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맥아더, 부인을 소개

    대통령은 시종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시의 여러군데가 파괴된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건물들은 앙상하게 파괴되었고 여기저기 포탄에 맞은 자취가 드러나 보였다. 대통령은

    중앙일보

    1983.08.08 00:00

  • 북괴군 완강히 저항

    「무초」대사와「노블」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루빨리 서울에 돌아가기를원하고있었다. 신국방장관은 서울을 탈환하는데 「맥아더」 강군이 예상했던것보다 훨씬 완강한 적의 저항을 받아 치열한

    중앙일보

    1983.08.06 00:00

  • 북괴군은 지리멸렬

    도지사는 지난 20일 「윌리엄」 박사를 환영하는 시민대회를 열었다. 꽤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박사는 흐뭇해했다. 이 대회에서 대통령은 한시간도 넘게 연설을 했다. 오늘 하오2시에

    중앙일보

    1983.08.05 00:00

  • (28)피난민들 빈 들판으로 돌아가게 할순없다|대통령, 미군측에 추수기전 실지회복재측

    9월10일. 김홍일장군이 아침에 찾아왔다. 국회의원 이종현씨도 왔다. 미군정시절 그의별명은「더티·코트·리」 였다. 이의원은 조내무장관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지 그를 해임하지 않으

    중앙일보

    1983.08.03 00:00

  • (27)

    대통령은 전선을 시찰하고 돌아오자 나에게 『마미, 다음엔 방떡 좀 더많이 싸주시오!』 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침에 대통령이 나갈 때 빵속에 계란을 부쳐넣은 샌드위치를 1개

    중앙일보

    1983.08.01 00:00

  • 워커장군주장 반박

    「워커」장군이 훈련받지 않은 병사들에겐 총을 내줄수 없다고 대답하자 대통령은 공산군은 어린 소년들에게도 총을 주어 쏘게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적의 소년병들은 「6주간의 훈련

    중앙일보

    1983.07.28 00:00

  • (25)

    아침에 신국방장관이 대구에서 비행기로 왔다. 대통령에게 자신과 함께 대구에 좀 가서 시민들을 격려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8군단은 이미 대구에서 완전히 철수했으며, 국방부도빨리 남

    중앙일보

    1983.07.28 00:00

  • "조만식씨 있었으면"

    대통령은 총리자리는 가능하면 북한출신 인사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조만식씨가 아직 생존해 있을지는 의심스럽지만, 살아있다면 그분이야말로 최고의 영예를 받아야할 애국자라

    중앙일보

    1983.07.28 00:00

  • (23)

    동란이 벌어지자 김석원장군은 곧6사단장에 임명됐다. 그의 지휘아래 6사단은 적지않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번은 너무 앞서 북진해버리는 바람에 미군들은 그를 제위치에 붙잡아두느라 무

    중앙일보

    1983.07.26 00:00

  • 6사, 너무 앞서 북진

    김석원장군뿐 아니라 김홍일장군도 미군단장 「콜터」 장군이나 한국군 제l연대와 함께 있는「브래들리」장군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바로 어제도 부대를 조금 전진시키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중앙일보

    1983.07.26 00:00

  • (21)

    다행히도 어제 저녁부터 오늘 낮까지는 아군측이 장거리포를 쏘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어젯밤에 다시금 악몽에 시달렸다. 총격전 소리가 몇분 간격으로 계속 울리는 바람에

    중앙일보

    1983.07.21 00:00

  • 구식 일본총도 휴대

    「콜터」 장군은 3일내에 3천명의 한국인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석했던 국방장관은 이같은 목적을 위해선 18세전후의 한국 학도병들이 가장 적합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학도병

    중앙일보

    1983.07.16 00:00

  • 프란체스카여사 비망연 33년만에 공개

    미전투부대의 실종자들은 거의가 일본에 주둔하고 있을때 취사병이었거나 부대내부의 지원부서병들이었기 때문에 전투능력이 없던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워커」 장군은 이 사실을 알고나서 그

    중앙일보

    1983.07.16 00:00

  • 실종자 거의 취사병

    우리는 어느지점을 돌파할 것인가의 여부를 따질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그 시간에 공격을 퍼부을텐데 미국인들은 항상 『좀더 기다려보자』 는 말만 되풀이하고있다. 우리 학도병들이 그곳에

    중앙일보

    1983.07.16 00:00

  • 6·25와 이승만 대통령(15)

    대통령과 나는 온몸에 땀띠를 뒤집어썼다. 대통령의 잔등은 모기에 물린 곳까지 겹쳐 보기에 딱할 정도였다. 워낙 물이 부족하여 밤이면 물 한 대야를 떠다가 수건에 적셔 대통령의 땀을

    중앙일보

    1983.07.13 00:00

  • 6·25와 이승만대통령

    미군은 계속 더 많은 병력과 장비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반면에 적은 방어선 도처에서 준동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편지로 썼다. 나는 이 편지들을 장대사,

    중앙일보

    1983.07.12 00:00

  • 6·25와 이승만대통령

    8월3일. 어젯밤에는 미군기들이 밤새도록 상공을 선회했다. 소련은 46대의 비행기를 지원, 곧 공습이 있을거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미폭격기들은 북한내의 모든 비행장을 폭격하고 비

    중앙일보

    1983.07.11 00:00

  • 6·25와 이승만대통령

    대통령의 참외선물을 받은 만송의 두아들 강석·강욱은 고맙다는 인사를 왔다가 대통령의 말동무가 되었다. 대통령은 두형제를보자 『요놈들, 이 할아버지하고 팔씨름 시합할래?』 하고는 팔

    중앙일보

    1983.07.07 00:00

  • 6·25와 이승만대통령

    7월27일 새벽, 야크기의 공습이었었다. 적기의 대구공습이 잦아지게되자 나는 대통령에게 야간민정시찰을 중단하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요즘 저녁식사후엔 대구거리와 골목·시장을

    중앙일보

    1983.07.05 00:00

  • 6·25와 이승만 대통령|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적의 부산 압박소식에 낙담

    적은 목포와 대구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도 미군들은 적의 전진루트에 비행기를 출격시켜보면 적군이고 탱크고 하나도 보이는게 없다고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직까지도

    중앙일보

    1983.07.04 00:00

  • 6·25와 이승만 대통령|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딘」소장 생존여부 몰라 걱정

    피난생왈도 어느덧 한달이 다가온다. 이곳 대구에서 누구보다 고생을 하는 사람은 조 지사부인이다. 대통령부부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부인의 신세를 지고있다. 대통령 임시관저에는

    중앙일보

    1983.07.01 00:00

  • 6·25와 이승만대통령〈6〉|적군, 여유있게 전주를 노려

    배탈은 나을 생각을 않고 있다. 밤이면 더욱 심해져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날을 밝힌다. 대통령까지 설사병에 걸려 밤새도록 두 사람이 번갈아 화장실 출입을 했다. 20일 저녁, 적군은

    중앙일보

    1983.06.30 00:00

  • 6·25와 이승만대통령〈5〉|"동족가슴에 총 겨누지 말고 투강 권유 전단 뿌려라" 명령

    내가 앓는 동안 못 적은 일들을 보충해야겠다. 장석윤 치안국장이 대통령을 조용히 뵙자고 찾아왔다. 장 국장은 나도 잘 아는 분이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부터 대통령의 신임이

    중앙일보

    1983.06.29 00:00

  • 6·25와 이승만대통령(4)|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

    7월16일 아침 국방장관은 동해안에 적군 3천명이 상륙했다고 보고했다. 연합군해군은 해안선을 철통같이 지키고있다고 했었는데 이 또한 허풍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서해안을 지키고있는

    중앙일보

    1983.06.2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