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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돌 맞은 서울∼평양의 대화

    7·4남북공동성명으로 분단의 민족사에 새장을 연지 1년. 남북관계는 인도와 정치, 단계론과 일괄론이 맞선 채 한해를 보냈다. 그동안 남과 북은 대결 속에 대화를 계속하며 안으로는

    중앙일보

    1973.07.04 00:00

  • 국회 질문·답변 요지

    =▲남북한이 함께 국제사회에 나갈 것을 용인했음으로써 7·4공동성명과 6·23선언의 취지에서 상반되는 것이 아닌가. ▲남북조절위는 이번 선언과 같은 것을 사전 협의키 위해 설치한

    중앙일보

    1973.06.26 00:00

  • 통일에 장애 안되고 다수회원국 뜻이라면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반대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은 23일 상오「평화통일외교정책에 대한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7개항의 이 외교정책선언에서 박대통령은 『국제연합의 다수회원국의 뜻이라면 통일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전

    중앙일보

    1973.06.23 00:00

  • 김종필 국무총리 회견 요지

    ▲두개의 한국인정여부=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우리는 휴전선이북지역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공산정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것을 국제사회에서는 2개의 한국이

    중앙일보

    1973.06.23 00:00

  • 한국외교 25년의 진화-박대통령의 「6·23」특별선언을 계기로 되돌아 본 변천사

    평화통일외교정책에 관한 박대통령의 특별선언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우리외교의 일대전환을 의미한다. 여지껏 우리만의 독무대였던 「유엔」 및 국제기구에 북한을 인용한 사실, 북한과 관계를

    중앙일보

    1973.06.23 00:00

  • 한·인니의 국교정상화

    「말리크」외상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과 인니는 가까운 시일 안에 대사급의 외교관계를 맺는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인니는 64년1월부터 북한과는 대사급의 외교관계를 맺고 한국에 대해서는

    중앙일보

    1973.06.11 00:00

  • 미 대외정책 한국조항 요지

    한국휴전이래 미국의 주요 대한 외교목표는 전쟁의 재발을 막는데 있었다. 북한이 오산할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미국은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한편 강력한 자주국방력을 육성하는 데

    중앙일보

    1973.04.20 00:00

  • 새로운 태평양 시대의 일본|고대 아세아 문제 연구소 주최|12월4∼7일 국제 학술 회의

    고려대 아세아 문제 연구소는 「새로운 태평양 시대의 일본」을 주제로 한 일본 문제 국제 학술 회의를 12월4∼7일 서울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갖는다. 이 일본 문제 국제 학술 회

    중앙일보

    1972.11.30 00:00

  • 한·미 어협 협정 서명

    서경1백75도 이동의 동북태평양과 「베링」해 공해에서 한국어선의 연어 및 넙치 어로행위를 금지하는 「한·미 어업협력협정」이 25일 상오4시(한국시간) 「워싱턴」에서 김동조 주미대사

    중앙일보

    1972.11.25 00:00

  • 교양 「프로」등으로 바꿔-대북 방송

    남북 조절 위원장간의 합의에 따라 중앙방송국의 대북 방송 (KBS)과 함께 각 민간 방송의 대북 방송도 11일 0시를 기해 모두 멈췄다. 또 군사 분계선 상에서의 확성기에 의한 방

    중앙일보

    1972.11.11 00:00

  • 「남-북 공동보조」, 외교완 무관

    이후락 남-북 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은 4일 하오 남-북 조절위원장회의를 마치고 돌아와 판문점「자유의 집」에서 기자회견,『두 차례의 비공개 조절위원장회의에서는 언어를 하나로 묶는 문

    중앙일보

    1972.11.06 00:00

  • 남-북 조절 위 1차 회의 무엇이 얘기됐을까

    12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조절위원장회의는 4시간이 넘는 긴 회담이었으나 공동발표문은 간략했다. 남-북 적 서울회담이 있은 후 이번 판문점회담까지의 한달 사이에 남북관계와 관련

    중앙일보

    1972.10.13 00:00

  • 일본·중공 수교는|한국 안보에 영향

    정부는 지난 9월29일의 일·중공 국교 수립이 단순히 두 나라만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및 세계의 국제 질서, 특히 안전 보장을 위한 이제까지의 세력 균형에 적잖

    중앙일보

    1972.10.04 00:00

  • 북한의 남-북 연방제안

    김일성은 지난19일 북한을 방문중인 일본 매일신문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새삼 남-북 연방제안을 강조했다고 한다. 북한은 지금까지도 적십자회담을 정치회담으로 이끌어가려는 의도를 노골적으

    중앙일보

    1972.09.23 00:00

  • 해방 직후부터 48년 말 중단까지-남북한의 교역

    45년에 국토가 양단된 직후부터 어느 기간까지는 남북한의 교류가 모든 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경제 교류도 물론 예외는 아니어서 48년말까지 남북한의 교역이 이루어졌었다. 당시의

    중앙일보

    1972.09.11 00:00

  • (5)-남북 적 회담의 장래

    평양의 남북 회담은 이산가족 문제를 다루는 제1차 적십자 회담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적십자인·기자·학자의 첫 공개 교류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27년 단절의 극복이었기 때문

    중앙일보

    1972.09.08 00:00

  • 한산한 시가 「체제의 소산」으로 당연|주목되는 기성세대와의 접촉 차단

    대담 차병권 신상초 때:9월3일 낮 곳:중앙일보회의실 신=이번 평양회의의 구제적성과는 예비회담에서 합의된 5개항의 협의사항을 재확인하고 인도주의정신에 입각하여 남북적십자회의를 계속

    중앙일보

    1972.09.04 00:00

  • 정당 대표 초청 보류 사실상 철회된 것

    대한적십자사는 남북적 본회담에 참석할 한적 대표단 명단을 가까운 시일 안에 발표키로 하고 평양행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북적은 11일 마지막 예비 회담에서 조만간 대표단 명단을 발

    중앙일보

    1972.08.12 00:00

  • 남북성명에 북의 적화전략 없나

    국회는 29일로 대 정부 질문을 끝냈다. 마지막 날 질문에 나선 신민당의 유진산 의원은 김일성이 적화통일의 목적의식을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남북성명 속에 김일성의 적화

    중앙일보

    1972.07.29 00:00

  • 「한국문제 불 상정」에 제동|알제리 등 16국 대 유엔결의안의 속셈

    「알제리」를 선봉으로 한 비동맹중립 16국은 최근 한국의 대「유엔」외교에 커다란 장애물을 던져놓았다. 주한「유엔」군의 철수, 남북한 동시초청 안 등 지금까지 공산 측서 밀어오던 일

    중앙일보

    1972.07.17 00:00

  • 국회 질의 답변 요지(5일째)

    ▲김 총리 답변=▲앞으로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 남북간의 대화가 진행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회담진행과정에서 국민에게 알릴 것은 충분히 알리겠다. 현재는 대화를 시작하자는 초보적인

    중앙일보

    1972.07.10 00:00

  • 7·4성명과 한국의 진로|신상초

    7·4성명의 성격은 법적으로 보아 심히 모호하다. 남북협상이 벌어진 것은 대한민국이 남한만을 통치하고 있고 북한을 통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소위 「조선인민공화국」이 북한만

    중앙일보

    1972.07.08 00:00

  • 소·중공과 관계개선 용의

    김용식 외무장관은 8일 『정부는 중공·소련 및 동구국가와 통상을 포함한 관계개선을 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중공 및 소련과 외교관계를 개선할 용의가 없느냐는 김

    중앙일보

    1972.07.08 00:00

  • 정구영씨 전공화당총재 명진오씨 전신민당총재 대담

    ▲사=공동성명의 법적인 성격을 말하면 이 성명은 국가와 국가사이 또는 정부와 정부사이에 상대방을 인정한 약속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있읍니다. 우리 헌법 제3조는『대한민국의 영토는 한

    중앙일보

    1972.07.0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