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카드 수수료 내린 호주, 연회비 치솟고 혜택은 줄어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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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호주 시드니 시내에서 20년 넘게 기념품 상점을 운영하는 교민 제임스 문(54)씨. 그는 2003년 이후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부담이 크게 줄었다. 한때 매출의 2.5%까지 냈던 가맹점 수수료가 2003년 법 개정 이후 1.04%로 떨어졌다. 그는 “당시 수수료 부담이 줄어든 만큼 물건 가격도 조금씩 내렸다”고 말했다.

 #시드니에 사는 레오 알렉스(31)는 신용카드 한 장에 연회비가 55달러(약6만2500원)다. 해외여행을 할 때 무료 보험에 가입해 주는 것 외엔 큰 혜택이 없지만 그는 “대안이 없다”고 했다. 가장 저렴한 연회비도 45달러가 넘기 때문이다.

 가맹점이 웃으니 소비자가 운다. 내년이면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개편 10년을 맞는 호주가 빠진 딜레마다. 가맹점 수수료를 내린 뒤 카드 연회비는 오르고 카드 결제에 추가요금까지 붙기도 한다.

 호주가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한 건 2003년. 호주중앙은행이 “신용카드 가맹점이 내는 수수료가 너무 많다”며 카드 발급사가 받는 정산수수료를 0.5%로 일괄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키면서다. 전표 매입 수수료까지 합쳐 가맹점이 신용카드 결제에 내는 수수료는 보통 1%대 초반. 2% 넘던 가맹점 수수료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 셈이다.

 문제는 이후에 벌어졌다. 수익이 악화된 카드사가 연회비를 올리고 부가서비스 혜택을 줄이기 시작한 것. 2003년 이후 신용카드 연회비는 부가서비스에 따라 22~77% 올랐다. 사용 금액의 0.8~1%를 적립해 쇼핑쿠폰으로 주던 카드사는 적립 비율을 0.5% 안팎으로 낮췄다.

 추가 요금도 도마에 오른다. 기자가 시드니 시내에서 택시를 탄 뒤 신용카드를 내밀자 택시 기사는 “카드로 결제하려면 10%를 더 내야 한다”고 말했다. 2003년 이후 허용된 신용카드 결제 추가요금(surcharge)이다. 대형 식당이나 숙박업체·항공사 등도 신용카드를 쓰면 3% 안팎의 추가요금을 요구한다.

 전문가들은 한국 신용카드 시장에서도 같은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일부 신용카드사가 최근 영세 가맹점의 수수료를 낮춘 뒤 부가서비스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용카드 결제로 인한 거래 비용이 존재하는 이상 가맹점의 부담이 줄어들면 소비자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필연적”이라며 “최근 직불카드 사용이 크게 늘어난 호주처럼 직불카드 사용을 늘리는 것이 소비자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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