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47)

    47. "책 읽지마라" 평생 참선에 전념해온 성철스님이 참선수행과 관련해 강조하는 확고한 원칙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글을 읽지 말라" 는 것이다. 지금도 귓속에 쟁쟁한

    중앙일보

    2001.08.06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46)

    46. 이웃마을 보시 성철스님의 나들이는 주로 가야산을 오르내리는 것이었는데, 어느날엔가 특별한 행차를 한 적이 있다. 행선지는 백련암에서 바로 보이는 마을이다. 마장(馬場)이라는

    중앙일보

    2001.08.03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45)

    45. 가야산에 올라 성철스님은 가끔씩 상좌를 데리고 가야산 봉우리에 오르길 좋아했다. 슬슬 햇살이 따가워지기 시작하던 초여름 어느날 나에게도 등산에 동행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

    중앙일보

    2001.08.02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44)

    44. 성철스님 모시기 성철스님을 모시면서 그 급한 성격을 이해하고 익숙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행자.시찬 시절만 아니라, 나중에 원주(절의 살림을 책임지는 자리)의 소

    중앙일보

    2001.08.01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43)

    43. 무관심한 절 살림 성철스님은 평생 수행에만 전념했을 뿐 다른 일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외부와의 접촉이 별로 없었으며, 해인사라는 큰 절의 살림살

    중앙일보

    2001.07.31 00:00

  • [중앙일보에 바란다] 3기 독자위원회 7월회의

    중앙일보 제3기 독자위원회(위원장 金鼎基 한양대 교수)가 지난 23일 본사 대회의실에서 열려 본지 7월 보도 내용과 편집 방향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독자위원회에는 金위원장,

    중앙일보

    2001.07.31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42)

    42. 3,000배를 하면 성철스님의 가장 자상한 모습은 3천배를 마친 일반 신도의 인사를 받을 때에 볼 수 있다. 3천배를 마친 신도에게 "애 썼다" "수고 많았다" 는 등 격려

    중앙일보

    2001.07.30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41)

    41. '가야산 호랑이' 별칭 성철스님의 성격이 급하고 격하단 사실은 스님들 사이에선 잘 알려져 있다. 예컨대 큰스님이 찾는다하면 숟가락을 입에 넣었더라도 그 밥을 다시 뱉어 놓고

    중앙일보

    2001.07.27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40)

    40. 행자 상식 테스트 출가해 스님 되는 일에 어떤 일정한 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잘 모르기는 하지만 기독교 성직자의 경우 신학대학이나 대학원 같은 교육기관을 졸업하고 다시 일

    중앙일보

    2001.07.26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39)

    39. 새벽 운동 성철스님은 새벽 3시 전에 일어나 꼭 백팔배 예불을 올렸다. 새벽에 눈을 부비고 일어나면 벌써 큰스님 방에선 염불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예불이 끝나고 아침 공양

    중앙일보

    2001.07.25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38)

    38. 혼쭐난 배추밭 울력 환속소동이 마무리되고, 친구들의 발걸음도 끊어질 무렵 김장을 준비할 철이 다가왔다. 김장거리로 심었던 배추.무는 말 그대로 청정채소다. 해우소(解憂所.근

    중앙일보

    2001.07.24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37)

    37. 숙박비 삼천배 친구들 사이에 출가 사실이 알려지면서 환속을 독촉하기 위해 찾아오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 없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산중 암자를 찾아온 친구들과 환속으

    중앙일보

    2001.07.23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36)

    36. 나의 환손문제 해결 공양주 행자 시절의 일이다. 아침 공양시간이 됐는데도 반찬을 준비해야 하는 채공 행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원주스님께 "채공행자가 보이지 않는다" 고 알렸

    중앙일보

    2001.07.20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35)

    35. 가족과의 '환속전쟁' 행자 시절 하루는 성철스님이 마당을 거닐다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놈아, 니 여기 온 지 몇 개월 됐노?" "대략 서너달은 된 것 같심더. " 큰스

    중앙일보

    2001.07.19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33)

    33. 어린이의 친구 성철스님은 아이를 무척 좋아했다. 여신도들이 가끔 꼬마들을 데리고 오면 꼭 아이들을 불러 과일이나 과자를 주곤 했다. 아이들의 천진함을 마냥 좋아했다. "숨김

    중앙일보

    2001.07.17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32)

    32. 꽃 나무 사람 성철스님이 옛날에는 별로 꽃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하는데, 환갑이 지나면서는 마당의 꽃과 나무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흰 모란을 좋아했고 말년에는 장

    중앙일보

    2001.07.16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31)

    (31)몸에 밴 근검절약 시찬 시절 수시로 큰스님 방을 드나들곤 했는데, 어느날 물을 갖다드리려고 방문을 열어 보니 큰스님이 평소 안쓰는 안경을 끼고 뭔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중앙일보

    2001.07.13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30)

    (30)노승의 장난끼 성철스님의 목욕을 돕는 것도 시찬인 내가 해야 할 일인데, 시찬을 막 시작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안경이었다. 뜨거운 물을 부어 온도를 맞춘 목욕탕에 들

    중앙일보

    2001.07.12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29)

    (29) 소식(小食)실천 엉터리 솜씨에도 불구하고 성철스님이 아무 말 안하니 '그럭저럭 자리를 잡아가나보다' 하던 무렵이다. 그날도 잘 차리지 못한 밥상을 큰스님 방으로 들고 갔다

    중앙일보

    2001.07.11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28)

    (28) 소금기없는 식사 큰절에 이어 어지간한 암자까지 다니며 '계를 받았다' 고 인사를 하고 백련암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성철스님께 인사했다. "오냐" 하며 절을 받는 큰스님의

    중앙일보

    2001.07.10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27)

    27. 법명 '원택' 김장준비를 위해 뿌린 무.배추의 새싹이 막 땅에서 고개를 내미는 한여름이었다. 성철스님이 찾는다는 전갈에 큰스님 방으로 갔다. 별다른 사고나 실수를 하지 않았

    중앙일보

    2001.07.09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26)

    26. 영어 실력 백련암은 '시주물을 화살인 듯 피하라' 는 성철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가능한 한 자급자족하는 살림을 지향했다. 그러다보니 울력(공동작업)이 많아 힘도 들었지만, 한

    중앙일보

    2001.07.06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25)

    25. 법명 번복 소동 나보다 4~5개월 먼저 들어온 행자가 있었다. 마흔을 넘겨 늦어도 한참 늦게 출가한 분이다. 성철스님의 시찬(侍饌.큰스님 식사당번)을 맡고 있던 그 스님이

    중앙일보

    2001.07.05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24)

    24. 내 이빨 물어줄래? 어느 날 중년의 스님 한 분이 백련암을 찾아왔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 먼 길 오느라 끼니를 거른 스님께 밥상을 차려드리라는 원주스님의 명에 따라 내가

    중앙일보

    2001.07.0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