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29)

    (29) 美군정청의 보복 홍명희선생을 따라 48년 4월 북한에 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않았던 연희대학생 전영철의 소식은 전쟁이 끝난 한참 뒤에야 들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3

    중앙일보

    1999.09.21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27)

    (27) 분단의 서막 윤치영 비서실장은 이승만 박사 비서직을 내게 제의했지만 나는 거기 응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단정 (單政) 수립을 향해 달려가는 李박사 측에 가담한다면 내 신

    중앙일보

    1999.09.17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23)

    (23) 인민보사 습격 도도히 흐르던 반탁 (反託) 의 물줄기는 1946년 접어들자 예기치 않은 상황에 직면했다. 1월 2일 조선공산당중앙위원회가 '탁치 (託治) 를 을사조약과 같

    중앙일보

    1999.09.10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22)

    (22) 이박사와의 만남 그날은 몹시 추웠다. 신탁통치 결정소식이 전해진 뒤 이틀이 지났고 내가 연희교정에 '반탁 (反託) 모임' 격문을 붙인 지 하루가 지난 1945년 12월 3

    중앙일보

    1999.09.08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21)

    (21) 反託운동 앞장 해방의 감격 만큼이나 뜨거웠던 날씨가 가을 바람에 밀려나기 시작한 1945년 9월 중순. 수형 (受刑) 생활의 후유증을 어느정도 떨궈냈다 싶던 무렵인데 때를

    중앙일보

    1999.09.07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20)

    (20) 비련의 첫사랑 해방의 기쁨을 뒤로 한 채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가 새로 마련한 종로구 관철동 집에서 며칠동안을 누워만 지냈다. 어머니의 따뜻한 간호가 힘이 되긴 했

    중앙일보

    1999.09.06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19)

    (19) 다시 찾은 자유 1945년 4월 하순. 체포된 지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 경찰은 '배후 조직' 을 캐보려 혈안이 되었지만 내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게 없으니 수사도 진전될

    중앙일보

    1999.09.03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17)

    (17) 송도中 무기고 탈취 해방이 되던 해인 1945년 나는 송도중학교 6학년으로 졸업반이었다. 말썽꾸러기 아들을 객지에 둔 부모님은 '물 가의 갓 난 아기' 처럼 걱정이 됐는지

    중앙일보

    1999.08.31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16)

    (16) 북청 꼬마주먹 나는 파인 (巴人) 김동환 (金東煥) 의 시를 지금도 애송 (愛誦) 한다. 특히 '북청 (北靑) 물장수' 를 가장 좋아한다.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중앙일보

    1999.08.30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15)

    (15) 38세 외무장관 64년 7월초 서울에서는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몰려오고 있었다. 반도호텔에 여장을 푼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급히 귀국하라' 고 지시했던 청와대

    중앙일보

    1999.08.27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14)

    (14) 美인맥 구축 밀명 63년 11월24일 케네디 美대통령 장례식 참석차 하네다 (羽田) 공항에 일시 기착한 朴대통령은 내게 두 가지를 지시했다. 한.일 국교정상화에 대비, 일

    중앙일보

    1999.08.25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13)

    (13) 제5대 대통령선거 개표가 한창이던 63년10월16일 새벽은 공화당측에게는 악몽같은 시간이었다. 윤보선 (尹潽善) 후보와는 이미 10만여 표차가 났고 박정희 (朴正熙) 후보

    중앙일보

    1999.08.24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12)

    (12) 립스틱 사건 朴대통령이 버거 미국대사, 하비브 참사관과의 만찬을 주선토록 지시한 것은 대선 (大選) 을 불과 보름여 남긴 1963년 9월 말이었다. 나는 이 행사가 비록

    중앙일보

    1999.08.23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11)

    (11) 비서실장직 사임 63년 5월. 청와대 비서실장직을 그만 두기로 결심한 나는 朴대통령에게 정식으로 사표를 제출했다. 몇차례나 기회만 엿보다가 번번히 때를 놓치곤 했던지라 '

    중앙일보

    1999.08.20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10)

    (10) 하비브와의 공조 63년 4월 초 어느 날. 예정시간보다 일찍 청와대에 도착한 버거 미 대사는 곧바로 2층 내 방부터 들렀다. 朴대통령에게 직접 케네디의 친서 (親書) 를

    중앙일보

    1999.08.18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9)

    (9) 케네디친서 63년 3월의 정국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정치권과 대학가의 잇따른 반대시위에 맞서 군에서는 오히려 군정연장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3월 22일, 마침내 군부는

    중앙일보

    1999.08.17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8)

    (8) 미국의 반대성명 63년 3월 14일 밤. 버거 대사와의 만찬 도중 朴대통령이 폭탄선언을 하는 바람에 그만 집으로 돌아와 버린 나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왜

    중앙일보

    1999.08.16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7)

    (7) 군정연장 선언 63년 3월 14일 저녁 정동 미 대사관저. 만찬이 시작되자 朴대통령과 버거 대사가 헤드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을 중심으로 나와 김재춘 (金在春) 중앙정

    중앙일보

    1999.08.13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5)

    (5) 박대통령의 고민 62년 가을 어느날 퇴근 무렵.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이 '술이나 한잔 하자' 며 내게 전화를 해왔다. 몇분 후 수행원도 없이 청와대에 온 그는 혼잣말처럼

    중앙일보

    1999.08.11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4)

    (4) 육영수 여사 62년 4월 청와대 비서실장에 취임한 뒤 나는 장충동 공관으로 인사를 갔다. 취임 인사도 인사려니와 무엇보다 육영수 (陸英修) 여사를 만나 朴대통령에게 청와대로

    중앙일보

    1999.08.10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3)

    (3) 청와대 비서실장 5.16 한달쯤 뒤였을까. 하루는 경향신문 정치부 김경래 (金景來) 차장이 집으로 찾아와 '쿠데타에 대한 논평' 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를 한마디로

    중앙일보

    1999.08.06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2)

    (2) 국방대학원 강의 나는 이미 61년 초부터 쿠데타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얘기는 듣고 있었다. 국방대학원 강의를 통해 알게 된 군인들과 술자리를 같이하면서 여러 차례 그런 느낌

    중앙일보

    1999.08.04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오프 더 레코드 (1)

    (1) 박정희와의 만남 1961년 4월 어느날 무교동 일식집 이학 (二鶴) .김동하 (金東河) 해병 소장이 바쁜 걸음으로 헐레벌떡 들어왔다. 이어 작은 체구에 얇은 스프링 코트를

    중앙일보

    1999.08.03 00:00

  • PAN 국제집행위원회 개최

    태평양아시아협회(이사장 孔魯明)가 27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아시아사회의 역동성 재건과 청년의 역할' 을 주제로 태평양아시아 네트워크 (PAN) 국제집행위원회를 개최했다. PAN은

    중앙일보

    1998.11.2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