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전복」의 봄철 인공산란 성공

    보통 가을에만 산란하는 전복의 봄철 산란이 우리나라 수산진흥원기술진에 의해 배제주군 한림읍옹포리 전복 인공배양장에서 처음으로 성공했다. 현재 전복5kg이면 80kg들이 쌀한가마값인

    중앙일보

    1975.12.19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등산 50년

    1927년 본 서울에서 제일 높다는 북한산 백운대(해발836m)에 올라갔다. 지금의 백운대는 누구나 쉽게 오르는 서울근교의 명산이라고 알고있지만 이때의 등산은 내가 산다운 산의 정

    중앙일보

    1975.11.21 00:00

  • 소 내외정책에 변화 조짐

    최근 미·소간에 체결된 장기곡물거래협정은 소련의 대내외정책의 장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조치라고 「모스크바」의 서방전문가들이 보고있다. 대외적으로 볼 때 이 곡물협정은 서방의

    중앙일보

    1975.10.28 00:00

  • 독창회갖는 김자경씨

    한국 「오페라」단의 상징처럼된 「소프라노」김자경교수(이대음대)가 16년만에 독창회를 갖는다. 9월2일 하오7시국립극장에서 『한국가곡의 밤』이라는 부제로. 『1940년 이대를 졸업,

    중앙일보

    1975.08.27 00:00

  • (314)약이 되는 식품

    L씨는 30년 전 교육계에 종사하면서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긴 분으로 지금은 은퇴하여 자그마한 목장을 경영하고 있다. 60이 넘은 나이인데도 늙어 보이질 않는다. 홍안이라고 해도

    중앙일보

    1975.05.03 00:00

  • 남기고싶은 이야기들|도산 등 지도자가 이끈 수양동우회

    1937년 만주를 손아귀에 넣은 일본 침략자들은 급기야 노구교에서 불집을 일으켜 중국본토로 쳐들어갔다. 이른바 지나사변이라는 것이다. 만주로, 중국으로 마수를 뻐칠 때 일제는 한

    중앙일보

    1974.09.26 00:00

  • (상)베트남 화평교섭의 내막은 이렇다

    「키신저」미 국무장관은 작년1월 월남평화협정을 체결한데 이어 금년 1월「이스라엘」-「이집트」군 격리협정을, 그리고 5월에는「골란」고원군 격리문제를 타결시켜 세계의 각광을 받았다.

    중앙일보

    1974.07.12 00:00

  • (38)제자=김홍일-6사장 김일성의 죽음

    보천보 습격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항일연군 제6사장 김일성이 북한의 김성주와는 딴사람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혜산사건의 취조 책임자였던 시원경부의 말처

    중앙일보

    1974.07.08 00:00

  • 이 제6사장 김일성의 이름이 일만 측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35년말께부터 이며 일제의 함남국경지방 경찰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제6사가 장백현 오지에 근거지를 잡은 1936

    중앙일보

    1974.06.29 00:00

  • (28)동북 항일 연군 6사단장|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

    소련으로부터 동만에 파견되어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제2사에 속했던 김일성(김성주가 아님)이 1936년 4월께 제2, 5군 합작의 혼성부대 편성으로 액목 지방을 유격구역으로 할당받

    중앙일보

    1974.06.10 00:00

  • (24)제자=김홍일-중공당·군내의 민족 차별

    공산혁명에는 국경이 없고 「프를레타리아」앞에는 민족이란게 있을 수 없다던 「코민테른」지부 중공만의 한인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대우와 태도는 어떠한 것이었던가. 과연 구위나 현위·특위,

    중앙일보

    1974.05.31 00:00

  • (1054)양악백년

    「테너」이인범 초창기의 성악가 안기영 현제명을 이어서 「테너」로는 이인선·이유선형제, 그 다음에는이인범이 활약했고, 「소프라노」로는 정동모 채선섭을 이어 이관옥 김자경 김천애등이

    중앙일보

    1974.05.22 00:00

  • (19)|그 전설·실존·오명을 밝힌다|조선 혁명군의 최후|이명영 집필

    조선혁명군의 숨통을 틀어막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던 일만 군경은 몇 차례에 걸쳐 대 포위공격작전을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었던 원인에 대해 대략 세 가지의 분

    중앙일보

    1974.05.13 00:00

  • (14) |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장군」 일수 없었던 김성주|이명영 집필

    1932년2월 무송에서 조선 혁명군의 고동뢰 소대장 일행 10명을 참살하고 달아났던 김성주가 어디를 가나 발붙일 곳 없어 그해 여름 조선 혁명군 본부에 나타나 용서를 빌었을 때 양

    중앙일보

    1974.04.30 00:00

  • |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양세봉의 관용을 저버린 김성주|이명영 집필 (성대 교수 정치학)

    무송 일대에서 약탈을 일삼던 김성주 일당을 응징하여 한·중 민족 사이에 알력이 없도록 하기 위해 무송으로 출동했던 우리 민족주의 독립군인 조선 혁명단의 유하현 삼원포 주둔 고동뢰

    중앙일보

    1974.04.24 00:00

  • (1030) 제36화 양악백년 (5) 김영환.

    「우에노」에 들어가던 그핸가 나에게는 또 큰 기쁨이 찾아왔다. 내가 음악공부를 하고있는 것을 누구보다 이해해서 할아버지 몰래 성원을 아끼지 않던 어머니가 대지주인 외삼촌에게 부탁해

    중앙일보

    1974.04.23 00:00

  • 그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비적두목에 권총사들여 약탈일삼던 김성주

    1931년 2월 오가자에서 돈거둬 달아난 김성주는 중국인 친구 장아청과 동행 이었다.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떠난 이들은 소련에 가서 공부할 요량으로 처음엔「하르빈」으로 발을 욺

    중앙일보

    1974.04.23 00:00

  • (11) 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이종락 부대의 종말

    김성주의 두목 이종락의 조선 혁명군 길강 지휘부는 중공당 만주 성위의 인정을 받지 못해 그 대원들도 개별 입당 원칙에 따른 만주 성위 예하 조직 가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물론 『

    중앙일보

    1974.04.19 00:00

  • (10) 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

    김성주가 이종락 부대의 대원으로 오가자에 처음 나타난 것은 1929년 가을이었다. 이종락이 무장 대원들을 거느리고 오덕 이산현 일대의 한인 농촌에다 고흑 농민동맹이란 좌경조직을 펴

    중앙일보

    1974.04.17 00:00

  • 연극

    연초의 1, 2월은 유류 파동까지 겹쳐 예술계의 대외활동은 한껏 위축되고 부진했다. 그러나 3월 들어서야 활기를 되찾아「시즌·오픈」4, 5월에는 예년과 같은 공연 및 발표를 보일

    중앙일보

    1974.03.01 00:00

  • 매주 월요일엔「앙코르」공연「실험극장」

    지난 6일부터 소극장 공연을 시작한 극단「실험극장」은 다시 11일부터 매주 월요일 하오7시 이 소극장에서 김동훈의 1인 극『「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오태석 작)를 공연한다

    중앙일보

    1974.02.09 00:00

  • 두 소극장 공연 활기

    2월에 접어들면서 극 계는「살롱·드라마」로부터 활기를 띠고 있다. 실험소극장은 매주 월·화요일을 땐 전일을 연극으로 메우고 있다. 또「카페·테아트르」는 매주 화·수·목·금요일을 판

    중앙일보

    1974.02.06 00:00

  • (상)후회 없이 살아왔다|한 세기를 살아 온 「백년 장수」들의 인생 체험

    한 세기에 걸쳐 살았다. 끈질긴 삶에의 의지로 1백 년을 누린 수는 변화 무상했던 만상을 목도해 왔다. 자랑할 것도 없고 이름 나지도 않은 평범한 한 평생. 그러나 긴 1백년을 청

    중앙일보

    1974.01.01 00:00

  • (928)제34화 조선변호사회(3)

    3·1만세사건으로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계속 정국이 소란하자 당시 전수학교 당국은 3월3일부터 실시키로 예정했던 졸업 시험을 늦추고 미루다가 나중에는 이를 포기하고 그대로 졸

    중앙일보

    1973.12.1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