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점진적·자율적 재벌 개혁 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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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어제 재벌 개혁을 둘러싼 혼선과 갈등에 가닥을 잡아주는 발언을 했다.

이낙연 대변인을 통해 전달된 盧당선자의 발언 요지는 "특정 재벌을 겨냥한 인위적.충격적 개혁은 없다. 재벌 개혁은 하더라도 점진적.자율적.장기적으로 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김진표 인수위 부위원장도 "개혁 조치들은 입법사항이다. 서두른다고 될 일도 아니고, 서두를 생각도 전혀 없다는 것이 당선자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인수위 주변에서는 숱한 개혁 아이디어가 여과없이 쏟아져 나왔다. 상속.증여세 완전 포괄주의, 증권 집단소송제, 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 검토…. 이처럼 설익은 소문들은 가뜩이나 인수위 참여자들의 면면과 성향에 겁먹은 재계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盧당선자가 자신의 인식과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은 정부.재계 간 불필요한 갈등의 소지를 덜어준다는 의미에서, 나아가서는 한국 경제 전체의 입장에서도 긍정적인 일이며 시의적절한 발언으로 여겨진다.

경제 관련 개혁 과제들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어떤 형태로든 계속 추진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새 정부는 우선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선입관을 버리고 원점에서 시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정말 대기업 행태가 달라지지 않았는지, 선진국의 사례는 어떤지 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우선돼야 한다. 개혁 조치들이 가져올 현실적 파급 효과에 대해서도 전문적이고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경제 개혁 조치들은 특히 법과 규정, 그리고 글로벌 기준에 맞춰 진행돼야 한다. 과거 새 정부가 들어설 때면 으레 대기업에 대한 초법적 압박이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기업 운영의 투명성이나 탈세에 대한 응징은 당연한 개혁 수순이다.

하지만 그 수단은 법 정신 아래서 일관성 있게, 국제 기준에 맞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盧당선자의 점진적.자율적.장기적 개혁 원칙이 어떻게 현실화될지 주목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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