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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57)
57. 돌고 도는 환율 한국.대만.일본 등에 환율 인하 압력을 넣은 멀포드 미 재무차관보는 유대계였다. 이 때문에 당시 일본에서는 멀포드가 유대 자본이 조종하는 국제통화 마피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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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57)
57. 돌고 도는 환율 한국.대만.일본 등에 환율 인하 압력을 넣은 멀포드 미 재무차관보는 유태계였다. 이 때문에 당시 일본에서는 멀포드에 대해 유태 자본이 조종하는 국제통화 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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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56)
56. '연출'한 환율외교 베이커 미 재무장관을 만나고 돌아온 나는 김만제(金滿堤) 부총리(현 한나라당 의원)에게 "앞으로 환율에 관한 협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하기로 베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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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55)
55. 미국과 환율마찰 외자를 들여오는 것이 잘못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되도록 장기 자금을, 또 간접투자보다는 직접투자를 유치해야 하는데, 편한 맛에 단기 외자를 너무 많이 들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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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54)
54. 20년만의 환율개혁 1980년 2월 말 신병현(申秉鉉) 한국은행 총재는 재무부와 한은 양자의 입장을 반영한 환율결정 시스템의 도입을 수락했다. 그러느라 새 환율제도의 시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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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53)
53. 고정환율제로 회귀 1964년 7월엔 외국환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외환증서제도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외환증서 시장을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외환증서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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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50)
50. 국제금융차관보 외국 학교에 적을 두고 있으면 국내에서 유학 경비를 부칠 수 있도록 해당 규정을 고친 덕에 많은 유학생들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나는 자부한다. 나는 또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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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46)
46. 한은 총재의 용기 5.16이 나던 해인 1961년에 외환관리법 초안을 만들기 위해 자료를 뒤적이다 보니 지하 문서창고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만들어 준 시안(試案)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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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45)
45. 미주지점 부실정리 당시 우리나라가 영국산 스카치 위스키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하면 미국산 쇠고기를 사 주지 않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심각한 통상 문제가 빚어질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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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43)
43. 환은과 나의 인연 조선환금은행이 한국은행에 통폐합되는 바람에 5.16 전까지 한은은 외환업무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그 후 박정희(朴正熙) 정부가 수출 제일주의를 표방하고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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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42)
42. 안기부장 부탁 거절 강경식(姜慶植) 재무장관(현 동부그룹 금융보험부문 회장)을 찾아간 나는 취임 후 첫 임원 인사안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 "어디 보기나 합시다. " 봉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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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41)
41. 잊을수 없는 임원들 내가 은행장으로 있던 1983년 이후 88년 경제부총리를 마칠 때까지 외환은행은 부실 처리 전문 은행과도 같았다. 부실기업 정리를 맡은 용역회사였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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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31)
31. 금융실명제 확산 5공 경제비사를 다룬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이장규 저)는 실명제에 관한 1982년의 논의와 결정이 " '금융실명제〓사회정의' 라는 등식을 국민들의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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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31)
31. 금융실명제 확산 5공 경제비사를 다룬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이장규 저)는 7.3실명제가 " '금융실명제〓사회정의' 라는 등식을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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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29)
29. 금융실명제 내막 5공 초 나는 고(故) 김재익(金在益)경제수석이 금융자율화의 일환으로 밀어붙인 단자사 무더기 인가에 반대했지만 이를 막진 못했다. 그 바람에 부실 뒤처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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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28)
28. 관직 '새옹지마' "결국 부실기업을 인수한 회사에 특혜를 준 게 아니냐" 는 야당 김모 의원의 추궁에 김영석(金英錫) 조흥은행장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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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27)
27. 故 김재익 경제수석 고(故) 김재익(金在益) 경제수석이 주도한 이른바 재무부 점령 사건으로 나는 경제기획원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무차관으로는 김수석이 기획원 경제기획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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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27)
27. 故 김재익 경제수석 고(故) 김재익(金在益) 경제수석이 주도한 이른바 재무부 점령 사건으로 나는 경제기획원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무차관으로는 김수석의 기획원 경제기획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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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26)
26. 단자사 무더기 인가 1986년 국회 예결위에서 내가 부실기업 정리 내용의 공개를 거부하며 곤욕을 치른 사실은 어느 신문에도 실리지 않았다. 나중에 조선일보의 오보로 밝혀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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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22)
22. 두번째 검찰 소환 1986년 6월 대한선주에 대한 외환은행의 실사 결과가 나올 무렵 재무장관실을 찾은 윤석민(尹錫民) 대한선주 회장에게 나는 "오랜 기업 경영 경험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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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19)
19. "부도 막아줄 수 없나" 국제그룹 문제로 시끄러운 동안에도 부실 기업 문제가 한두 건씩 계속 터져나왔다. 대한선주는 1986년 6월께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4백50억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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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18)
18. 사람은 잡아넣지 말자 1986년 6월 재무장관을 할 때 내가 작성한 '부실기업 정리 원칙' 은 10개항으로 돼 있다. ①기업 갱생의 원칙. 기업인은 망하더라도 기업은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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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17)
17. 부실기업 정리 원칙 극동건설 김용산(金用山) 회장이 다녀간 뒤 나는 재무부 직원들에게 그가 한 얘기를 그대로 전달하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장관에게 손을 뻗치는 사람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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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16)
16. 특혜는 안된다 김만제(金滿堤) 부총리는 김용산(金用山) 극동건설 회장이 자꾸 찾아와 "동서증권을 제일은행의 인수가에 넘겨 달라" 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상사 건설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