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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주의 위해 싸운 사람으로 보시면 나에게 호의를 보내 주옵소서

    신민당 「얼굴」을 바꾼 30일의 전당대회 2차 투표가 끝나 정운갑 대회의장이 하오7시께 김영삼씨의 총재당선을 선포하자 단상 맨 앞줄의 중앙에 앉았던 김씨는 한 칸 건너 왼쪽 옆자리

    중앙일보

    1979.05.31 00:00

  • 의원발언은 의석에서만

    국회본회의장과 상임위원회의 의원좌석 배치가 구미의회 제도를 고찰한 여야 부총무단 제안에 따라 바뀌어지게 됐다. 본회의장은 의장석을 중심으로 왼쪽부터 △국무위원석 △유정회 △무소속

    중앙일보

    1975.09.16 00:00

  • 「공손한 공격」으로 변모한 「유엔」 정위

    【유엔본부=김영희·장두성 특파원】제 28차 「유엔」총회 한국문제 토론에서 주요관심사의 하나는 미·소·중공 등 강대국사이의 미묘한 삼각관계가 논쟁과정에서 어떤 형태로 노출될 것이냐

    중앙일보

    1973.11.17 00:00

  • 해외토픽

    소련 수뇌부의 가족상황은 늘 비밀 속에 가리어져 왔는데 최근 소련공산당 서기장「브레즈네프」(66)의 가족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앞줄 왼쪽이 어머니「나탈리아·데니소브나」(88).

    중앙일보

    1973.08.16 00:00

  • (676) 서북청년회(36)

    「테러」의 연속 김모 대원이 산 속에 생매장 됐던 부안 사건의 재판이었다. 희생된 대원은 당시 21세 가량의 평안도청년. 전남도지부 김기홍 총무부장(황해도), 담양 김덕정 지부장

    중앙일보

    1973.02.05 00:00

  • (우)29일 「자유의 집」앞에서 기념촬영한 대표와 자문위원. 앞줄 왼쪽부터 추희경 박선규 김련주대표, 이범석수석대표, 이상렬위원, 김달술 정주년 서영훈대표와 박준규위원, 윗줄 왼

    중앙일보

    1972.08.29 00:00

  • 제네바 회의 54년4월26∼6월15일

    1954년 한국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해 열린 「제네바」회담은 비록 단둘만의 대좌는 아니었지만 남과 북이 전쟁후 처음으로 접촉을 가질 수 있었던 기회였다. 자유진영에서 참전 15개

    중앙일보

    1971.08.13 00:00

  • "나를 소외시키지 않았어도"

    이틀간의 한미안보회의에선 정래혁 국방장관이 생산적 회의를 내세워 구체적인 합의를 보려는데 대해 「레어드」장관은 「닉슨·독트린」의 「파트너쉽」만을 강조하여 난항이 많았다고. 실질토의

    중앙일보

    1971.07.14 00:00

  • 「붉은 지옥」을 증언한다.(상)

    1969년 12월 11일 낮 12시 25분. 서울을 향해 강릉비행장을 떠난 KAL 소속 YS·11기는 예정보다 약간 늦게 이륙했다. 기체가 안전 고도를 잡고 서울로 향해 나는 줄

    중앙일보

    1970.02.1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