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도 구경한 미국 개기일식…한국선 18년 뒤인 2035년 9월 2일 발생

중앙일보

입력 2017-08-22 15:04:00

수정 2017-08-22 18:20:29

21일(현지시간) 미국 캔사스하이어워사에서관찰된 개기일식.[AFP=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미국 캔사스하이어워사에서관찰된 개기일식.[AFP=연합뉴스]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서부 태평양 연안 오리건에서 시작해 미국땅을 가로지르는 개기일식 소식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들썩였다. 개기일식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은 통상 길어야 2분30초에 불과하지만, 이번엔 북미 대륙을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덕분에 미국 땅 안에서 약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라도 특정 지역에 있는 사람이라면 역시 개기일식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잠깐뿐이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워싱턴기념탑 위에 걸린 일식 현상. 달이 태양의 일부분을 가리고 있다워싱턴DC에서는 태양의 81%만 가려지는 부분일식이 관측됐다.[EPA=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워싱턴기념탑 위에 걸린 일식 현상. 달이 태양의 일부분을 가리고 있다워싱턴DC에서는 태양의 81%만 가려지는 부분일식이 관측됐다.[EPA=연합뉴스]

일식(日蝕ㆍsolar eclipse)이란 태양이 달에 가려지는 것을 말한다. 달이 일직선상에서 해외 지구 사이에 위치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태양이 전부 달에 가려지는 것을 개기일식(皆旣日蝕), 일부가 가려지는 것을 부분일식(部分日蝕)이라 한다.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민들이 특수안경을 끼고 부분일식을 구경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민들이 특수안경을 끼고 부분일식을 구경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미국은 1918년 6월 8일 이후 99년 만에 찾아온 이번 개기일식을 첨단 자본주의와 과학 선진국 나라답게 드문 연구의 기회는 물론, 전국적 축제 이벤트로 만들어 냈다. 천문과학자들이 총출동해 태양 표면의 코로나 현상 관찰 등을 연구했고,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대부분의 미국 국민들이 검은색 안경을 끼고 일식을 관찰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는 일식현상을 통한 코로나 관찰을 오래 하기 위해 초음속 제트기를 두 대 띄워 개기일식을 따라가기도 했다.

미 서부 태평양 연안 오리건에서 시작해 1시간30분간 진행 #NASA에서는 코로나 관찰 위해 초음속 제트기까지 띄워 #고대엔 일식을 큰 천재지변 징조로 여겨…한국선 1887년이 마지막

한국도 미국의 개기일식 관찰에 끼어들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에 개기일식 원정 관측단을 파견했다. 천문연구원 조경석 우주과학본부장은 “이번 일식 관측을 통해 우리가 개발 중인 코로나그래프의 성능을 시험했다”며 “태양 표면보다 월등히 높은 코로나의 온도 분포는 아직 그 가열 원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개기일식 관측을 통해 코로나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국내 아마추어 천문동호회들도 모처럼 찾아온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미국 땅을 밟았다.
개인천문대인 호빔천문대를 운영하는 아마추어 천문관측가 황인준씨는 미국 아이다호 남동부 아이다호 폴스를 찾았다. 그는“눈앞에서 개기일식을 목격했다는 게 믿을 수 없다. 너무 멋지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개기일식은 미국뿐 아니라 중미 및 남미 북부지역 그리고 유럽 서부, 아프리카 서부 등에서 관측할 수 있었다. 다음 개기일식은 약 2년 뒤인 2019년 7월 2일 태평양ㆍ칠레ㆍ아르헨티나 지역에서 관측 가능하다.

 해와 달 지구가 순서대로 일직선상에 서는 일은 드문 현상도 아니지만, 자주 있는 일도 아니다. 지구와 달이 3차원의 우주공간에서 별도의 속도와 각도로 공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태양계의 중심에서 가만히 있는 것 같은 태양도 사실은 우리 은하계 내에서 거대한 공전을 하고 있다. 태양계 밖에서 해와 지구 달을 볼 수 있다면, 궤도를 돌고 있는 태양을 쫓아가며 주위를 돌고 있는 지구와 또 지구를 쫓아가며 주위를 맴돌고 있는 달의 천체운동을 목격할 수 있다. 이런 복잡한 천체운동 속에서 태양과 달 지구가 완전한 일직선상에 서는 경우는 당연히 자주 있을 수 없다. 달이 지구를 공전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매달 일식이 일어나게 되지만 공전 궤도가 어긋나기 때문에 개기일식은 2년마다 한 번씩 발생한다.

천체의 원리를 모르던 고대에는 일식을 큰 천재지변으로 여겨 지상에 흉사가 나타난다고 믿었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2128년의 일식으로 중국의 서경(書經)에 기록돼 있다. 서양에서는 기원전 1063년 일식이 바빌로니아에서 점토문자판에 새겨져 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일식이 관측돼 삼국사기ㆍ고려사ㆍ조선왕조실록 등에 380여 회의 일식기록이 남아 있다.
일식이 찾아오면 왕은 소복을 입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임금의 부덕함이 재앙을 불러일으켰다는 논리다.

조선왕조실록 중 태조실록 4권을 보면, 태조 2년(1393년) 7월1일 ‘일식(日食)이 있어 해가 보이지 아니하였다. 처음에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해가 질 때에 일식이 있을 것입니다”하니, 임금이 소복(素服)차림으로 해가 지기를 기다리다가 해가 지고 난 뒤에야 소복을 벗었다’는 기록이 나와있다. 당시에 이미 일식을 예측할 정도로 천체 운동의 원리를 이해하는 담당 관리가 있었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마지막 개기일식은 조선 고종 24년인 1887년 8월 19일이었다. 이후에도 여러차례 일식이 있었지만 태양을 모두 가리는 게 아니라 일부분을 가리는 부분일식이었다. 이땅에서 언제 또 개기일식을 볼 수 있을까. 천문연구원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볼 수 있는 다음 개기일식은 18년 뒤인 2035년 9월 2일 오전 9시 40분경 북한 평양 지역,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볼 수 있다. 서울 지역에서는 부분일식으로 관측 가능하다. 남북통일이 된다면 이번엔 미국 땅이 아니라 휴전선을 넘어 일식 장소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진풍경을 우리 땅에서도 볼 수도 있겠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