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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서 있는 6·25
비록 먼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라도 그에 대한 철저한 단절이 가능하지 않는 한 그 사태는 하나의 생생한 역사적 현재로서 남는다. 6·25 동란은 벌써 25년 전의 일이었지만 북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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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3)제41화 국립경찰 창설(11)|김태선
군경경찰의 최고 수뇌부인 경무부장 조병옥씨와 수도청장 장택상씨는 서로 공무를 떠나서는 막역한 사이면서도 업무를 수행하는데는 험악하게 대립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기구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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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8)|국립경찰 창설(6)|김태선
유석 조병옥의 경무국장 취임과 함께 경찰고위간부들의 발령이 잇따랐다. 경무국장 다음으로 중요한 자리는 수도치안을 맡을 경기도 경찰부장 직 이었다. 당시 경기도 경찰부장 자리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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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6) 기독교 백년 (27)-강신명
해방의 감격도 잠깐, 소위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구실로 미·소 양국 군대가 38선을 경계로 하여 남북으로 분단, 진주함으로써 또다시 비극은 시작되었다. 미군정 하에 놓이게 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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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 국회의원
한가롭게 제헌절 휴일을 보내며 신문(본지) 한구석에서 전직의원들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제헌의원 2백 8명중에 생존해 있는 인사는 77명뿐이었다. 타계한 분들은 동난중에 납북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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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의 개최제의
남북조절위 제7차 부위원장회의가 28일 상오 10시 판문점 평양 측 지역인 판문각에서 열려 중단상태에 빠진 남북조절위 정상화를 위한 기구개편문제와 납북된 수원호 어부들의 송환문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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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인사와 적십자국제위의 중개
같은 민족간의 문제를 같은 동족끼리 해결하지 못하고 국외자의 개입을 빌어야만 하게된 현실을 우리는 우선 같은 동족으로서 슬퍼한다. 대한적십자사는 최근 적십자국제위원회(ICRC)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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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년 이래의 납북자 426명 국적, 직접 생환확인 시도
적십자국제위원회(ICRC)는 지난 14일 북한적십자중앙회에 2통의 공한을 내고 지난 54년부터 73년 3월 31일까지 20년간 한국에서 실종되어 현재 북한에 억류되어있는 것으로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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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인 조절위 안에 접근
남북 조절위 제6차 부위원장 회의는 조절위의 정상 활동을 재개하기 위한 조절위 개편 문제를 오는 6월19일 중점 토의, 서울 측은 남북 각 10명 선을 수락토록 촉구하고 북괴 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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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세 전반적 토의
【워싱턴=김영희 특파원】김동조 외무장관은 21일(현지시간) 미국무성에서「잉거솔」극동담당차관보와 만나 40분간 한반도의 안보문제, 「유엔」전략, 그리고 그밖에 양국간의 문제를 논의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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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 어부 간첩조작확대
○…북괴는 서해에서 납치해간 어부들의 간첩자백강요를 계속 확대해 13일까지 박동주 선장·백홍선 갑판장·장용환 조기수·김용건 갑판수와 수원 31호의 김근식 등 모두 6명을 북괴방송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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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거점 대규모 간첩단 범죄사실
전영관 (44·울릉군 남면도 동 373-8) 62년 12월 남파간첩 전덕술에게 포섭, 그와 함께 월북 노동당에 입당 당시 연락부장 이효순으로부터 울릉도를 전진기지화하여 지하망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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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6)|정치여생 반세기(16)-좌·우익이 대립
일본유학시절 학생들의 대부분은 사회주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내가 속해있던 독서회에서도 공산주의 조직론 등을 자주 다루었었다. 우리는 일본과 싸우는 미국·소련을 함께 지지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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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회 안정 건의
국토통일원은 2일 하오 여야 원로급 인사 12명을 초청, 북괴의 우리 어선격침 및 납북사건으로 제기된 안보문제와 남-북 대화운영방안 등 당면한 문제에 관해 폭넓은 의견교환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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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도발과 격랑딛고선 서해의 전초 백령도
서해 휴전선 최북단 백령도-.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옹진군 백령면 관내. 인천에서 험한 뱃길 1백20「마일」 떨어진 이 낙도는 바다건너 약 7「마일」넘어 북한땅 황해도 장연군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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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20년|판문점 정전위 일지에 얼룩진 그 사건과 설전
휴전 20년-. 1953년 7월 27일 상오 10시 휴전 협정이 조인돼 판문점에는 군사 정전 위원회가 들어선 지 20년이 됐다. 그 동안 판문점에서 열린 정전 위원회 회담은 3백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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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중립지대 안의 수용소(1)|인도군의 포로관리(1)
휴전조인이 끝난지도 월서가 지난 53년9월초 인천 앞바다의 미 해군항공모함 갑판 위에는 30여대의 「헬리콥터」가 요란한 폭음을 내면서 북녘을 향해 부산하게 이항했다. 흰 「더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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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결의로 평양 간다"
4개월만에 다시 한적 대표단 일행이 평양으로 떠난20일 아침 서울남산의 회담사무국 앞은 새해의 대화에 거는 기대로 설레였다. 이범석 수석대표는 『긴 휴회기간이 쌍방의 의견차이를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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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 내가아는 박헌영(20) 박갑동
신문기자시대 동아일보 기자로 있던 박헌영은 1924년 9월께 조선일보로 일자리를 옮겼다. 그무렵 송병준이 경영하던 조선일보는 경영난에 빠져 동아 영업국장으로 있던 홍증식이 신석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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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북간도|이지택(제자 이지택)
명동이 북간도의 중심이 된 것은 교육뿐 아니라 사회활동·독립운동이 모두 명동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김약연 등은 1909년에 명동학원을 세우는 것과 동시에 간민회라는 것을 세웠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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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대표들 10일 만에 재회-남북 적 서울 회담 북 적 대표 입경하던 날
단절 27년만에 북의 적십자 대표단 일행이 서울 땅을 밟았다. 남북 이산 가족 찾기를 위한 북한 적십자 대표·자문위원·수행원·기자 등 일행 54명은 12일 상오 판문점 중립국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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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엽 자문위원 연설 요지
존경하는 쌍방의 수석대표 및 대표 여러분! 그리고 이 회의에 참석한 자간위원과 수행원 여러분! 이 역사적인 남-북 적십자회담 제1차 본 회의에 대한적십자사가 위촉한 자문위원의 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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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성과 거두고 돌아오길… 뜨거운 겨레의 성원
【평양=대한민단신문·통신 공동취재단 이광표 본사특파원】 단절 27년만에 평양땅을 밟았다. 29일 상오10시30분 판문점 판문각 앞에서 북적측이 마련한「벤츤220」승용차를 탄 한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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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휴전회담의 개막(21)
(2) 쌍방의 포로논쟁은 주로 「제네바」협정해석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북괴는 포로문제를 다룬 이 「제네바」협정에 대해서는 아전인수격의 태도들 취하고 있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