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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제는 상정 안 될 것

    【워싱턴19일UPI동양】미국정부는 남북한 사이의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유엔」총회가 한국문제를 토의해서는 안 될 것을 통감하고 있다고「찰즈·브레이」미국무성대변인이 19일 말했다.

    중앙일보

    1972.09.20 00:00

  • (상)

    성실과 인내로 난관타개|장기적 안목으로 추진을|이병도 적십자 회담은 본시 이념과「이데올로기」와 정치체제를 초월해서 순전한 인도주의·적십자정신, 또는 동포애의 입장에서 가족 찾기 문

    중앙일보

    1972.09.18 00:00

  • 북적 대표들 서울 97시간의 결산|드러난 북의 본질…성급한 기대에 찬물

    27년만의 나들이 96시간-. 남녁의 바람을 쐰 북적 대표들의 숨가쁜 서울 4박5일은 끝났다. 가족 찾기 남북 적십자 회담 제2차 서울 본 회담에 참석한 북적 대표단 일행 54명이

    중앙일보

    1972.09.16 00:00

  • (5)-남북 적 회담의 장래

    평양의 남북 회담은 이산가족 문제를 다루는 제1차 적십자 회담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적십자인·기자·학자의 첫 공개 교류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27년 단절의 극복이었기 때문

    중앙일보

    1972.09.08 00:00

  • 한산한 시가 「체제의 소산」으로 당연|주목되는 기성세대와의 접촉 차단

    대담 차병권 신상초 때:9월3일 낮 곳:중앙일보회의실 신=이번 평양회의의 구제적성과는 예비회담에서 합의된 5개항의 협의사항을 재확인하고 인도주의정신에 입각하여 남북적십자회의를 계속

    중앙일보

    1972.09.04 00:00

  • 남북적 평양 본 회담을 보고|각계인사에 들어 본 소감과 앞으로의 기대

    설문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적십자 본 회담이 끝마쳐진데 대한 앞으로의 소망은? ②회담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가? ③평양을 간접적으로 처음보고 느낀 것

    중앙일보

    1972.09.02 00:00

  • 적십자 1차 본회담의 결산

    평양에서 열린 제1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은 8월30일 불과 몇시간의 회의 끝에 예비회담이 채댁한 본회담담제를 재확인하고, 7·4 공동성명과 적십자인도주의원칙에 입각하여 회담을 결실

    중앙일보

    1972.09.01 00:00

  • 적십자회담의 생방송

    30일 평양 대동강회관에서 열렸던 적십자 본 회담은 남-북 수석대표들로부터 각기 양측의 기본입장을 밝히는 연설이 있은 다음, 첫 본 회담의 의제에 관한 합의문서 교환이 있었다. 이

    중앙일보

    1972.08.31 00:00

  • 「가족 찾기」정지마친 평양적십자 회담

    남-북 적십자 본 회담은 분단의 장벽을 넘어선 실질적인 남북교류의 실현이란 거창한 부산물을 낳으면서 이제 조심스러운, 그러나 순조로운 첫발을 내디디었다. 감격적인 출발이기에 30일

    중앙일보

    1972.08.31 00:00

  • 이범석 한적 수석대표 본회담 개회연설 요지

    27년이라는 긴 세월을 두고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동포형제가 한자리에 마주앉게 된 이 감회와 기쁨을, 우리는 우리들 조상 영전에 자랑스럽게 고하면서 기어이 열리고야 만 이 첫 회담

    중앙일보

    1972.08.30 00:00

  • 생사·주소확인·방문·상봉·서신왕래·재결합 절차토의 합의문서 전문

    제1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에서 쌍방은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1. 남북적십자회담 쌍방대표는 1972년 6월 16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에서 채택한 다음과 같은

    중앙일보

    1972.08.30 00:00

  • 남북성명·적십자정신 입각 「가족찾기」에 최선|남북적십자 1차 본회담 개최, 합의문서 서명 30일 상오10시 「대동강 회관」에서

    【평양=30일 대한민국신문·통신 공동취재단】남북으로 흩어진 가족들을 찾아주기 위한 남북적십자 첫 본회담이 30일 상오10시 정각 대동강교 바로 옆에 자리잡은 대동강회관에서 역사적인

    중앙일보

    1972.08.30 00:00

  • 남북성명 「클로스업」

    【평양=30일 대한민국신문·통신 공동취재단】급기야 본회담이 평양에서 실현된 것은 커다란 성과이다. 대표들이나 자문위원들 상호간의 비공식 접촉에서도 가급적 쌍방이 어렵거나 입장이 곤

    중앙일보

    1972.08.30 00:00

  • 「대화」를 튼 「대화 1년」 팽팽한 신경전… 「남북의 입」을 줍는다

    남북적십자회담은 3백 65일을 끈 가파른 대화의 고빗길을 넘어 본회담의 문턱에 다다랐다. 이어질 듯 끊기고, 끊길 듯 이어지던 끈질긴 대화는 마침내 26년 동안 철옹벽으로 굳은 남

    중앙일보

    1972.08.12 00:00

  • 「단절 27년」잇는 「대화의 다리」를 놓고…

    『수고 많았습니다』-. 단절 27년의 남·북 장벽에 도전한 첫 주자 예비 회담 대표 5명이 대화의 정초 작업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본회담 대표들에게 「바통」을 「릴레이」하게 됐다.

    중앙일보

    1972.08.12 00:00

  • 남북적 본회담-1차 8월30일 평양 2차 9월13일 서울서

    사적인 이산가족 찾기 남북적십자 제1차 본회담은 8월30일 상오 10시 평양에서 개최하고 2차 본회담은 9월13일 상오 10시 서울서 열기로 최종결정 됐다. 한적은 당초 서울 개최

    중앙일보

    1972.08.11 00:00

  • 「이산가족 찾기」…대화 모색 3백42일|남북적 본 회담 앞으로 보름…그 예비 회담 발자취

    남북적십자 본 회담이 오는 8월5일 드디어 그 막을 올리게 됐다. 분단 4반세기만에 7·4 남북 공동 성명과 함께 길고도 먼 대화의 길은 본격화되었다. 앞으로 보름 남짓-. 준비

    중앙일보

    1972.07.20 00:00

  • 남북적십자 본 회담

    19일에 열린 남북적십자 제23차 예비 회담에서는 첫 본 회담을 오는 8월5일에 열 것 등 본 회담 개시를 보증하는 첫 구체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 첫째번 회담의 장소를 서울로

    중앙일보

    1972.07.20 00:00

  • 남북적 본 회담 8월 5일 개최

    【판문점=임시취재반】19일 상오11시 판문점에서 열린 제23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에서 ①지원요원을 포함한 수행원의 규모를 70명 내외로 하되 필요에 따라 증감할 것과 ②각기 필요에

    중앙일보

    1972.07.19 00:00

  • 키신저·주은래 회담 개시

    【북경19일 로이터동화】미·중공관계 정상화와 월남전을 비롯한 세계문제 전반에 걸쳐 중공 지도층과 회담하기 위해 19일 밤 7시 31분(한국시간 8시31분) 북경에 도착한「헨리·키신

    중앙일보

    1972.06.20 00:00

  • 본 회담에의 진일보|남북적 예비회담서의 의제확정의 의의

    남북 적십자 예비회담의 최난「코스」인 본 회담 의제가 확정됐다. 4개월만에 16일 속개된 20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에서 본 회담 의제로 ①이산가족의 주소와 생사를 확인 ②자유방문·

    중앙일보

    1972.06.17 00:00

  • 남·북적 본회담 의제의 합의

    남·북적십자 대표들은 16일 판문점에서 제20차 예비회담 전체회의를 열고 지난5일 제13차 실무합의에서 타결을 본 본회담 의제를 확인하고 합의문서를 교환했다. 이로써 남·북 적십자

    중앙일보

    1972.06.17 00:00

  • 남·북적, 본회담 의제 확정

    【판문점=임시취재반】남북적십자는 16일 상오 판문점에서 제20차 예비회담 전체회의를 열고 지난 5일 제13차 실무회의에서 타결을 본 본회담 의제를 확인하고 합의문서를 교환했다. 이

    중앙일보

    1972.06.16 00:00

  • 백20일만의 재 회합

    【판문점=임시 취재반】16일 상오 11시 판문점에서 열린 제20차 예비 회담은 2월17일 이후 1백20일만에 열린 탓으로 어느 때보다 많은 남·북 기자들이 참석, 회담장 주변에서

    중앙일보

    1972.06.1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