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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공동성명(전문)

    ⓛ박정희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미합중국「지미·카터」대통령과 영부인은 l979년 6월29일부터 7월1일까지 대한민국을 공식방문 하였다. 「카터」대통령은 서울에서 박대통령 및 고위관리와

    중앙일보

    1979.07.02 00:00

  • 미소「빈」정상 회담의 배경

    「오스트리아」의 수도「빈」에서 진행중인 미소정상회담은 양국간에 이미 타결된 제2단계 전 략무기제한협정(SALTⅡ)의 조인이 주목적이지만 그밖에도 세계도처의 분쟁지역 처리문제·군축

    중앙일보

    1979.06.16 00:00

  • 「젊음」과「고집」의 대결|미소정상회담…「카터」·「브레즈네프」의 입장

    15일「빈」에서 열리는 미소정상회담을 앞둔「카터」미국대통령과「브레즈네프」소련공산당서 기장은 회담에 임하는 「스타일」과 국내정치적 입장이 서로 달라 대조를 보이고 있다. 「카터」대통

    중앙일보

    1979.06.15 00:00

  • 「선풍정책」과연 순탄할까....|「현실」과「개혁」의 조화가 과제

    신민당의「김영삼 시대」부활이 정국긴장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체제 안정이라는 정부·여당의 목표와 김총재의 선명·강경노선 간에 층돌 가능성이 개재해 있고 이것은 어떤

    중앙일보

    1979.05.31 00:00

  • 체면보다 실리|검은황금의 지배자들

    신참산유국 「리비아」는 71년 석유가격인상과 이익배분협상에서 거인들을 차례로 넘어뜨렸다. 「리비아」에 진출해 있던 「무서운 쌍동이」「소칼」과 「텍사코」는 옛날의 위세당당하던 그런

    중앙일보

    1979.03.31 00:00

  • 바빠진 외무부|큰「현안문제」늘어나 24시간 가동

    남북한문제의 재표면화, 미·중공수교에 따른 대책수립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은 외무부는 그야맡로 「전방위시대」를 맞았다. 연초 등소평방미때 한국의 입장을 전달하기로 한 이후 박동

    중앙일보

    1979.01.27 00:00

  • 미하버드대중국문제전문가「슈워츠」박사의 진단

    김건진=세계최강의 나라 미국과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많은 중공이 1월1일부터 수교한데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슈워츠=오래전부터미·중공이수교해야한다고주장해온 나로서는 2주일전에 양국

    중앙일보

    1979.01.08 00:00

  • 80년대로 가는길 '79 정치기류

    70년대를 마무리짓고 80년대의 문턱에서는 분기점으로서 79년 한해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미-중공 관계 정상화로 첫「페이지」가 열리는 올해는 중공을 중심으로 한 한반

    중앙일보

    1979.01.01 00:00

  • 김일성은 남침 단념 않는다|에번즈·노바크 칼럼 본사 독점특약

    미국이 아무리 대한 안보공약을 재확인해도 한·미 장성들은 주한 미 보병사단을 철수하려는「카터」미 대통령의 계획이 북괴병력을 휴전선 남쪽으로 끌어들일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 버

    중앙일보

    1978.11.24 00:00

  • 국회 본회의 질문·답변-요지

    5일 ▲김재광 의원(신민)질문=여당 여러분은 성년 국회니, 유신 국회니, 유신 상이니 하고 나열하지만 민주주의를 지향한 우리가 정권의 평화적 교체의 기틀은 고사하고 야당으로서 대통

    중앙일보

    1978.10.06 00:00

  • 밴스-SALT에 새 제의

    【제네바 12일 AP합동】12일 「제네바」에서 개막된 미소 제2단계 전략무기제한회담(SALT)외상급 첫날 회의에서 「밴스」미 국무장관은 「그로미크」소련외상에게 ①소련의 장거리 「미

    중앙일보

    1978.07.13 00:00

  • "북괴 도발 기원하지 않게 중소와 외교적으로 해결"|브레진스키, 환영 리셉션서 밝혀

    브레진스키 보좌관은 24일 저녁 미 대사관저에서 있은 「리셉션」에서 『미국은 철군 계획에는 변함이 없으나 한반도에 위험이 조성될 정도의 철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중공과 소련

    중앙일보

    1978.05.25 00:00

  • 미, 북괴의 직접대화 제의 거부

    【워싱턴=김건진 특파원】「리처드·홀브루크」미국무성 동「아시아」 및 태평양 담당 국무차관보는 9일 미 하원 국제관계 위「아시아」-태평양 소위(위원장「레스더·울프」)에서 미-북괴 관계

    중앙일보

    1978.03.10 00:00

  • 「카터」의 첫 연두 교서

    「카터」미국 대통령의 첫 연두 교서는 그의 취임 1년에 대한 평가와, 또 앞으로 1년간의 포부를 담았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카터」대통령이 당면한 가

    중앙일보

    1978.01.21 00:00

  • 미, 무역장벽 낮출 계획

    【워싱턴20일AP합동】「지미·카터」미 대통령은 20일 미국의 인권 외교가 세계도처에서 수천명의 정치범의 석방을 실현시킴으로써 위대한 자유와 인간을 향한 중대한 진전을 이룩했다고 밝

    중앙일보

    1978.01.20 00:00

  • 끊임없는 변수...지구라는 수레

    78년 세계 곳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민족자립과 생존권을 둘러싼 끊임없는 국지적 분쟁,「데당트」위장 아래서의 미륙군항경쟁, 제3세계의 불안요인, 중동석유등 「에너지」문

    중앙일보

    1978.01.01 00:00

  • (9)종교

    올해의 종교계는 내분과 통합의 명암이 엇갈리는 한해였다. 불교 조계종의 종권을 둘러싼 내분과의 3년 동안 양분해 온 교단 분열을 종식시키려는 기독교 감리교의 통합추진 노력이 그

    중앙일보

    1977.12.26 00:00

  • 박 대통령-일 후지TV 회견 내용

    -「카터」 미 행정부의 주한 미 지상군철수방침과 대응책은. ▲답=한반도에서 평화가 정착될 때까지 주한 미군은 현 수준을 상당기간 동안 그대로 잔류시켜 주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희

    중앙일보

    1977.12.24 00:00

  • 삼전사전 끝의 난산 선거구 협상

    여야 정치협상의 첫 「카드」이자 마지막 「카드」가 돼버린 선거구협상은 「백지화」 일보 전에서 삼전사전을 거듭해 가까스로 「결실」을 맺었다. 4대 8, 4 대 6 등으로 이어진 증구

    중앙일보

    1977.12.17 00:00

  • 남북한관계 독일방식이 적합

    【파리=주섭일 특파원】박정희 대통령은 『한반도의 무력통일에는 절대 반대이며 장기적으로는 평화통일이 기필코 달성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하고 『평화통일의 기반이 구축될 때까지 남북한이

    중앙일보

    1977.10.19 00:00

  • 박 대통령, 「르·몽드」지 회견내용

    박 대통령과 「퐁텐」씨와의 1문1답은 다음과 같다. -대통령께서 가장 고심하고 있는 것은 한국통일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통령께서는 통일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성취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

    중앙일보

    1977.10.19 00:00

  • 미 맥거번 의원은 북괴 실상 모른다

    【런던7일 합동】「벨기에」의 유력지인「르·소아르」지는 지난달 28일자 사설을 통해 최근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북괴와 직접 협상할 것을 「카터」미 대통령에게 요구한「맥거번」미 상

    중앙일보

    1977.10.08 00:00

  • 도덕외교의 이상과 현실

    「카터」미국대통령의「도덕외교」에 대한 현실주의적 성찰이 집권층내의에서 동시에 강조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지난 19일자「볼티모어. 선」지에 게재된「에세이. 칼럼」에서「카터」대통령

    중앙일보

    1977.09.21 00:00

  • 밴스, 중공 새 지도층과 연쇄회담 5일간 체류

    【북경22일로이터합동】「사이러스·밴스」미국무장관은 미·중공관계 진척과 대만의 장래를 중심으로 한 양국간의 현안문제와 주한미군철수계획에 따른 한반도정세를 비롯한 국제문제들을 중공지도

    중앙일보

    1977.08.2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