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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련 발족…성격과 파장|최대운동조직…「정치세력화」관심
정부수립 이후 최대의 운동조직이라 함수 있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이 21일 결성돼 보수중심으로 형성되어온 우리정국에 커다란 변수로 등장했다. 87년 6월 항쟁에서 재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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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전부처벌도, 용서도 할수없었다
압도적 다수로 통과된 반민법전문32조는 정부에 이송되어 48년9월22일 대통령의 서명으로 공포되었다. 하지만 이승만은 그법률이 마땅치 않았다. 23일자 담화에서 이승만은 이 법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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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공이냐 임정이냐-미서「정통성」부인…정부수립 "물거품"
해방정국에서의 정치논쟁은 이른바 조선인민공화국(인공)의 선포와 중경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요인의 귀국으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왜냐하면 이들이 객관적인 정세를 떠나 하나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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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발굴자료와 새 증언으로 밝히는 일제통치의 뒷무대-3·1운동(2)
○…동경유학생들의2·8독립선언은 3·1운동의 기폭제였다. 유학생들이 독립운동을 준비한 것은 1918번 연말 파리장화화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부터다. 명치대의 김안식·최원순·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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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푸락치 사건계기 곳곳서 민중대회
국회프락치사건에 대해 피고와 담당검사의 주장은 지금도 크게 어긋나 있다. 피고였던 서용길씨(제헌의원)의 주장. 『국회 푸락치 사건의 유일한 증거라던 소위 박헌영에 보내는 담화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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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바민특위(9)|국정의 본산「세종로1번지」34년…명멸했던 주역들은 증언한다
반민 특위와 맞 싸운 전위대는 수도청 산하 경찰. 암살음모까지 드러나는 험악한 대결이었다. 이른바 강경파 특위 위원 암살음모의 내용. 49년10월 하순 수도청 수사과장 실에 최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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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반민특위」(8)|국정의 본산「세종로1번지」34년…명멸했던 주역들은 증언한다
반민특위에 대한 도전은 차차 강도를 더해 갔다. 반민특위가 친일파검거에 나서자 이대통령은『미군정3년 동안의 정치혼란 속에서 건국에 공을 세운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이완용·송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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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반민시위」(5)
반민 법 시행을 위해 국회는 9월 하순「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각 도에서 1명씩 10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의원장 김상덕, 부위원장, 김상구 의원으로 진용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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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국정의 본산「세종로 1번지」34년…명감했던 주역들은 증언한다.
반민법 파동은 건국 초의 가장 불행했던 정치사건이다. 민족에 대한 반역행위를 다스린다는 것은 광복이 가져다준 당위였다. 그럼에도 반민법 시행 1년은 줄곧 격동으로 지샜다. 명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