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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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닉슨」대통령은 출발직전 민주·공화 양당의 원내지도자들과 외무·군사요원을 초치해 간략한「브리핑」을 해주었다. 이 자리에서 「닉슨」대통령은 모택동과의 2차례에 걸친 회담에 관해서는

    중앙일보

    1972.02.18 00:00

  • (382)-제자는 필자|경무대 사계(9)

    『귀관은 어째서 이 박사의 도미를 방해하고있나.』 『네, 죄송합니다. 그러나 각하, 이 박사는 미군정에 비협조적입니다. 군정시책의 거의 전부를 철저하게 반대하고 방해하고 있기 때

    중앙일보

    1972.02.14 00:00

  • (379)-제자는 필자|경식대 사계(6)

    이 박사는 처음부터 공산주의자를 경계했지만 초기에는 하지의 권고 때문에 좌우합작을 해보려고 했다. 박헌영과 몽양(여운형)도 만나고 설산을 내세워 좌파와 합작협상을 시켰다. 공산당

    중앙일보

    1972.02.10 00:00

  • 미·일 정상회담의 결산|「극동긴장」풀이에 혼선 사또

    【동경=조동오 특파원】「샌클러멘티」미·일 정상 회담의 핵심은 중공문제들 주제로 한 국제정세에 대한 양국의 의견 조정이었다. 그러나 회담후의 공동발표(JOINT STATESMENT)

    중앙일보

    1972.01.10 00:00

  • 닉슨 선발대 중공 향 발

    【키비스케인27일UPI급전동양】백악관 공보비서 로널드·지글러 씨가 이끄는 대통령보좌관과 기술자들로 구성된 선발대가 내년 2월21일부터 시작되는 1주일간의 닉슨 대통령 중공방문을 준

    중앙일보

    1971.12.28 00:00

  • 미·중공 제3국 문제 흥정 안해-키신저 닉슨 중공방문 일정발표서 확언

    【워싱턴 1일=김영희특파원】「닉슨」 미국대통령은 중공지도층과의 회담에서 제3국에 관한 여하한 흥정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키신저」 보좌관이 30일 말했다. 「키신저」보좌관은 30일

    중앙일보

    1971.12.01 00:00

  • (231)유엔군의 총퇴각(4)|평양철수(3)

    피란 길에는 으례 여러 비극이 뒤따르게 마련이지만 평양철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군 당국에서 민간인의 철수계획을 마련하지 못해서 큰 혼란을 빚어냈다는 것은 전회에서 밝힌 대로

    중앙일보

    1971.09.23 00:00

  • 유 대사 위기모면

    【사이공=신상갑 특파원】유양수 주월대사 일행은 21일 상오 월남 정부군 제2군단장실에서 공산군이 쏜 박격포 포격을 받았으나 포격이 빗나가 위기를 모면했다. 이날 유 대사는 부인을

    중앙일보

    1971.09.22 00:00

  • 엇갈린보고, 1시간후 "공비"|현장확인 3시간후에 정정

    국방부대간첩대책본부에23일하오1시20분쯤 공수단복장의 무장괴한이 인천송도에 출현, 무차별살상을 하고있다는 첫보고가 들어왔다. 대간첩대책본부관계관들은 현지보고와 경찰보고를토대로 이들

    중앙일보

    1971.08.24 00:00

  • (235)|한-미 합동첩보비화「6006부대」|윤일균

    「미군포로명단 입수작전」이 52년 늦은 여름 6006부대와 공군특무부대 합동작전으로 전개되었다. 52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펼쳐진 작전은 정전회담과 직접간접으로 관련된 것이 많았고

    중앙일보

    1971.08.19 00:00

  • 신민, 표결결과에 자가비판

    대한적십자사의 남북한회담제의가 공화당에만 사전 통고된 사실이 12일 하오 열린 국회간담회에서 말썽이 됐다. 국회의장단 여야총무단 등 국회간부들이 참석한 간담회는 최두선 적십자총재로

    중앙일보

    1971.08.13 00:00

  • (56)현장 취재…70만 교포 성공과 실패의 자취|파라과이서 협업농장 꿈에 부푼 전영환씨-미주(20)

    『농업이민으로 왔으면 농사를 지어야 할것 아닙니꺼. 내 기필코 이상적인 농장하나 만들어 볼랍니더.』- 농장주는 억센 사투리를 쓰는 경상도 사나이다. 본적은 경북 대구시. 노동운동에

    중앙일보

    1971.07.21 00:00

  • 한국안보에 미·일협조 필요

    레어드 미국방장관은 한미안보협의회를 마치고 14일 상오 8시 이한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군병력수준의 감축은 국군현대화 진척과 경제력에 어울리는 선으로 조절돼야할 것으로 생각

    중앙일보

    1971.07.14 00:00

  • "「밴드」보니 장비도입 급해"

    12일부터 시작된 한미안보회의에서 정래혁 국방장관이 『생산적인 회의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자 「레어드」미국방장관도 「프랭클리」(솔직하게) 「캔더들리」(숨김없이) 「오픈리」(털어놓고

    중앙일보

    1971.07.13 00:00

  • 제1차 한·미 안보회의 개막

    「멜빈·R·레어드」미국방장관을 맞아 열리는 제1차 한미안보협의회가 12일 하오 2시부터 국방부 회의실에서 막을 올렸다. 12, 13일 이틀동안 계속될 한미안보회담에는 한국측에서 정

    중앙일보

    1971.07.12 00:00

  • (193)-(9)「6·25」21주 3천여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

    (6) 10월 19일 상오 11시쯤 평양은 국군 제1사단, 제7사단, 그리고 미 제1기갑사단에 의해 완전히 탈환됐다. 「프랭크·밀번」소장의 미 제1군단이 10월 9일 38선을 넘어

    중앙일보

    1971.06.25 00:00

  • 주말여행

    아카시아 가로수 사이로 차를 달리면서도 너무나 갑작스레 떠난 여행이라 얼떨떨했다. 토요일오후 무료함을 덜기 위해 극장에나 가자던 계획이 우연히 만난 친구덕분에 돌변해 버린 것이다.

    중앙일보

    1971.06.12 00:00

  • (167)「6·25」20주년…3천 여의 증인회견·내외 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인천상륙(10)|한국 해병대의 출동(2)

    한국 해병대는 미 제1해병 사단에 배속됐기 때문에 자연히 모든 작명이나 지휘를 미군으로부터 받았다. 인천에 상륙할 때에도 미 해병 다음으로 제2파에 끼여 올라갔다. 그러나 상륙이나

    중앙일보

    1971.04.26 00:00

  • 판가름 목전에 둔 두 후보

    3월27일부터 시작된 여야의 유세는 오는 26일로 끝맺어 꼭 한달 간. 공화·신민 양당의 후보 및 중진반 유세는 그 동안 대도시로부터 읍·면에 이르기까지 약 6백 회를 기록했고

    중앙일보

    1971.04.24 00:00

  • (164)인천 상륙(7)

    영흥도 첩보전(2) 「맥아더」사령부 정보 부에서 특파한 「유진·프랭클린·클라크」해군 대위의 첩보 반이 영흥도에서 인천 상륙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해군

    중앙일보

    1971.04.19 00:00

  • 미국서 보는 물품 거의 갖춰 중공 방문 탁구팀 상해「쇼핑」

    【향항 16일 UPI동양】상해를 방문중인 미국 탁구 선수단은 16일 상해 최대의 백화점에서「쇼핑」을 하며 단원 각자가 가진 돈을 썼다. 중공 측은 미국 선수단원들에게 「쇼핑」에 쓸

    중앙일보

    1971.04.17 00:00

  • 북평에 봄은 오는가

    미 선수와 가장 많이 대화 "바람차서 미안하다" 감기조심 당|통역 오역 고쳐주어 영어실력 보여 【북평14일UPI동양】「제럴딘·레세크」·「줄리언·슈먼」기=북평 방문 마지막날을 맞은

    중앙일보

    1971.04.15 00:00

  • 귀빈 대우 받으며 만리장성 구경|AP·UPI 통신의 북평 제2신

    【북평 12일 AP급전동화】중공은 12일 중공을 방문중인 미 탁구 선수단을 북평 밖의 유명한 만리장성으로 안내, 두 시간 동안 환대함으로써 연 사흘째 귀빈 대우를 했다. 미국 선수

    중앙일보

    1971.04.13 00:00

  • (121) |우정 80년|강직순

    필자 강직순씨 (69)는 1919년 체신국 전신 사무원으로 체신계에 발을 디딘 이래 보험 과장, 남원 우체 국장, 인천 우체 국장, 부산 체신청장을 역임하고 1949년 제3대 체신

    중앙일보

    1971.04.0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