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12·12」충격 삭이며 동양화에 몰두

    전두환 전대통령의 하산 이야기가 파다하게 나도는 25일 오전 서울 대치동 쌍룡아파트2동406호로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65)을 찾아가 보았다. 노 대통령의 전씨 하산에 관한 언급

    중앙일보

    1990.12.28 00:00

  • 예비역 장성 30명 참석

    8일의 정병주 전 특전사령관 국립묘지 안장 식에는 12·12사태 당시 고인과 함께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당했던」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장태완 전 수경사령관·김진기 전 육본헌병감 등

    중앙일보

    1989.03.10 00:00

  • 국민갈증 못 푼 「백화점식」 수사

    5공 핵심 인물인 장세동·이원조 안현태씨등 3명이 25일 동시에 검찰청사에서 철야 조사를 받음으로써 검찰의 5공 비리수사가 끝내기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12월13일 5공 비리

    중앙일보

    1989.01.26 00:00

  • 김계원·윤자중씨 등|장성 4명 계급회복

    국방부는 16일 군인사법상 장교임용결격사유로 보충역 이등병에 편입됐던 김계원 전육군참모총장 윤자중 전공군참모총장(예비역대장)등 4명의 예비역장성과 2명의 영관장교 병적을 정리, 원

    중앙일보

    1988.12.17 00:00

  • 김계원씨 소환조사

    5공 비리를 수사중인 검찰은 17일 오후3시 79년10월 10·26당시 청와대에서 발견됐던 현금 9억여원의 행방을 캐기 위해 김계원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을 검찰청사로 소환, 조사했다

    중앙일보

    1988.12.17 00:00

  • 예편때 강등된 장교들|명예회복의 길 열린다

    정승화 전육군참모총장이 예비역육군대장으로 군경력을 회복할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정부와 민정당은 24일상오 황인수국방차관이 참석한 가운데 당정희의를 열고 군 인사법상 임용결격사

    중앙일보

    1987.12.24 00:00

  • (12)미국은 박대통령 서거에 냉정했다.

    서울의 봄으로 불린 80년 정치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미국이 10·26사태를 통보받은것은 사건발생 4시간이 지난 이 날밤 자정쯤이다. 노재현국방장관

    중앙일보

    1987.10.13 00:00

  • (6)카터, 한미 정상회담 불만 「밴스」에 호통

    한시대가 막내리던 마지막 순간들을 지켜봐야 했던 김계원대통령비서실장-. 그는 비극의 배경이된 권력의 내면을 나지막이 설명해 나갔지만 궁정동 현장의 회상에선 상념에 젖어 말이 끊어지

    중앙일보

    1987.09.18 00:00

  • (5)"차실장·김부장 맞바꿈건의하려했다"

    궁정동의 비극속에서 살아남은 단 한사람인 당시의 김계원대통령 비서실장이 8년의 침묵을 깨고 그날을 증언했다. 박대통령·차지철경호실장·김재규정보부장이 사라진 오늘 그는 한국 역사상

    중앙일보

    1987.09.15 00:00

  • (4)

    유신체제 1기의 후반 2년 박대통령의 통치는 표면상 순탄했다. 학원과 종교계의 민주화 요구, 도시산업선교회와 가톨릭 농민회의 노동운동, 그리고 미국의 인권외교의 압력이 없었던 것은

    중앙일보

    1987.09.11 00:00

  • 실록 80년 서울의 봄(2)"계엄의결 순간에도 「유고」내용 몰랐다"

    79년 10월27일 새벽 4시20분 김성진 문공장관은 중앙청 기자실 흑판에 정부발표문을 써내려 가고 있었다. 『79년 10월26일 23시에 긴급 소집된 임시국무회의는 대통령의 유고

    중앙일보

    1987.09.04 00:00

  • (1)"각하께서 저격당하셨습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도 한다. 우리는 내일을위해 오늘을 생각하듯이 오늘을 위해 어제를 생각한다. 과거 속엔 역사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79년

    중앙일보

    1987.09.01 00:00

  • 4년제 육사출신 총장시대 열려

    정호용대장이 16일 제25대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함으로써 육군의 최고책임자는 정규 4년제 육군사관학교출신인 시대가 열렸다. 육군참모 총장-. 이자리는 모든 군인이 동경하는「꿈의 직책

    중앙일보

    1983.12.16 00:00

  • (3693)(146)후방의 혁명진행|장창국

    대구지역을 제외한 다른도시는 서울에서 상오5시에 있을 혁명성공 첫방송을 듣는 순간 출동을 하기로 되어 었었다. 부산은 군수기지사령부병력이, 광주·전주는 31사단이, 대전·논산은 논

    중앙일보

    1983.04.22 00:00

  • (3571)제79화 육사졸업생들

    아시아 각지의 전선에 흩어져 있던 4천3백여명의 우리 학병들은 8·15 일본투항소식을 듣고는 만주에서, 중국에서, 남양군도에서, 그리고 일본과 국내에서 귀국과 상경을 서둘렀다.

    중앙일보

    1982.11.23 00:00

  • (10)-국군 수뇌부

    해방 후 우리 국군의 수뇌부는 대체로 광복군·일본군·만주군 출신의 원로들로 구성되어 무난한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광복군 계열에서는 중국군 소장으로 광복군 참모장을 한 이

    중앙일보

    1982.11.06 00:00

  • 전국계엄 4번 어떤 일이 있었나

    건국후 지금까지 비상계엄을 선포한 횟수는 전국계엄, 부분 계엄을 포함해 모두 16차례. 이중 전국에 걸친 비상계엄이 △「6·25」사변후인 50년7월8일 △61년5월16일의 「5·

    중앙일보

    1981.01.24 00:00

  • 3면에서 계속

    앞서 살핀바와 같은 사정만으로 허구의 것임이 명백하거니와 원판결이 적법하게 거시하고 있는 증거들에 의하여 더 나아가 이점을 밝혀 보기로 한다. 피고인 김재규는 1976년 12월 4

    중앙일보

    1980.05.21 00:00

  • 어제 계속

    5, 증인신문절차의 위법 상고이유중 첫째 원심이 채증한 유혁인에 대한 증인신문조서에 의하면 그 증인의 신문에 피고인 김재규를 참여시키지 않았으나 명백한바 이는 피고인의 증인신문 참

    중앙일보

    1980.05.21 00:00

  • 김재규 사형 확정|박선호·이기주·유성옥·김태원 사형 등|피고인 전원상고 기각|김계원 무기도 확정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피고인에게 사형이,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이 각각 확정됐다. 대법원전원합의체(재판장 이영섭대법원장)는 2O일 김 피고인 등에 대한 내

    중앙일보

    1980.05.20 00:00

  • 정승화 군재 판결문 요지

    피고인은 1979년2월1일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어 근무하다가 같은 해 12월13일 그직에서 해면된자로서 고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주범인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1980년1월28일

    중앙일보

    1980.03.13 00:00

  • 정승화 피고 최후 진술

    10·26사건에 연루돼 당시의 참모총장으로서 이 법정에 나온것이 부끄럽다. 김재규 범행에 대한 방조범으로서 검찰에 의해 기소된데 대해 이렇게 말하고싶다. 실제 10윌26일 김재규가

    중앙일보

    1980.03.12 00:00

  • 정승화전육참총장 군재

    ◇사안의 진상 이건에 있어서는 무엇이 진실인가, 공판진행과정에서 밝혀진 사안의 진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이건 공소사실에 의하면 피고인이 1979·10·26 대통령시

    중앙일보

    1980.03.12 00:00

  • 김계원증인 일문일답(정승화)

    (법무사 심한준 중령이 밝힌 내용) ◇검찰관신문 ▲증인은 검찰관으로부터 참고인으로 조사받을때 사실대로 진술하고 부인했는가. - 그렇다. ▲육본에 갔을때 『김재규가 군부를 장악한

    중앙일보

    1980.03.1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