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5일째 인수위의 말·말·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출범 5일째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경제분과 위원들이 인수위 참여 이후 발언 수위를 낮추고 있다. 강성 개혁론자들이라는 이미지를 의식한 탓인지, 기존 경제 정책의 큰 틀을 유지해 나가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겠다"(2002년 12월 28일 재경부장관 업무보고), "시장에 급격한 충격을 주는 조치는 없을 것이다"(같은 날 기자간담회) 등으로 일찌감치 큰 방향을 잡아놓는 바람에 인수위원들이 자의적으로 튈 수 있는 소지가 봉쇄된 영향이 크다.

또 위원들의 처지가 이론가.사회운동가에서 정책 입안자로 달라지면서 경제 현안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일각에선 새 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에 설익은 정책들로 곤경에 처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인수위 차원에서 발언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경제1분과 간사인 이정우 경북대 교수의 간사 취임 첫 발언은 "국민 통합을 우선으로 해 추진해 나갈 것이며, 성장과 분배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였다.

李간사는 2일에도 "기업구조조정은 기존 5+3 원칙을 유지해 나갈 방침""경제의 틀을 하루 아침에 흔들 수는 없는 일"이라고 발언했다.

특히 현안인 조흥은행 매각 문제에 대해서도 "당선자 취임 전에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원론 수준의 설명을 내놨다.

재계가 강경 개혁론자로 인식하고 있는 김대환 경제2분과 간사(인하대 교수)도 인수위에 합류한 뒤 "최근 언론을 보니까 재계의 우려가 큰 것 같은데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기업은 투명성을 갖고 공정한 경쟁을 하면 된다"고 톤을 낮췄다.

현 정부의 재벌개혁 후퇴를 비판해 온 이동걸 위원 역시 재벌의 금융회사 소유 확대 등에 "그동안 잘못된 일이 있었다고 해도 이를 확확 바꿀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평소 재벌개혁 등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밝히곤 해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정태인 위원은 취재진 앞에서 가능한 한 말을 아끼고 있다.

인수위는 지난 2일 김대환 간사의 발언이 '재벌 구조조정 본부 폐지 유도'로 해석되자 즉각 "인수위에선 대기업 구조본 폐지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다""기업이 자율적으로 구조조정 본부 폐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며 필요한 경우 존폐 여부는 별도로 검토해보겠다는 취지로 발언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처럼 인수위원들이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면서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지만 인수위가 강한 개혁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특히 상속.증여에 대한 완전 포괄주의 과세나 재벌 개혁 강화 등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상속세 포괄주의에 대해서는 盧당선자가 "헌법상 근거를 만들어서라도 (완전포괄주의 과세를)해야 한다"고 확고한 입장을 밝힌 상태다. 또 ▶집단소송제 도입▶출자총액제한▶재벌계열 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 등은 지속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이상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