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블루 프린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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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프린트/샤를로테 케르너 지음, 이수영 올김, 다른우리, 8천원

지난해 말 클로네이드사의 복제 인간 탄생 발표는 그 과학적 사실 입증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사람들의 반응에는 드디어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탄식과 우려가 주를 이뤘다.

때맞춰 번역돼 나온 '블루 프린트'는 1998년에 발표됐던 작품이지만 오늘의 이 '사태'를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고 전제한 뒤 복제인간이 겪게 될 고민과 우울을 기술하고 있다.

그러니까 인간 복제의 윤리적.사회적 문제에 대한 일반론을 제기하는 책이나 인간 대 복제 인간 전체 식의 대립을 설정하는 공상과학영화와 다른 점은 철저히 복제 인간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 시리(Siri)는 엄마 이리스(Iris)의 복제된 딸로 시리 스스로는 "엄마의 동생이자 딸"이라고 말한다. 전도유망한 미혼 피아니스트 이리스는 자신이 다발성 경화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복제를 결심한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이 지나쳤고 자기의 연장 차원에서 결혼 대신 복제를 결심한 것이다.

이제 결과는 뻔하게 되었다. 마치 좌절감에 사로잡힌 부모가 대리만족을 구하기 위해 자식을 들들 볶아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니 더 심하게 엄마의 희망을 복제된 딸에게 강요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엄마 이리스조차도 미래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녀의 딸을 복제해 준 의사가 "자기 자신의 복제인간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라고 의문을 품었던 대로다.

딸 시리도 자신을 근친상간이나 성폭행 등의 결과로 잘못 '부화된' 존재라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결국 등을 돌리게 된다.

이런 식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블루 프린트'는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달 앞에 결국 두 손 들게 될 인간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인간복제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명시적으로 던지기 보다 인간이 과연 그 일을 감행할 깜냥이 있냐는 얘기다.

저자는 후기에서 "이 책은 논쟁을 야기하기 위해 쓰여졌다"고 말한다. 부연하자면 "동물 사육사는 자신이 사육하고 있는 동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고 있을까?"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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