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고위 공직자의 책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책임질 수 없다면 책임질 자리에 앉지 말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뉴스1]

층간 소음 갈등이 흉기 난동으로 이어진 인천시 사건으로 말단 경찰관 두 명이 해임됐습니다. 현장을 지키지 않아 시민이 목숨을 잃은 것 때문입니다. 관할 경찰서장은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습니다. 인천경찰청장은 사직했습니다.

국가 치안의 총책임자인 경찰청장은 몇 차례의 사과만 한 뒤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8개월짜리 신입 순경 교육이 부실해 현장 대응 능력을 갖추도록 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경찰 간부들이 입버릇처럼 해 온 말이었습니다. 경찰청장도 모를 리가 없습니다. 몰랐다면 더 문제이기도 합니다. 관할 경찰서장은 군사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병력을 인계받은 전투 책임자입니다. 인천경찰청장은 그 위의 사단장 격이고요.

진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경찰청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단순한 현장의 과실이 아니라 신입 경찰 선발과 교육의 구조에 있기 때문입니다. 책임을 아래로 전가하는 지휘관에겐 조직을 이끌 자격이 없습니다. 미국의 트루먼 전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책임질 수 없다면 책임질 자리에 앉지 말라.”

<‘고깃값 하러 간다’는 말이 있다. 기자 초년병 때 배운 조폭 용어다. 두목·행동대장 등 폭력배의 ‘수뇌부’가 조직 보호를 위해 경찰서에 자진 출두하기로 마음먹거나, 치명적 위험이 있음을 알면서도 경쟁 조직과의 싸움에 앞장서기로 결단했을 때 하는 말이다. ‘고깃값’은 후배 폭력배들이 열심히 뒤집어 알맞게 익혀 놓은 고기를 상석에서 편하게 먹었던 것의 대가라는 뜻이다. 평소의 호의호식을 즐긴 ‘형님들’이 비상시에는 ‘패밀리’를 위해 헌신한다는 폭력배식 ‘노블레스 오블리주’ 의식이 담긴 표현이다.> 제가 10년 전에 중앙일보에 쓴 칼럼의 한 대목입니다. 폭력배도 책임의 의미를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제 방역패스 인증 혼란이 벌어졌습니다. 접속자 폭증으로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몇 달 전 백신 접종 예약 사이트가 마비돼 많은 시민이 새벽까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붙잡고 씨름해야 했습니다. 한 차례가 아니라 여러 번 반복됐습니다. 접속자 폭증은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문제가 발생한 뒤에는 뭐가 잘못된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서버 용량을 충분히 늘리지 못해 계속 사달이 났습니다. 이 일로 질병관리청의 누군가가 문책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어제 똑같은 양상의 혼란이 빚어졌습니다.

코로나19 방역에 구멍이 뚫릴 때마다 질병관리청이나 보건복지부에서는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고 했는데 청와대에서 다른 판단을 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외국인 입국 통제, 백신 조기 확보 등의 중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그랬습니다. 미국의 방역 책임자인 앤서니 파우치는 지난해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해제하려 하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사직을 감수한 행동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Time to #FireFauci’라는 트위터 글을 리트윗했습니다. 파우치는 잘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바뀐 뒤에도 같은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조선시대에 지부상소(持斧上疏)라는 게 있었다지요. 도끼를 옆에 두고 엎드려 임금에게 상소문을 올렸다고 합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아니 되옵니다”를 외친 것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말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대도 아닙니다. 청와대로 가는 보고서에 완곡하게 에둘러 한두 문장을 넣고서 마치 책임을 다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차라리 보고서에 그런 내용을 담지 않은 것보다 더 나쁩니다. 일은 같이 벌여놓고 ‘나는 공범이 아니다’고 발뺌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1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등은 기존보다 강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보고해왔다”며 “그러나 청와대가 ‘후퇴는 안 된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반대하면서 방역 당국의 제안이 채택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늘 자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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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생산연령인구’의 나이 기준을 15~64세에서 15~69세로 늘리는 방안에 대해 검토에 들어갔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앞으로는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을 64세가 아닌, 69세까지로 보겠다는 이야기다. 최근 통계청은 이를 적용해 처음으로 15~69세를 ‘생산연령인구’로 계산한 전망을 내놓았다.> 노인의 기준이 65세 이상에서 70세 이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늦게 노인이 되는 것은 과연 좋은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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