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3648) 제79화 육사졸업생들(101) 7기생

    육사7기에는「정규반」「특별반」「후기반」이 있었다. 이들은 입학날짜나 교육기간·교육내용·임관일자가 달랐고 구성원들도 이질적이었을 뿐 아니라 임관 후 뻗어나가는 양상도 판이했다. 정규

    중앙일보

    1983.02.28 00:00

  • (3640)반란의 진압

    여순반란 당시 전라도지방에는 제5여단이 포진하고 있었다. 제5여단은 러시아군과 폴란드군에서 잔뼈가 굵은 김상겸대령이 수색에서 창설하여 광주로 이동해 있었다. 그 예하에는 반란부대인

    중앙일보

    1983.02.18 00:00

  • (85)

    6기생들은 임관후 곧 여순·지리산·제주도·오대산 지구 등 공비토벌에 투입됐다. 장교가 모자라 더러는 소위 계급장을 달고 중대장으로 싸웠다. 특히 여순반란 토벌에는 다수 6기생이 소

    중앙일보

    1983.02.09 00:00

  • 제79화 육사졸업생들(80)|5기주체 중도탈락

    「장도영일파 44명 반혁명사건」으로 5기 혁명주체들이 대부분 거세된 것은 5기의 불운이었을뿐 아니라 우리 군으로서도 손실로 작용한 아쉬움이 있다. 4년제 정규과정 이전의 사관학교

    중앙일보

    1983.02.03 00:00

  • (3619) 제79화 육사졸업생들(72) 4기생 장성들의 현재

    4기생이 재학중일 때 육군의 각 병과 선임장교들이 서로 좋은 인재를 확보키 위해 사관학교로 찾아가 병과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했던 일이 기억난다. 일종의 스카우트 작전이었다. 자유

    중앙일보

    1983.01.25 00:00

  • (3610) 제79화 육사졸업생들 (63)|제주도의 좌익세력

    46년10월 내가 육사부교장으로 있다가 제9연대를 창설하러 제주도로 떠날 때 육사교장이던 원용덕소령댁으로 인사차 들른 일이 있다. 그때 원소령은 제주도엔 빨갱이가 많으니 조심해서

    중앙일보

    1983.01.14 00:00

  • (3596)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49) 장창국

    2기생은 1기생이 졸업한뒤 1백일만인 9월24일 입교, 80일간의 교육을 받고 12월14일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했다. l기생과 사이에 석달여의 간격이 있었던 것은 그동안 두차

    중앙일보

    1982.12.23 00:00

  • (3590)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43) 장창국

    불행한 일이었으나 1기생중 몇 사람은 좌익에 가담했다가 나중 숙군때 처단됐다. 강비원중령(전북)과 안영길(함북) 김학림(함북) 김용순(전북)소령, 김창영대위(충북)가 바로 1기생중

    중앙일보

    1982.12.16 00:00

  • (3589)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42) 장창국

    김도영대령은 사관학교 1기 졸업후 이리제3연대의 소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만군헌병출신의 김창룡이 그때 3연대의 정보계 하사관으로 임대해 있었다. 어느날 김대령은 일직사관으로 김창

    중앙일보

    1982.12.15 00:00

  • (3588)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41) 장창국 &1기생 영관장교|6·25때 군의중견으로 혁혁한 무공|이상근대령등 7명은 전사|박승일대령은 포로됐다 탈출 유격전

    비록 「별」을 달지는 못했으나 l기생중 다수는 군의 중견인 영관장교로 6·25를 치르고 예편했다. 그중에는 전쟁중 혁혁한 무공을 세우고 아깝게 전사한 사람도 있으며 일부는 좌익에

    중앙일보

    1982.12.14 00:00

  • (3587)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40) 장창국

    45일의 단기교육이었지만 교관인 나는 최선을 다해 가르쳤고 l기생들은 열심히 배웠다. 대부분 일군·만군의 군사경력자였던데다 「창군의 기간요원」이 된다는 열의와 긍지가 높아 교육기간

    중앙일보

    1982.12.13 00:00

  • (3584)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37) 장창국

    육사l기생 88명은 두가지 경로를 통해 들어왔다. 3분의2에 해당하는 60여명은 군영에 뒤늦게 입교했다가 군영이 문을 닫는 바람에 미처 임관하지 못한 학생들이 자동으로 넘어 왔다.

    중앙일보

    1982.12.08 00:00

  • (3583)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36) 장창국

    남조선국방경비대가 발족하면서 당장의 과제가 된것은 경비대 간부요원의 양성이었다. 군사영어학교는 과거 군사경력자들을 대상으로 「통역관」을 양성하는 임시기관이었던 만큼 계속적으로 늘어

    중앙일보

    1982.12.07 00:00

  • (3582)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35) 장창국

    46년1월14일 남조선 국방경비대의 창설과 동시에 미군정은 그때까지 방임해두었던 각종 사설 군사단체의 해산령을 내렸다. 미군정장관 「러치」(Archer I. Lerch) 소장에 의

    중앙일보

    1982.12.06 00:00

  • (3578)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31) 장창국

    해방후 우리국군이 창설되는 최초의 조치는 미군정이 45년11월13일 군정법령 28호로 국방사령부(Office of the Director of National Defence)를 설

    중앙일보

    1982.12.01 00:00

  • 지원병출신|처음 일반병서 하사관·장교로까지 확대6·25때 용맹떨쳐…희생도 커|송요찬·문형태장군등 20여명 장성진급

    지원병들은 처음 모두 일반병으로 복무했다. 그러나 전쟁의 확대에 따라 하사관·하급장교 부족현상을 겪고있던 일제는 곧 한국인 지원병들을 군의 기간요원으로까지 동원하기 시작했다. 지원

    중앙일보

    1982.11.26 00:00

  • (3569)제79화 육사졸업생들(22)|장창국|학병

    일본군 출신 중에 학병이라는 그룹이 있다. 학도병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명칭은「학도특별지원병」이다. 말이 지원병이지 사실은 강제징집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혈서를 쓰면서 지원서를 낸

    중앙일보

    1982.11.20 00:00

  • (3555)-제79화 육사졸업생들(8)|계림회

    필자가 일본 육사에 입학했을 때는 신입생 2천8백명에 2학년(58기)이 2천명이었다. 그 때는 태평양전쟁이 한참 확대되고 있어 초급장교가 많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가 입학한 후에

    중앙일보

    1982.11.04 00:00

  • (3553)-제79화 육사졸업생들(6)=장창국

    일본육사 27기에는 입학자중 2명이 탈락되어 김석원장군, 애국지사 이종혁선생, 채병덕장군 (전 참모총장)의 장인인 백홍석장군과 조선총독부 보도담당관으로 있으면서 언론 통제에 악명을

    중앙일보

    1982.11.02 00:00

  • (3549)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2) 장창국

    「우리는 장차 수립될 우리 조국과 정부에 충성을 다한다.』 따뜻한 봄날씨, 태릉의 한 벽돌건물안에서 신생 조국의 군장교가 되려는 건아들의 「애국선서」가 울려퍼졌다. 46년5월l일에

    중앙일보

    1982.10.28 00:00

  • 육군3사 졸업식 대통령상 한백수소위

    육군제3사관학교 제19기졸업및 임관식이 .9일하오 충성대 연병장에서 거행됐다. 2년간 전문대 과정을 이수한 이들은 졸업과 함께 육군소위계급장을 달았다. 졸업식에서 ▲대통령상은 한백

    중앙일보

    1982.09.09 00:00

  • 국사편찬위가 분석한 교과서 왜곡문제

    ◇한군현의 위치 ▲조선우도에도 농경과 금속기의 문화가 발달하고 한은 그곳에 낙랑군등의 사군을 두고 지배하었다.(동경서적 일본사 P15) ▲또 조선우도에서는 2세기 후반에 한족이

    중앙일보

    1982.08.05 00:00

  • 여 육사 졸업생으로 39년 사다트가 창설

    52년7월23일 이집트「파루크」왕조를 무너뜨린 쿠데타의 주동자들은 이집트육군사관학교출신으로 이집트군부에 비밀조직을 갖고있던 「자유장교단」 (Free Officers Group)소속

    중앙일보

    1982.02.03 00:00

  • (9)-혁명전야⑧

    5·16주체와 장도영 총장사이에 서로 주장이 다른 사전관계는5·16 72시간의 소용들이 속에서 묶어 살피기로 하고 일단 5·16주체에 합류한 소수의 민간인 협력자로 얘기를 옮기자.

    중앙일보

    1982.01.2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