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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이지 말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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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얘기가 군대 얘기라고들 하는데, 늘 그런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10여 년 전 동생이 입대했을 때가 그랬다. 휴가 때면 흘러나오는 군대 얘기에 어쩔 수 없이 귀 기울였다. ‘깔깔이’(방한용 내피)가 얼마나 따뜻한지, ‘뽀글이’(봉지째 끓여 먹는 라면)가 왜 맛있는지는 익히 들어본 얘기였지만 새로운 대목도 적지 않았다. 지갑에 들어 있는 ‘때리면 영창 간다’는 구호, 다른 부대 병사를 ‘아저씨’로 부른다는 풍습, 무엇보다도 어른들과 대화할 때 수시로 ‘그게 말입니다’ ‘그랬지 말입니다’ 하는 말투가 낯설고 놀라웠다.

 군대 갔다 온 이들에게 귀동냥한 바에 따르면 ‘말입니다’가 잦아지는 건 군대 언어의 기본이 이른바 ‘다나까’이기 때문이란다. 국어학 용어로 옮기면 ‘해요체’ 대신 ‘하십시오체’(합쇼체)를 써야 한다는 얘기다. ‘안녕히 계세요’는 ‘안녕히 계십시오’, ‘그랬어요, 저랬어요’는 ‘그랬습니다, 저랬습니다’가 각각 해요체와 합쇼체다. 둘 다 상대를 높이는 말이되, 합쇼체가 격식을 갖추는 말이다. 예컨대 대선 후보의 출마선언문은 ‘안녕하십니까’ ‘국민과 함께 가겠습니다’ ‘정치를 바꾸겠습니다’이지 ‘안녕하세요’ ‘함께 가겠어요’ ‘바꾸겠어요’는 아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입말로 널리 쓰이는 건 해요체다. 군대 갔다고 ‘그랬어요’ 대신 ‘그랬습니다’가 단번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랬지 말입니다’ 같은 완충형 화법이 등장한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말입니다’의 활약상은 얼마 전 TV를 보다 새삼 확인했다. 군 복무 중인 청년들이 재능 경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병사들로 가득한 방청석에 ‘파이팅이지 말입니다’라는 응원 문구가 눈에 띄었다. 군대 안 가 본 사람은 떠올릴 수 없는, 그 재기발랄한 표현에 웃음이 나왔다. 한편 딱한 생각도 들었다. 말을 바꾸기가, 더구나 새로 배우는 외국어도 아닌 모국어를 바꾸기가 쉬울 리 없다.

 엊그제 국방부는 병영문화 선진화 과제로 올바른 언어교육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를 보니 ‘깔깔이’ ‘아저씨’ ‘짬찌’(신병) ‘꿀빤다’(편하게 지내다) ‘시마이’(일을 끝내다) 같은 은어, 비속어, 외래어가 사용 자제 대상으로 꼽힌다. ‘사지방’(사이버지식방) ‘짤방’(캡처 사진) ‘커담(커피·담배)하다’도 있다. 신조어나 줄임말을 즐기는 문화가 병영에도 유입된 사례다.

 기왕에 언어교육을 한다면 이참에 ‘말입니다’의 대안도 고민해 봤으면 싶다. 신조어를 즐겨 쓰는 청소년의 국어교육에 이중언어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또래끼리는 ‘버카’라고 해도, 어른에게는 ‘버스카드’라고 말할 줄 알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요체와 합쇼체도 일종의 이중언어다. 시도 때도 없이 ‘말입니다’로 말을 맺는 대신 풍부한 합쇼체를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편이 군 복무 이후의 생활에도 도움이 될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