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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정가 「말」의 잔치
해마다 연두휘호를 써오는 박정희 대통령은 올해에도 「천하수안 망전필위」(천하가 비록 평안하더라도 전쟁을 잊고있으면 반드시 위험이 온다는 뜻)란 휘호를 써 새해 결의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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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 새마을지도자들과 환담|"농약잘안듣는 병충해가 문제"|"농업을 천직으로 아는 농고생들 많이나와야"
박정희대통령은 7일낮 경제동향보고회의가 끝난후 기획원장관실에서 새마을지도자등과 곰탕으로 점심을 함께하며 금년도 농사작황·농촌주택개량·농업고교 운영실태등을 화제로 약1시간동안 환담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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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자 회담 대책 검토 중
국회는 26일 최규하 국무총리 박동진 외무, 노재현 국방 ,이용희 통일원장관을 출석시킨 가운데 제3차 평화통일협의회를 열고 최 총리로부터 국정전반에 관한 보고와 KAL기 강제착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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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적인 기업은 작은 국가다"-박대통령, 훈장 받은 새마을지도자와 대화
박정희 대통령은 7일 새마을 지도자 김기호씨(42·경기도 평택군 송탄읍 칠원1리)와 공장 새마을 지도자 손춘수씨(47·한일합섬 총무부장)에게 새마을훈장 협동장을, 칠원1리 (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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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남고 누가 떠날까…
『지난 8월 미국에 가보니까 자칭 지도자들이 대사관이나 총영사관에 드나들면서 다음 번에 동포 대표로 유정회 의원이 되어 서울에 올 것이라고 하더라』-. 유정회 개선의 관심이 해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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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포츠담」회담|소의 대일 참전 그 내막
1945년7월 「포츠담」에서 미·영·소의 3국 수뇌가 모여 2차 대전의 전후 처리 문제가 협의됐다. 이 자리에서 「얄타」 회담 때 밀약 되었던 소련의 대일 참전 문제에 관해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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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땅 밟은 첫 미대통령|환영식 때 황태자와 악수 않고 지나 당황한 천황, 영어로"대통령각하"
일본도착이후 신변안전을 위해 계속 「격리환영」만을 받아온 「포드」대통령은 19일 상오 궁성으로 일본천황을 예방하고 나오던 길에 갑자기 궁성 앞에 운집한 2천여명의 환영인파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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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여사는 몸을 바쳐 반공 일깨웠다"
박정희 대통령은 21일 저녁 고 육영수 여사 국민장 장례고문들을 청와대로 초청, 「칵테일」에 이어 만찬을 함께 나누면서 국민장을 치르는 동안 국민 각계각층에서 정중한 조의를 표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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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독립운동
「하와이」와 미주에 이민자 한국 동포들이 벌인 항일 및 독립운동은 시국광복 운동의 큰 몫을 차지했다. 이민 초기부터 꾸준히 계속된 조국 광복 운동은 1919년의 3·1 독립선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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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상에 노임석씨(실리콘 온도계) 과학전
제18회 과학 전람회 심사 위원회(위원장 이창석 과학기술처 차관)는 20일 하오 최고상인 대통령상(상금1백만 원)을 물리 부문의 「실리콘」습도계를 출품한 전남 여고 교사 허림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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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물가인상 단속
박정희 대통령은 7일 『경제 각 부처는 이번 추석을 전후 물가가 오르지 않도록 그 대책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박대통령은 이날 경제기획원에서 열린 월간 경제동향 보고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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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을 말해주는 낯익으면서도 낯선 풍경|본사 이광표 특파원, 27년만에 본 북의 산하
【평양=대한민국 신문·통신 공동취재단】29일 하오 2시25분 단절 27년만에 평양 땅을 밟았다. 판문점에서 평양까지 2백21km. 자동차로 3시간55분이 걸리는 지척-. 4반세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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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무대 사계(93)-김상래|남기고 싶은 이야기들(466)-
일본과의 국교정상화에 대한 이대통령의 태도는 몇차례 변화를 겪었다. 초기에 회담을 시작 할 때는 미우나 고우나 일본이 이웃 나라인 만큼 한일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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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경무대 사계|황규면(필자는 윤석오)
배설물을 거름으로 쓰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결심은 단호했다. 그렇지만 몇 천년 내려온 습관이 하루아침에 대통령 지시가 떨어졌다고 해서 없어지지는 않았다. 대통령은 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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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맥아더 원수 해임(2)|웨이크 토 회담(1)
맥아더 원수의 대만방문이 가져온 파문이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이와 비슷한 사건이 같은 8월에 일어났다. 고익 보수 색채가 짙은 미 해외참전재향군인회(Veterans of For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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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국민 방위군 사건(7)|고등군법회의(1)
국민방위군 간부들의 부정사건에 관한 재심은 국회 특조위의 세밀한 진상규명과 빗발치는 세론으로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우선 이 재심을 가로막는 방위군 간부들의 정치적 배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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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6·25 21주 3천여의 증인회견 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유엔군의 총퇴각(14) |1·4후퇴(2)
1·4 후퇴 때의 전국적인 피난민 총수는 대략 2백 20만으로 추산되었다. 낙동강 공방전 때와는 달리 이때의 적 진격은 대체로 오산∼제천∼영월∼삼척선에서 저지되어 피난민들을 각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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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 농부 아들로 태어나 험구와 직선정치로 세계를 주름 잡았던 기재 공존을 심고 간 해빙 첫 주자 「흐루시초프」
23세대 글 배운 무학|회고록으로 물의도|둔한 표정이 경쟁자 싫은 스탈린 신임사 대전 후 복구 사업에 솜씨 보여 크게 승진 그 자신이 입버릇처럼 말했듯이 「흐루시초프」는 『산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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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25」20주…3천여의 증인 회견·내외 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 전쟁 3년|월경 논쟁(하)|38선 돌파와 북진(2)
38선 돌파를 둘러싼 워싱턴과 동경 사이의 논쟁은 앞서의 인천 상륙 논쟁 못지 않게 줄기차게 계속되었다. 워싱턴은 인천 상륙 논쟁에서 결과적으로 맥아더 원수에게 KO패 했음에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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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폐지론 철회 촉구|정 국방 회견 북괴 남침 유발할지도
정래혁 국방부장관은 4일 상오 신민당의 김대중 대통령후보가 예비군 폐지론을 들고 나옴으로써『국민과 향군을 선동·오도하여 향군의 조직과 운영을 교란·마비시켜 국가존립에 중대위협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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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총선 무효화투쟁 - 이재형씨
6·8후유증이란 이름으로 우리 헌정상에 변칙을 기록하게 했던 신민당의 6·8총선 무효화투쟁―. 총선 후 실로 1백74일간이라는 끈질긴 투쟁 끝에 여·야 전권대표자회담의 타결로 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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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레이디」의 행차
구라파에서 한국을 처음으로 찾아든 독일의 「퍼스트·레이디」「빌헬민·뤼프케」여사는 「뤼프케」대통령과 함께 한국의 첫 밤을 영빈관에서 지내고 「뤼프케」대통령과는 별도의 일정에 따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