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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국대 설립자 상허 유석창 사상 재조명 활발

    건국대와 민중병원 설립자인 상허 유석창(사진) 사상연구발표회가 건국대 본관 소강당에서 열린다. 상허기념사업회가 건국대 개교 41주년에 즈음하여 마련하는 이 발표회에서는 「유일우

    중앙일보

    1987.05.11 00:00

  • 단군 신화를 「사실」로 반영

    89년 (중) 과 90년 (고)부터 사용되는 중·고교 국사 교과서는 단군 신화를 실제로 있었던 역사 사실의 반영으로 파악하고 고조선이 정치적·문화적으로 상당히 발전했음을 명기한다.

    중앙일보

    1987.03.26 00:00

  • 지난 줄거리

    제1장 「하늘과 대지」 는 민족의 형성과 고조선의 건국과정을 이야기로 형성하려는 장인 셈이다. 대략 중국의 북동부에서 난하와 대릉하와 요동에 이르는 만주지역이 동이의 활동지역이라

    중앙일보

    1987.01.17 00:00

  • "「무력통일」집착포기 개방정책 추구"|김일성이후의 북한(서대연)

    지난 11월의 김일성사망설은 사실무근으로 밝혀 졌으나 이를 계기로 우리는 「김일성이 없는 북한」을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 김일성자신도 나이를 생각, 후계자를 내세우고 80년대 후

    중앙일보

    1987.01.01 00:00

  • 바래미

    팔오헌공 푸른 견풍 학록서당에 뿌리 내려 충의 정신 갈고 닦으며 학덕 밝힌 선비 마을 3·1의 그 뜨거운 불길 바래미로 옮겨 붙어 심산 투사 명월루서 영남 유림 뜻을 세워 독립 청

    중앙일보

    1986.08.16 00:00

  • "위만조선은 고조선과 함께존재"

    윤내현교수(건국대·역사학)가 위만조선에 대한 새로운학설을 제기했다(『사학지』제19집 「위만조선의 재인식」). 윤교수는 위만조선이 지금의중국 하북생 동북부 요하 동부지역에서 고조선과

    중앙일보

    1986.03.11 00:00

  • 성씨의 고향(글 사진 문병호기자)|광주 김씨

    광주 김씨의 시조 김녹광은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다섯째 아들 김석의 7세손으로 전한다. 고려중엽 몽고의 침입 때 상장군으로 몽고군을 쳐부순 공으로 광주군에 봉해져 광주를 본관

    중앙일보

    1986.01.25 00:00

  • (10)친일파처단 공방(상)|"누가 친일이냐"논란…정략의 방편으로

    해방후 한민족이 당면한 문제는 일제통치하에서 말살된 민족기능의 회복이었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자주정부의 수립이며, 경제적으로는 민족경제의 안정이며, 이념적으로는 민족정기의 회복이었

    중앙일보

    1985.11.28 00:00

  • (151) 거제 반씨

    반씨는 고려 충렬왕때 문하시중(국무총리격)을 지낸 문절공 반부의 후손들이다. 기성(경남거제의 옛이름)을 비롯, 충주·남평·청도·홍천, 예천·음성·전주·광주등 여러 갈래로 분파됐으나

    중앙일보

    1985.11.02 00:00

  • 단군성전확장

    단군왕검은 우리민족의 조상 어르신이시다. 기원전 2333년 이땅에 고조선을 건립하시고 요서, 만주,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방문화를 확장시키며 「홍익인간」이란 건국이념 아래 많은 이주

    중앙일보

    1985.10.31 00:00

  • (4)논쟁보다 인신공격·모함이 판쳤다|인공이냐 임정이냐 임정측 "소사주받아 탁치 지지한 매국노집단"|인공측 "해외혁명세력의 하나로 친일파 비호"|양파 통합시도에 실패하고 소멸|심지연

    건준의 조직을 이어받아 9월초부터 전열을 갖추어 온 인공과 11월말에 귀국했지만 해외망명정부라는 후광을 안고있는 임정사이의 정치논쟁은 대개 두가지 사항으로 요약된다. 첫째 이들이

    중앙일보

    1985.09.04 00:00

  • (2)건준이냐 한민당이냐|심지연

    한민당이 취한 건준에 대한 공세는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미군의 상륙이 임박하기는 했지만 건준의 독무대다시피 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민당

    중앙일보

    1985.08.21 00:00

  • (142)안악이씨

    안악이씨의 시조는 이극규다. 고려건국의 공신으로 삼중대신태사에 오르고 안악을 식읍으로 받아 후손들이 관향으로 삼게됐다. 지금도 안악 뒷산에는 이씨네 터전이었던 양산대가 있으며 옛성

    중앙일보

    1985.06.01 00:00

  • 민족설화를 총체예술로 극화

    작품 『알』로 호암아트홀 개관과 중앙일보 창간20주념기념 장막희곡모집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된 노경식씨(47)는 문단에서20년을 꾸준히 활동해온 중견작가. 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중앙일보

    1985.05.22 00:00

  • 〈남기고 싶은이야기들(4241)〉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174)|민세의 청절

    1928년 5월 민세는 『제남사건의 피상관』이란 제목의 사설을 썼는데 이 사설에서 민세는 일본의 다나까내각이 중국 산동에 출병을 감행한 것은 무력으로 중국을 침략하려는 명백한 전초

    중앙일보

    1985.03.02 00:00

  • (5)학술

    올해 벽두부터 학계의 관심을 모은 문제는 우리사회의 자생적 발전에 관한 이론모색이었다. 무절제한 서방이론의 모방에서 탈피, 우리에게 맞는 발전양식을 찾아보자는 시도였다. 논의는 정

    중앙일보

    1984.12.24 00:00

  • (4183)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116)-부함 문화론

    육당이 서재로 돌아가 처음 완성한 것이 『부함문화론』 이었다. 이 논문은 「조선을 통하여 본 동방문화의 연원과 단군을 계기로한 인류문화의 일부면」이란 부제가 붙어 있었는데 이 논문

    중앙일보

    1984.12.04 00:00

  • 「삼국형성시기」"BC 1세기 이전으로 올릴수 없다"

    지난10일 춘천 한림대에서 열린 한국고고학 전국대회에선 한국사 최대쟁점의 하나인 삼국의 국가형성시기를 놓고 고고학자와 문헌사학자 사이에 열띤 토론을 별였다. 논의의 대체적인 흐름은

    중앙일보

    1984.11.27 00:00

  • (4174) - 30년대의 문화계 (107)|육당 최남선

    육당 최남선은 이상협의 권유에 따라 l935년쯤부터 매일신보 학예면에 장기집필을 시작하였다. 그는 시대일보에서 물러난후 종로6가에 있는 강사동에 칩거중이다가 l928년 조선총독부의

    중앙일보

    1984.11.23 00:00

  • 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53)조용만-「매일신보」

    대학을 졸업하던 1932년 1년 동안 취직이 안되어 나는 놀고만 있었다. 세브란스의전의 김흥제 선생은 총독부에서 여권을 얼른 내주지 않고 끌고만 있어 9월에도 가지 못하고 명년 봄

    중앙일보

    1984.09.18 00:00

  • (4117)-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50)|조용만|인촌과 보전

    1932년은 다사다난하던 해여서 그 전해 9월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군부는 3월1일을 기해 만주국 건국을 선언하고 청나라 황제였던 보의를 집정으로 앉혔다. 이에 대해 「리튼」경을

    중앙일보

    1984.09.14 00:00

  • 원말 중국왕족 출신 | 서촉서 고려귀화· 연안에 터잡아

    명씨는 지나의 왕족이었다. 시조는 명옥진-. 지나대륙을 한때 지배했던 원의 세력이 기운 l362년 (고려 공민왕11년) 그는 지나 서부의 오지 서촉 땅에서 자립, 성도에 도읍을 정

    중앙일보

    1984.09.01 00:00

  • (117)진씨(글 사진 김창욱기자)

    진씨는 「풍기」와 「진주」를 각각 본관으로 하는 두파가 주류를 이룬다. 이밖에 「삼척」 「영춘」 「용인」 「평강」 「남원」 본관의 소파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진씨의 90%는 풍

    중앙일보

    1984.08.24 00:00

  • (102)성산 이씨

    성산 이씨의 시조는 고려 개국 공신 이능일-. 신라 말엽 성산(현성주군) 일대를 통치해온 호족이었다. 그는 12년 동안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수훈을 세웠다. 고려건국 후 왕건

    중앙일보

    1984.03.1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