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문학상 후보작] 박완서 '그리움을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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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위하여」는 박완서의 근년 소설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문학사에서 보기 드물게 늙음에 맞대면하여 오히려 삶의 빛나는 물색을 그려내 보인 작가적 역량이 「그리움을 위하여」에도 한껏 스며들어 있다.

최근의 한 산문에서 작가는 "느낌이 실제보다 더 확실해지는 나이, 때로는 망령하고 노닐 수도 있을 것처럼 육신은 아무것도 아니게 가벼워지면서 자유의 경지 같은 게 예감처럼 다가오는 나이가 바로 70대가 아닐까" 라고 한 바 있는데, 그러한 경지를 이 작품에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아니 작품 자체가 그런 경지처럼 비춰진다.

물론 그렇다고 이 소설이 세속적 삶을 훌쩍 뛰어넘는 어떤 이상향을 대가풍으로 노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지극히 세속적인 삶을 지극히 세속적인 산문식 흐름으로 끌고 간 작품이다. 그 점에서 한마디로 '수다' 과에 속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두 노인네가 있다.

화자인 '나' 는 상대가 되는 사촌여동생보다 나이가 8살 위인데, 제법 풍족한 노년살이를 하고 있다. 반면 사촌동생은 '나' 의 집에 파출부식으로 일하며 돈을 얻어 먹고 사는 빈핍한 노년살이다. 그러므로 '나' 의 입장에서 그녀는 여러모로 '아랫것' 이다. 소설은 그런 두 사람 사이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루할 정도의 수다가 오히려 재미와 함께 술술 읽힌다. 이 것 역시 작가의 노련한 필력에 힘입은 바 크겠지만, 더불어 묻어나는 작중화자의 미묘한 심리와 의식에 대한 예리한 해부야말로 놓쳐서는 안될 대목이다. '아랫것' 을 향한 '나' 의 태도는 결코 악인형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한정의 온정으로 치닫는 선인형(善人形) 으로 유형화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는 데 이 작품의 첫 번째 묘미가 있다. 온정적이긴 하지만 상대적 부유함 속에 녹아든 인간의 이기적 속성, 그에 따른 여러 일상적 행동양태 등에 대한 얄미울 정도로 날카로운 서술이나 묘사는 가히 '박완서표' 라 할 정도로 이미 하나의 경지라 할 만하다.

그러나 작가는 우리가 그런 세속적 실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사이 또한번의 비상을 감행하여 말없이 조용하게 침묵하고만 있던 인간적 숨은 본질을 대자연풍으로 활짝 열어젖힌다. '아랫것' 으로 온정적인 보호대상으로만 역할을 하던 사촌여동생이 대반격을 가한 것이다. 어느날 훌쩍 아는 민박집이 있는 남쪽 섬으로 가서 임자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점잖은 늙은 뱃사람과 사촌여동생의 만남,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청정해역처럼 아름다운데, 그 이야기가 작중화자의 표현대로 우리에게 '칠십에도 섹시한 어부가 방금 청정해역에서 낚아 올린 분홍빛 도미를 자랑스럽게 들고 요리 잘하는 어여쁜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풍경이 있는 섬' , 바로 '그 섬에 가고 싶다' 는 본원적 그리움을 일으켜 세운다. 말하자면 아무런 그리움도 없이 살 수밖에 없는 삭막한 세상살이에 사실은 우리들 마음마저 이미 메말라져 있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작품 자체의 구성이나 서술방식 역시 절묘하게 이런 내용의 반전 혹은 비상과 긴밀히 결부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초반부의 지루할 정도의 세세한 서술이나 수다나 집요한 심리의 표출이 곧 오늘날의 세상살이가 담고 있는 내용이자 형식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필자는 언젠가 박완서에 대해 "일상성이 곧 여래장(如來藏) 임을 절묘하게 연출할 수 있는 작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삶의 한 행복이 아닐까" 하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 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임규찬 <문학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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