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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와 이승만 대통령|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계속 북진하고 있는 우리 애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안쪽에서 우렁찬 노래를 부르며 급진중이라고 신성모 국방장관이 보고해왔다. 적의 저항은 별로 없었다고 했다. 지금 우리국군 2개사단의

    중앙일보

    1983.08.13 00:00

  • 6·25와 이승만대통령|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만에 공개|금강산은 나와 대통령을 맺게해준 교량|처음 만나 "절경" 얘기하자 감명받은 듯

    오늘따라 손제독부인은 무척 생기가 돌아보였다. 알고 보니 이번 승전은 그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손제독은 아무런 내색도 없이 부

    중앙일보

    1983.08.11 00:00

  • 6·25 「북침설」

    『하느님, 총이 없는 우리 아이들을 보살펴 주옵소서』 이승만대통령이 매일 밤 피난지 대구에서 절규한 기도다. 최근 중앙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프란체스카」여사의 비망록 『6·25와

    중앙일보

    1983.08.11 00:00

  • 6·25외 이승만대통령|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워커」장군은 우리에게 경무대가 아직도 위험하니 잠만은 서울 필동에 있는 「한국의 집」에서 자도록 하라고 제의해 왔다. 대통령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쪽이

    중앙일보

    1983.08.10 00:00

  • 6·25와 이승만대통령|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맥아더」장군이 대통령의 차를 앞세우도록 지시하려하자 대통령은 『오늘은 개선장군이 먼저 환영을 받아야하오. 장군의 차를 앞세우시오. 이것은 한국국민 전체의 뜻이요!』하고 우리차를

    중앙일보

    1983.08.09 00:00

  • 6·25와 이승만 대통령|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대통령 일행은 하오4시 경산역을 떠나 임시관저로 돌아왔다. 우리 내외는 대통령 호주머니 속에 있던 얼마 안되는 잣을 씹으며 조금은 시장기를 면할 수 있었다. 지사관저에는 양지사부인

    중앙일보

    1983.08.08 00:00

  • (31)

    9월24일. 저녁에 「무초」대사와 「노블」이 와서「맥아더」 장군의 두번째 전문을 전해주었다. 29일 서울에 입성하면 수복지역의 모든 권한을 한국정부에 돌려주는 의식을 갖겠다는 것이

    중앙일보

    1983.08.06 00:00

  • (29)

    9월17일. 밤사이에 폭우가 쏟아져 땅이 온통 진수렁이 됐다. 우리는 초조했다. 병사들은 무릎까지 물이 차오른 참호속에서 싸웠을것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날씨까지 차가와진다. 수용소

    중앙일보

    1983.08.04 00:00

  • (28)피난민들 빈 들판으로 돌아가게 할순없다|대통령, 미군측에 추수기전 실지회복재측

    9월10일. 김홍일장군이 아침에 찾아왔다. 국회의원 이종현씨도 왔다. 미군정시절 그의별명은「더티·코트·리」 였다. 이의원은 조내무장관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지 그를 해임하지 않으

    중앙일보

    1983.08.03 00:00

  • (19)

    8월 18일. 대통령은 공군의 김정렬 장군을 불러, 대구로 떠날 비행기를 대기시키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은 상오 10시45분 진해를 출발, 전투기 2대의 호위를 받으며 30분 후

    중앙일보

    1983.07.19 00:00

  • 6·25와 이승만대통령

    대통령의 참외선물을 받은 만송의 두아들 강석·강욱은 고맙다는 인사를 왔다가 대통령의 말동무가 되었다. 대통령은 두형제를보자 『요놈들, 이 할아버지하고 팔씨름 시합할래?』 하고는 팔

    중앙일보

    1983.07.07 00:00

  • 6·25와 이승만대통령

    밀려드는 피난민들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쌀값은 아침 저녁이 다르게 뛰어올랐다. 대통령은 점심을 밥대신 삶은감자나 밀가루음식으로 바꾸도록했다. 사실 대용식으로 바꾸고나서 대통령

    중앙일보

    1983.07.06 00:00

  • 6·25와 이승만대통령

    7월27일 새벽, 야크기의 공습이었었다. 적기의 대구공습이 잦아지게되자 나는 대통령에게 야간민정시찰을 중단하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요즘 저녁식사후엔 대구거리와 골목·시장을

    중앙일보

    1983.07.05 00:00

  • 6·25와 이승만 대통령|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적의 부산 압박소식에 낙담

    적은 목포와 대구를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도 미군들은 적의 전진루트에 비행기를 출격시켜보면 적군이고 탱크고 하나도 보이는게 없다고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직까지도

    중앙일보

    1983.07.04 00:00

  • 6·25와 이승만대통령(4)|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

    7월16일 아침 국방장관은 동해안에 적군 3천명이 상륙했다고 보고했다. 연합군해군은 해안선을 철통같이 지키고있다고 했었는데 이 또한 허풍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서해안을 지키고있는

    중앙일보

    1983.06.28 00:00

  • 다시 본 이 박사

    인격은 어둠 속에서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요즘 중앙일보에 실리고있는 「프란체스카」여사의 비망록을 보면 새삼 그런 생각이 든다. 멀리서, 혹은 남의 체험을 통해 우리가 듣고 보

    중앙일보

    1983.06.28 00:00

  • 6·25와 이승만대통령(3)|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

    대통령이 부산에 머무른지 닷새째인 7월7일 유엔안전보장 이사회는 미국 통솔 하에 유엔군총사령부를 설치키로 결의하고 초대연합군사령관에「맥아더」장군을 임명했다. 이보다 앞서 7월4일

    중앙일보

    1983.06.27 00:00

  • 「마미」일기

    「마미」는 이승만대통령이 즐겨부르던 「프란체스카」여사의 애칭이다. 그 「마미」가 엄청난 전쟁을 겪는동안 일기를 남긴 것은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공산군은 6월5일 새벽 5시에 쳐

    중앙일보

    1983.06.25 00:00

  • (1) 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

    이 민족 최대의 비극인 한국전쟁발발 33주년―. 수도서울을 적의 수중에 넘겨주고 치욕적인 후퇴와 후퇴의 거듭끝에 낙동강 최후방어선을 보루로 서울수복까지 고난과 파란의 전시국가를 이

    중앙일보

    1983.06.24 00:00

  • 필리핀의 대미 창구 로몰로 외상 사의 던져

    필리핀의「카롤로스·로물로」외상이 14일 84회 생일축하연회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마르코스」대통령은 즉각 전국에 방영된 텔리비전 연설을 통해 그가 사임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중앙일보

    1983.01.15 00:00

  • 맥아더 여사에 기념품

    김세진 뉴욕 총영사(사진)가 11일 고「맥아더」장군의 미망인「더글러스·맥아더」여사에게 한미수교 1백주년 기념쟁반을 선사하고 있다. 【AP전송=연합】

    중앙일보

    1982.08.14 00:00

  • 이엘다와 맥아더여사

    ◇「마르코스」필리핀대통령부인인 「멜다」여사(사진(우))와「더글러스 맥아더」원수의 미망인(좌>이 14일 뉴욕의 블루링데일 백화점에서 열리고 있는『친구들의나라 필리핀』이란 이름의전시회

    중앙일보

    1982.04.16 00:00

  • 무초전대사등 40명 5월22일전후 방한

    한미수교1백주년기념사업추진위(위원장 김용식한적총재)는 1백주년 기념일인 5월22일을 전후해 「무초」초대주한미대사등 생존한 역대대사, 「리지웨이」장군을 비롯한 역대 유엔군사령관및 8

    중앙일보

    1982.04.02 00:00

  • 무초전대사등 40명 5월22일전후 방한

    한미수교1백주년기념사업추진위(위원장 김용식한적총재)는 1백주년 기념일인 5월22일을 전후해 「무초」초대주한미대사등 생존한 역대대사, 「리지웨이」장군을 비롯한 역대 유엔군사령관및 8

    중앙일보

    1982.04.0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