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박근혜, 로비 영향 받았나" 팽팽 기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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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9일 부산 남포동 자갈치시장을 방문해 상인이 건네주는 해산물을 받고 있다. 박 후보는 부산 경제 활성화를 위해 선박금융공사와 국제해운거래소를 부산에 두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자신감의 발로인가, 위기의식의 결여인가. 야권이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위해 연일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달라진 게 별로 없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행보를 두고 엇갈린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박 후보는 최근 당 소속 의원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한 참석자가 “야권 단일화에 대응하려면 몸뻬 바지라도 입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하자 “그런 쇼는 아니다”며 단호히 잘랐다고 한다. 그전에도 캠프 실무진이 야권 후보 단일화 대응 방안을 다양하게 보고했지만 박 후보는 대부분 고개를 저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게 개헌론이다. 일부 당직자들은 개헌을 공론화해 야권의 ‘단일화 마케팅’에 대항하자고 했지만 박 후보는 “정략적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한 측근은 “4월 총선 때도 대패 위기라고 주변에서 조바심을 내면 박 후보는 ‘뭘 그리 서두르세요. 급할수록 돌아가야 돼요’란 말을 자주 했다”며 “이번에도 공연히 페이스를 흔들지 말고 민생·정책 행보를 꾸준히 하는 게 정도라는 생각이 확고한 것 같다”고 전했다.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에 조급해 하다가 촛불 시위 참석, 도청 대화록 폭로 등 무리수를 뒀다가 실패한 것을 박 후보가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경제민주화 정책을 놓고 박 후보가 시간을 끌고 있는 것도 그와 비슷하게 비친다.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그동안 지지층의 외연 확대를 위해 혁신적인 경제민주화 공약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 핵심 중 하나가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제한 등 대기업 규제였다.

 그러나 박 후보는 8일 경제 5단체장과 만나 “기존 순환출자는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해 김 위원장과 시각차를 드러냈다. 장기 침체가 예고된 상황에서 기업들이 기존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이다. 보수층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박 후보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박 후보와 김 위원장 사이엔 팽팽한 긴장 기류마저 형성된 상태다. 박 후보는 9일 “어떤 때는 저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공약이) 발표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국민들이 혼란스럽게 된다”며 김 위원장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에 김 위원장도 한 방송에 출연해 “당초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던 (박 후보의) 얘기가 조금 약세로 돌아섰다는 우려가 든다”며 “많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크게 활동하는 로비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박 후보의 태도에 대해 우려하는 인사들이 적잖다. 한 당직자는 “2002년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여론 흐름을 중간에 끊지 못하면 야권 단일 후보에게 고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재선 의원은 “박 후보가 위기 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며 “보수층 결집을 위해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 이재오 의원 등을 서둘러 만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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