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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해심 많은「외무부백과사전」|박쌍용 외무차관

    미국·일본·유엔등 주요공관과 외무부의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30년 외길의 정통 외교관. 외교업무 전반에 매우 밝아 「외무부백과사전」, 「컴퓨터」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치밀한 업무처

    중앙일보

    1987.09.05 00:00

  • 공관장급 16명 이동

    정부는 30일 강영훈 외교 안보연구회장을 주영대사에, 박쌍룡 외무부 정무차관보를 주「제네바」대사에 임명하는 등. 대사 9명, 총영사 1명, 본부 6명 등 16명의 공관 장급 외교관

    중앙일보

    1980.12.30 00:00

  • 소, KAL화물 반송

    소련정부는 사고KAL기가 무르만스크에 남겨둔 화물 1「트럭」분을 소련 국영항공편으로 「파리」까지 실어주겠으며 운임은 미「팬암」항공편에 지불할 것을 미 정부를 통해 한국정부에 알려왔

    중앙일보

    1978.04.27 00:00

  • 송환1보는 일대사관서

    21일 밤을 꼬박 새운 외무부의 KAL기 송환대책 전담반은 주일 대사관으로부터 「코시긴」소련 수상이 승객의 송환을 약속했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일단 안도. 저녁 10시쯤 연회에 참석

    중앙일보

    1978.04.22 00:00

  • 김 문공, 하와이 향발 「이민75주년」참석

    김성진 문공부장관은 「호놀룰루」에서 열리는 「하와이」이민 75주년 기념행사에 정부사절로 참석키 위해 박쌍용 외무부미주국장을 대동하고 12일 하오 9시40분 KAL편 출국한다.

    중앙일보

    1978.01.12 00:00

  • 김 문공, 경축사절로 하와이 이민 75주년

    김성진 문공장관은 금년 1월로 「하와이」 교민정착 75주년을 맞아 박쌍용 외무부 미주국장을 데리고 경축사절로 참석키 위해 오는 12일 출국한다.

    중앙일보

    1978.01.06 00:00

  • 예상했던 일…대책 서있다

    미 의회가 박동선씨에 대한 소환장을 발부했다는 현지보고를 받고 외무부측은 『이미 다 예상했던 일』이라며 『우리도 충분한 대처방안을 갖고있다』고 담담한 반응. 박동진 외무장관은 미

    중앙일보

    1978.01.05 00:00

  • "상당한 진전"|박 외무-스나이더 내주 초 5차 회담

    박동진외무장관과 「리처드·스나이더」주한 미 대사는 10일하오 외무부에서 박동선 사건 해결을 위한 제4차 회담을 갖고 양측간에 이견을 보이고 있는 박씨의 출국문제 등을 협의했다. 요

    중앙일보

    1977.11.11 00:00

  • 미 측 대표단 구성에 불만

    20일 하오 한미 법무관계자 협상이 결렬된 직후 총리실을 다녀온 박동진 외무장관은 앞으로의 전망을 묻자 『시간이 걸릴 것이다』고만 답변. 뒤이어 윤하정 차관, 박쌍용 미주국장 등과

    중앙일보

    1977.10.21 00:00

  • 한국측대표단·일정 등 확정

    25, 26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10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의 일정과 한국측 대표단이 21일 확정, 대표단은 서종철 국방부장관을 수석대표로 한 11명이다. 「카터」미행정부 출범 후

    중앙일보

    1977.07.21 00:00

  • 철군보완책·「반한할동」등 논의

    방한 3일째를 맞은 「필립·하비브」미국무차관은 12일 상오11시 중앙청으로 최규하국무총리를 예방, 주한미지상군철수에 따른 외교적 보완책과 김형욱사건 등 한미간의 주요 현안문제에 관

    중앙일보

    1977.07.12 00:00

  • 밝은 표정으로 "문제없다"

    26일 외무부회의는 주로 한국 측이 철군에 따른 외교·군사적인 면에서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보완책을 촉구한 반면 미국 측은 이를 원칙적인 면에서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회의가

    중앙일보

    1977.05.26 00:00

  • 정치·군사문제 분리, 별도회의 갖기로

    「필립·하비브」미 국무성차관과 「조지·브라운」합참의장 일행은 당초 계획을 변경, 26일 외무부에서 열릴 예정이던 외무·국방합동회의를 정치회의와 군사회의로 분리하여 외무부와 국방부에

    중앙일보

    1977.05.25 00:00

  • 불쾌지수가 떨어졌다.

    『불쾌지수가 조금 떨어졌다』-. 박동진 외무장관은 27일 하오 「스나이더」주한 미 대사와 요담을 끝낸 뒤 삼청동 총리공관의 만찬을 향해 사무실을 나서면서 이같이 논평. 외무부는 지

    중앙일보

    1976.12.28 00:00

  • 판문점사건 서울-워싱턴 사이

    판문점 도끼살인사건이후 만 10일-. 사건발생이후 미류나무 벌목작전, 김일성의 유감표명 메시지, 주한 미 전력의 증강, 살인자처벌 요구, 공동구역경비문제 등 북괴와 한미간을 잇는

    중앙일보

    1976.08.28 00:00

  • 한국의「탈유엔」정책 사태 관망한 후 결정

    【워싱턴=김영희 특파원】한미 두 나라 외상은 9일 회담을 갖고 올 가을부터의「유엔」전략에 관해 한미간에 긴밀한 협의를 계속하면서 좀더 두고 보자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박동호 외무장

    중앙일보

    1976.04.10 00:00

  • 미의 대한원조문제 등 협의

    박동진 외무부장관은 19일하오「스나이더」주한미국대사의 방문을 받고 약1시간40분 동안 요담했다. 이 자리에는 외무부에서 박쌍용 미주국장, 정우영 방교 국장이, 미국 측에서 「클리블

    중앙일보

    1976.02.2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