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600)| 북간도(20)|이지택

    이때부터 북간도는 왜경의 검거선풍, 무력항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어간다. 이보다 앞서 2월 18일에 국자가 하장리의 박동원 집에서 광복단이란 것이 조직되었다. 이 박씨는 연길도윤

    중앙일보

    1972.11.03 00:00

  • (595)북간도(16)|이지택(제자 이지택)

    간도가 독립운동의 기지로서 안성마춤인 것은 일본과 중국이 싸우는 관계도 있었지만 특히 유리한 것은 노령에 인접해 있었던 점이다. 독립운동자들은 일본 놈을 쏘아 죽이거나 일본군을

    중앙일보

    1972.10.30 00:00

  • (594)제28화 북간도

    1910년을 전후한 무렵 북간도 전역에는 많은 서당·학교가 들어섰다. 모두가 독립지사들이 힘을 기르기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내가 다닌 영신학교는 1909년에 회령사람 윤상철이

    중앙일보

    1972.10.27 00:00

  • (167)-제자는 필자|제12화 조선은행(6)

    대정말기부터 중·일 전쟁이 일어난 1937년까지의 기간은 세계를 휩쓴 극심한 경제공황의 여파가 우리 나라와 일본에까지 미쳤다. 더우기 23년의 관동대지진에 따른 일본의 경제 사회

    중앙일보

    1971.05.31 00:00

  • "내나라 위해 싸운 것 뿐"|포상신청 거절해온 북만주투사 최석호용

    『제 손으로 자기 자랑하는 법이 아니라』는 대쪽같은 성품 때문에 두메산골에 파묻혀 지내온 북만 독립투사 최석호옹 (77) 이 독립유공자의 포상대열에서 소외당한 채 광복 25주년을

    중앙일보

    1970.08.15 00:00

  • 그사람들 만세를 증명한다

    김지환 28세·개성남감리교 전도사 48인중의 1인 탄원서 해외밀송. 현 서울거주 서유준 20세·휘문고보3년 휘문대표로 파고다 선언참가. 현 서울거주 류봉영 23세·명흥학교교사 평

    중앙일보

    1969.03.01 00:00

  • 광복 반평생|건국훈장받는 103명의 얼굴

    정부는 제49회 3·1절을 맞아 대한민국독립에 공이 큰 내·외국인 1백3명에게 건국훈장을, 내국인 4백56명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하기로했다. 독립유공자 심사대상으로 정부에 접수된

    중앙일보

    1968.02.2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