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단시일 내에 그 질서를 회복하게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

    중앙일보

    1971.10.30 00:00

  • (285)(제20화)전문고교|김효록(제자는 필자)

    한국이 오랜 쇄국에서 벗어나 개화함에 따라 청년들이 구미문화를 동경하게되고 구미인의 운동경기에도 반하게 됐으며 일정의 탄압이 심해지자 그것에 반발하여 일인을 굴복시키는 방편은 운

    중앙일보

    1971.10.20 00:00

  • 신작불황 속에 작품집 붐-김치수

    최근에 정부에서는 「문예진흥법」이니 「문화·예술지원금」이니 하여 새삼스럽게도 문학·예술에 대한 관심의 도를 높이고있다. 이것은 말을 바꾸면 그 동안 문학·예술의 창작 활동이 활발하

    중앙일보

    1971.10.13 00:00

  • (264) -개정 반세기(7)권영준(제자는 필자)

    요즘도 국경일이나 나라에 큰 행사가 있을 때 특사의 은전이 베풀어지고 하지만, 내 기억으로 최초의 제일 큰 사명령은 120년 이은 세자 가례 때와 24년 12월23일 일본 유인

    중앙일보

    1971.09.23 00:00

  • 인간부재·교육부재

    그 옛날 라디아의 위풍당당하였던 크뢰수스 왕이 패전을 거듭하여 페르샤의 치루스 왕에 의해 화형에 처해졌을 때 크뢰수스 왕은 장작더미 위에서 『오! 솔논, 솔논, 솔논』하고 솔논을

    중앙일보

    1971.09.13 00:00

  • 서울대 수련의 병원 복귀

    서울대학교 수련의 파동은 11일 상오 1시45분 수련의 대표 15명과 교수 8인 대책위원회의 연석회의에서 우선 병원에 돌아가기로 합의, 복귀 성명을 발표하고 11일 상오9시부터 정

    중앙일보

    1971.09.11 00:00

  • 깨어진「사제의 길」|경신 고 강도살인이 던진 경고 장

    경신 고 강도살인사건은 학교청소부와 함께 제자가 스승을 때려 죽였다는데서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도둑질을 목적으로 스승을 살해한 일은 우리사회의 윤리와 기강이 그만큼 타락했고 교육이

    중앙일보

    1971.08.30 00:00

  • 염화미소

    석가가 영 취 산상에서 설법을 할 때의 얘기다. 금파라라는 꽃을 따서 여러 제자들 앞에 보였다.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해 그저 묵묵히 앉아있었다. 그런데 가섭존자 만이 혼자 빙그

    중앙일보

    1971.08.30 00:00

  • (5)의학박사

    전문의 김아무개에게 보다는 김 박사에게 진찰 받기를 원하는 것이 환자들의 통념이다. 의학박사는 무슨 병이든지 무불통달로 잘 고치는 줄 아는 이가 많다. 적어도 박사쯤 됐으면 공부를

    중앙일보

    1971.08.06 00:00

  • (207)-제자는 필자|자동차 반세기(1)

    필자 서용기씨는 올해 67세로 우리 나라 운수업계의 원로. 1928년 일본 「요꼬하마」 자동차전문학교를 졸업한 이래 서울 승합·대일여객사장 등 43년 동안 운수사업을 경영해 왔으며

    중앙일보

    1971.07.16 00:00

  • (26)「교수와 학생」

    근래에 와서 학생에 관한 문제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때마다, 특히 대학생의 현실참여문제와 더불어 학원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교수와 학생간의 대화의 광장이 아쉽고 또 바로 이 대화

    중앙일보

    1971.06.24 00:00

  • 현장취재…70만 교포 성공과 실패의 자취|상아해안에 국위 떨친 태권도 외교 아주(5)|

    서슴지 않고 안다기에 턱 맡겨둔 것이 탈이었다. 국립경기장 한쪽구석에 멈춰 서더니 여기가 틀림없이 한국대사관이라는 것이다. 『대사관이 뭣 하는 데인지 알기나 하고 그러느냐』고 화를

    중앙일보

    1971.06.12 00:00

  • 공동번역 신약성서|교리, 표기에 이의있다.

    금년 부활절을 기해 출간된 공동번역 신약성서는 선교 1백년을 맞아 한국신구기독교가 힘을 합해 이룩한 획기적인 업적이었다. 교계와 일반이 모두 관심을 기울였던 만큼 책이 나오자 곧

    중앙일보

    1971.05.12 00:00

  • (151)제11화 경상제국대학(5)

    임문석씨는 졸업 후 평안도선천군수로 갔는데 총독부의 연례 지방행정관회의 때 우원 총독의 농촌진홍정책내용에 대해 농민착취 내용이 많다고 약30분간 신랄한 비판을 가해 『당신은 신문

    중앙일보

    1971.05.11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140)양식 복장(7)-이승만(제자는 필자)

    우리 나라에서 맨 먼저 「모던」한 차림의 양복 치레를 한 사람은 구한 말 예식 과장이던 고희성,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출신의 윤기익, 미국에 8년이나 머무르다 온 이상필-이 세

    중앙일보

    1971.04.2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