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항공안전 2등국 망신

중앙일보

입력

우리나라가 17일 미국 연방항공청(FAA)으로부터 항공안전 2등급 국가 판정을 받았다.

몇차례의 문제점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안이한 대처로 항공안전 후진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대형 항공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항공사에만 책임을 미루고 정부 차원의 근본대책은 게을리해오다 결국 항공안전 낙후국(2등급)이라는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항공업계는 "신규노선 취항.증편 등이 불가능해 대한항공.아시아나 두 항공사가 합쳐 2천3백억원의 피해를 본다" 며 "내년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급증할 항공수요 중 상당 부분을 외국 항공사에 빼앗기게 됐다" 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 일각과 업계 관계자들은 "그동안 외국과의 협상에서 능력 부족으로 불이익을 본 사례는 있어도 타국에 의해 정책 미비에 대한 제재를 받은 것은 처음" 이라며 "어처구니 없는 사태에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

◇ 등급 하향 조정=건설교통부는 17일 주미 대사관을 통해 FAA로부터 우리나라의 항공안전 등급을 2등급으로 하향 조정한다는 결정을 통보받았다. FAA측은 오는 22일 건교부를 방문해 정식 통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등급이 내린 주 이유는 항공사의 안전대책 미비가 아닌 정부의 항공 안전감독의 문제점 때문이다. 건교부 관계자는 "미국측이 항공관련법 개정 지연과 항공기술직 공무원 미비 등을 문제삼는 것 같다" 고 밝혔다.

◇ 정부 늑장 대응=건교부는 지난 5월 FAA의 1차 안전점검에서 '낙후국 예비판정' 을 받은 뒤에야 부랴부랴 인력을 확충하고 관련 조직을 개편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지난해 6월 이미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로부터도 비슷한 지적을 받았으나 별다른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었다.

정부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FAA는 지난 7월 중순 2차 점검을 하는 등 2등급 판정을 가시화했다.

그동안 소관부처인 건교부는 "기획예산처 등 관계부처의 비협조로 종합 대책을 추진하기 힘들다" 고 하소연만 해왔다.

또 정부 관계자는 지난 16일 '항공위험국으로 판정되기 직전' 이라는 외신 보도를 접하고도 "미국측과 협상의 여지가 남아 있다" 고 말해 외교력 부재까지 드러냈다.

◇ 정치권도 책임=정쟁에만 집착할 뿐 국가적 중요 사안에 대한 처리를 소홀히 한 국회도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건교부가 항공사고조사위원회 설치 등 항공기안전운항 기준 강화를 골자로 한 '항공법 개정' 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지난달 16일.

그러나 이 개정안은 여야 정쟁에 떼밀려 단 한번의 심의조차 열리지 않고 계류 중이다.

강갑생 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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