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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을 만난 일본인이 살아있다
【동경=박동순 특파원】1884년말의 갑신정변에 실패, 일본에 망명한「김옥균」을 지금부터 80년 전인 1893년에 자기 마을에서 여덟살의 어린 나이로 만나고 당시의 일을 아직도 또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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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원유 값 얼마나 오를 것인가
작금의 석유파동은 주로 공급량과 관계되고 있으나 앞으로는 가격문제도 크게 부상될 것이라는 관측은 어렵지 않다. 전문가들은 최소한 80년대까지는 이른바 판매자시장이 지속될 것으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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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제31화 내가 아는 박헌영(141)
변귀현은 이승엽계로 맹종호(남노당 유격대 제10지 대장으로 김일성에 대하여 「쿠데타」를 음모하였다는 죄로 북한에서 총살당함)의 친구이며 「노력인민」공장책에서부터 기관지부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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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무부 이동 총영사·국장
정부는 20일 공석중인 ▲밴쿠버 총영사에 최명준 랭군 총영사 ▲시카고 총영사에 윤영교 통상국장을 전보하는 등 외무부의 총영사 및 국장인사 이동을 다음과 같이 발령했다. ▲랭군 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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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제31화 내가 아는 박헌영(106)|박갑동
공산당 간부들에 대한 미군정의 체포령이 내리기 하루 전날 김수임으로부터 미리 귀띔을 받은 박헌영 자신은 그날로 영구차를 타고 평양으로 도망쳤으나 이강국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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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3백 56명 재임명
박정희 대통령은 27일 유신헌법과 개정된 법원 조직법에 따라 고법 부장판사를 포함한 3백56명을 재임명, 41명의 현직 법관을 재임명에서 제외 또는 정년 퇴직에 따라 면직 발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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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 주가 내리막길|일본 재계서 점차로 외면 당해
일본 정계의 숨통을 쥐고 있는 것은 바로 재계. 한데 최근 일본 재계의 유력자들 사이에 「다나까」 정권의 단명설이 상당히 강력하게 대두하고 있다. 취임 8개월 밖에 안되는 「다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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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외교정책과 인간성
소련국립합창단이 최근 「런던」의 「엘리자베드·홀」에서 공연했을 때 바로 공연장 밖에서는 이곳에 망명중인 소련계 유대인 「빅터·요란」이「바흐」와 「라벨」의 작품을 가지고 시위연주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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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북간도(20)|이지택
이때부터 북간도는 왜경의 검거선풍, 무력항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어간다. 이보다 앞서 2월 18일에 국자가 하장리의 박동원 집에서 광복단이란 것이 조직되었다. 이 박씨는 연길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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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유엔「한국 문제」에 기권 못 막은 이유와 공보관의 불균형 예산 집행 따져 외무위 구주반|농림위 야, 뱀장어 양어장에 관한 「위증」 들어 정 경남 지사 고발키로 전남 농·수협 자금 배정의 정치성 지적
○…외무위 구주 지역 감사반은 15일 「파리」서 감사를 시작했다. 주불 대사관 감사에서 오세응 의원(신민) 은 「유엔」 총회에서 한국 문제 불상정안에「프랑스」가 기권한 이유를 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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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회 생신 맞은 박 대통령
30일은 1917년생인 박정희 대통령의 55회 생신. 박 대통령은 이날 아침을 가족들과 함께 아침을 나누고 바로 집무에 들어가 김종필 총리, 정일권 공화당 의장으로부터 일·중공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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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 독자들의 시시비비
22일은 중앙일보의 창간 7주년. ▲중앙일보를 펼 펴 볼 때는 어떤 기사를 먼저 보며, 편집성격을 어떻게 보는가. 또 신문제작에 돋보이는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인가. ▲한편 신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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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생활의 단층을 깊었다|직접 대했던 이들이 말하는 북의 사람
『북의 일행』54명이 서울에 머무른 지 4박5일-. 먹고 자고 보고 말하면서 그들이 남긴 일거일동은 분단 27년이 빚은 남북생활의 거리를 역력히 드러낸 것이었다. 숙소에서,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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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과 인내로 난관타개|장기적 안목으로 추진을|이병도 적십자 회담은 본시 이념과「이데올로기」와 정치체제를 초월해서 순전한 인도주의·적십자정신, 또는 동포애의 입장에서 가족 찾기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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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 대표들 서울 97시간의 결산|드러난 북의 본질…성급한 기대에 찬물
27년만의 나들이 96시간-. 남녁의 바람을 쐰 북적 대표들의 숨가쁜 서울 4박5일은 끝났다. 가족 찾기 남북 적십자 회담 제2차 서울 본 회담에 참석한 북적 대표단 일행 54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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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운율 속 고궁 「파티」|경회루 「리셉션」…남북 대화 1시간 넘어
12일 밤 북적 대표들을 위한 경회루 「파티」는 8백여명의 인사가 모여 「남과 북」 단 한가지의 화제를 놓고 27년간 끊겼던 대화의 회포를 풀었다. 청사초롱이 켜진 가운데 은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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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다리」건너 돌아와|한적 대표일행 4박5일 일정 마치고
【판문점=대한민국 신문·통신취재단】『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또 오십시오』-남북적십자 본 회담 한적 측 대표 등 일행54명은 2일 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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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파벌」은 없다"
공화당의 신·구 당의장 이·취임식이 있던 27일의 공화당 중앙당사는 당직자들 외에도 정구영 전 총재를 비롯한 5백여명의 당원들이 착석해서 식장을 빽빽이 메웠다. 집에서 쉬고있던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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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주변 「인사화제」만발
백남억 공화당의장의 사표수리가 전해지자 정가주변엔「인사화제」가 만발. 우선 그후임에 대해서는 신형식 공화당 대변인의 상황설명(당무위원을 포함한 당직자 중에서 임명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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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당의장의 사임과 공화당의 집안사정|지도체계엔 무변동
국회의장의 사의표명에 뒤이어 공화당 의장이 사임했다. 백남억 당의장은 고위층 자제의 병무 부정사건이 노출된 후 지난 주초에 이미 사표를 썼다. 백 당의장의 장남은 병역 그 자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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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 잉태한『당 대회 연기』
5월에서 7월로 전당대회를 연기했던 신민당은 예정일을 불과 열흘 앞두고 다시 8월로 두 번째 택일을 미루었다. 전 당수 유진산씨와 당수 출마가 굳어진 상황에서 한동안 반 진산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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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시민사범 단속
서울시는「반 시민행위」단속에 나서 대낮에 춤추던 남녀 2백45명을 즉심에 회부하고 업 태 위반한「카바레」등 2개 업체를 입건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당국이 듣기에도 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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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아이크」 집권과 내한 (4)|3일간의 방한 (1)
1952년11월29일, 대통령 당선자 「드와이트·D·아이젠하워」 원수는 그가 「디트로이트」시에서의 선거 유세 때 공약한 한국 방문 길에 올랐다. 이보다 앞서 11월5일에 「트루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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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돌파에 휘말린 금융가 안팎 표정
28일의 국책은행인사개편으로 금융 가의 인사파동은 고비를 넘겼다. 1주일 가까이 격동했던 파동의 막후 동정과 현장의 표정들을 추적, 정리해 본다. 국책은행인사를 발표하는 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