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힘들고 숨이 차지만 암 딛고 코트에 설래요 최태웅 선배처럼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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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운동선수로서 한창인 23살. 어린 나이에 암세포가 몸속에 똬리를 틀었다. 운동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기로에 선 그는 다시 힘껏 운동화끈을 조여 맸다. “예전처럼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은 없다. 그래도 평생을 한 배구를 포기할 순 없다”고 되뇌며.

 한수지(23·KGC 인삼공사)에게 암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그는 지난 시즌 주전 세터로 팀의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올 시즌엔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시즌 전 건강검진에서 갑상샘암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26일 갑상샘 제거 수술을 받고 현재는 재활 중이다. 한수지를 지난 22일 대전의 인삼공사 훈련장에서 만났다.

 갑상샘암은 암 중에서는 생존율이 높은 ‘순한 암’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수술 후에는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호르몬제도 평생 복용해야 하고 수술 전보다 체력이 부쩍 떨어진다.

한수지

 한수지도 그랬다. 그는 말을 꺼낼 때마다 중간중간 “흠” 소리를 반복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오후 2시인데도 터져 나오는 하품을 참지 못하고 이따금 손바닥을 입에 갖다 댔다. 민망했던지 “낮잠을 안 자면 피곤해서 견디질 못해요”라고 했다.

 “숨이 틔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네요.” 한수지가 호소한 가장 큰 어려움은 ‘숨’이었다. “달리기는커녕 걸으면서 통화를 해도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고 했다. 그의 포지션은 세터. 팀의 중심이면서 기합도 넣고 소리도 질러야 하는데 그게 힘들어진 상황이다. 그는 “훈련에 참가하고 싶어도 괜히 폐가 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당분간 한수지는 코트에 나설 수 없을 것 같다. 시즌이 끝난 후에는 림프절에 전이된 암세포를 없애는 동위원소 치료도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그는 복귀 시점에 대한 분명한 목표를 정했다.

 “올 시즌 안엔 어떻게든 코트에 나올 거예요. 원포인트 블로커라도요.”

 그는 림프암을 이기고 코트로 돌아온 현대캐피탈 세터 최태웅(36)을 롤 모델로 꼽았다. 지난 18일 대전 경기에서 한수지와 만난 최태웅은 “괜찮아?”라며 짧고 굵게 마음을 전했다. 한수지는 “아무래도 비슷한 처지이다 보니까 괜히 서로 짠한 감정이 느껴진다”며 “아저씨처럼 나도 꼭 복귀해서 멋진 모습을 보이겠다”고 했다.

 한수지는 인터뷰가 끝날 때쯤 턱밑까지 올린 트레이닝복 지퍼를 내리며 5㎝ 정도의 메스 자국을 보여줬다. “상처는 점점 옅어져 가는 것 같아요. 이쯤 되면 그래도 깨끗하죠?“

 그의 말대로 상처는 아물어 가고 있었다. 그가 코트에 설 날도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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