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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APEC 블루’ 와 기러기(雁)
지난 11월10-11일간 베이징 도심에서 북쪽으로 60km 떨어진 엔치후(雁栖湖 기러기가 서식하는 호수) 국제회의센타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의 성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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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달인 저우언라이 믿었다가 인생 바뀐 장제스
북벌(北伐) 전쟁 시절 현지 주민들과 어울려 기념촬영을 한 황푸군관학교의 학생병과 교관들. 1926년 무렵으로 추정된다. [사진 김명호] 공동의 목표를 향해 두 개의 집단이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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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주임 꿰찬 저우언라이, 황푸에 붉은물 주입
황푸군관학교 정치부 주임 시절의 다이지타오. 1924년 봄 광저우. 20여 년 후, 국민당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책임이 크다”며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사진 김명호] 예외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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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풍운아·괴짜들 구름 행렬 … ‘황푸군관’은 양산박
황푸군관학교 교장 시절의 장제스. 오른쪽은 랴오중카이가 사망한 이후 군관학교 당 대표를 계승한 왕징웨이(汪精衛). [사진 김명호] 1924년 봄, 잡지 ‘신청년(新靑年)’에 황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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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는 교양 겸비한 불량배” … 재목 알아본 장징장
총리 시절 전인대 상무위원장 둥비우(董必武)와 함께 랴오중카이(廖仲愷)의 무덤을 찾은 저우언라이(周恩來·오른쪽 둘째). 가운데 흰 양복 입은 사람은 랴오중카이의 아들 랴오청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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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타도” 외친 국민당, 레닌 스타일 따라 당 건설
소련에서 귀국한 장제스(왼쪽 둘째)는 쑨원(왼쪽 셋째)과 한 차례 기싸움을 치른 후 황푸군관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1924년 6월 16일 황푸군관학교 입학식. [사진 김명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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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홍색·회색 용광로 ‘황푸군관’은 중국 리더 제조창
1924년 1월 광저우에서 열린 제1차 중국국민당 대표자 대회 모습. 국민당과의 합작과 황푸군관학교 설립안을 통과시켰다. [사진 김명호] 잡교(雜交)를 거쳐 만들어진 동식물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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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한국의 정당
이지상 기자 한국 정당의 이름엔 왜 ‘민주’가 그리 많이 들어가는 걸까요. 한국 정당사에서 가장 많이 창당한 대표는 과연 누구일까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100년을 훌쩍 뛰어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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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세월호법 해결 혼신" … 강경파는 싸늘
여느 때처럼 진회색 스리버튼 재킷에 같은 색 바지 차림의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17일 오후 2시30분 국회 본청 당 대표실에 들어섰다. 중국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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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마스조에 요이치 도쿄도지사 "아베 총리, 일본 내 혐한 움직임에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할 것"
7월 23일 서울을 방문한 마스조에 요이치 도쿄도지사는 청와대로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해 양국 관계 정상화를 원하는 일본 아베 총리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7월 25일, 아베 신조(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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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원, 방심하고 전자처방전 발행했다간…
의료기관이 전자처방전 발행이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법 위반의 소지가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추무진)는 8일 ‘전자처방전 발행시 의사가 입력한 처방 정보를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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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200만 충돌 ‘중원대전’ 평정한 쑹메이링의 편지 한통
동북에서 러허(熱河)로 철수한 장쉐량(앞줄 흰 복장)을 방문한 쑹메이링의 오빠 쑹즈원(장쉐량 오른쪽). 1933년 2월. [사진 김명호] 장쉐량(張學良·장학량)은 결정적인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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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송재윤맥매스터 대학 교수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은 한국학의 필독서다. 1890년대 중반 노령의 비숍은 오랜 탐방을 거쳐 직접 조사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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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일본의 집단자위권과 중국
지난 5월15일 일본의 아베 정권은 집단적자위권 행사를 위해 현행 평화헌법 9조의 해석을 변경하겠다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다. 마침 그 날 도쿄에 출장 중이던 필자는 일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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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천안문 사태 뒤 터진 민주화 요구에 ‘당근’으로 대처
6·4 천안문 사태 발발 25주년이다. 1989년 중국 공산당은 탱크를 앞세워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당국이 인정한 희생자 숫자만 319명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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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천안문 사태 뒤 터진 민주화 요구에 ‘당근’으로 대처
1989년 4월 사망한 개혁파 지도자 후야오방(胡耀邦) 전 공산당 총서기의 추모집회를 계기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이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6월 4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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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천안문 사태 뒤 터진 민주화 요구에 ‘당근’으로 대처
1989년 4월 사망한 개혁파 지도자 후야오방(胡耀邦) 전 공산당 총서기의 추모집회를 계기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이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6월 4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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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자유 찾은 장쉐량 “내가 살아 있는 건 쑹메이링 덕”
장쉐량은 쑹메이링 일가와 가까웠다. 쑹메이링의 오빠 쑹즈원(가운데 안경 낀 사람)과 함께 동북군 주둔지를 둘러보는 장쉐량(앞줄 오른쪽 흰 코트). 1933년 2월 17일,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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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의 차이 나는 차이나] 해외선 중산복, 국내선 점퍼 … 시진핑 옷에 담긴 뜻은
지난달 22일 네덜란드를 방문한 시진핑 주석(왼쪽 둘째)이 국왕 부부 초청 만찬에 개량 중산복을 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중앙포토] 의식주(衣食住)에서 의(衣)가 가장 먼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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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제국으로의 향수를 넘어서
이홍구전 국무총리·본사 고문세력균형의 틀과 내용이 크게 바뀌는 국제정치의 전환기에는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 세상을 뒤덮게 마련이다. 지금이 바로 그와 같은 위험한 고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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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고치는 법 배워 팔자 고친 ‘동북의 왕’ 장쭤린
전쟁의 와중에 마차에서 태어난 장쭤린의 장남 장쉐량(왼쪽 셋째)은 장쭤린 사후 약관 28세 때 전 중국의 2인자로 부상했다. 1931년 봄, 수도 난징에서 열병(閱兵)을 하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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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대하면 원한 풀린다” 대륙 화답에 가슴 뛴 장징궈
신중국선포 32주년을 앞두고 3통과 통일 이후 대만정책(葉九條)을 발표하는 전인대 위원장 예젠잉. 葉九條는 일국양제(一國兩制)의 원시적인 구상이나 다름없었다. 1981년 9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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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가 부른 총성, 외교 실패 탓 인류 위협 포성으로
올해로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았다. 국제사회가 대화를 통한 전쟁 방지에 실패하고, 미증유의 참극으로 이어진 사건이다. 그 원인을 둘러싸고 오늘날에도 수많은 논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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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 형·아우 … 덩샤오핑·장징궈, 양안 해빙 이심전심
국방부장 시절 베트남 전쟁에 관한 타이완 측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장징궈(오른쪽 둘째). 대중공 정책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3불정책을 처음 피력했다. 196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