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와 남] 프로게이머서 회사원 된 김동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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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엄마들이 연예인을 꿈꾸는 딸과 전쟁을 치렀다면 21세기 엄마들은 프로게이머(컴퓨터 게임 대회에 직업적으로 출전하는 사람)가 되겠다는 아들과 신경전을 벌인다. 자식은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며 설득하지만 부모 입장에선 불안하기만 하다.

김동수(22)씨는 남들은 못해서 안달인 프로게이머 생활을 접고 평범한 회사원의 길을 택했다. 그것도 우승 상금이 수천만원씩 걸린 '메이저급' 스타크래프트 대회 2승을 비롯해 지난 3년간 10여차례나 우승 행진을 벌이던 중 내린 결정이다.

게이머 지망생 아들 때문에 고민하는 엄마들을 대신해 지난해말 온라인게임 개발업체 '타프시스템'에 연봉 2천만원의 신입사원으로 취업한 그를 만났다.

-한창 주가를 올리다 갑자기 은퇴했는데.

"은퇴란 말은 피해달라. 정치인.연예인들을 보면 '은퇴한다'고 떠난 사람은 꼭 돌아오더라. 내 나이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전직(轉職) 결심의 계기는 뭔가.

"프로게이머는 아직까지 미래가 불투명하다. 프로야구.축구 선수는 현역을 떠나서도 감독.해설자 등 관련 직종으로 진출할 길이 넓지만 게이머는 그렇지 못하다. 컴퓨터 게임을 직업으로 하면서도 게임 산업과의 관련성이 적고, 케이블TV 등 방송에 자주 나오지만 방송인이 되기도 쉽지 않다. 후배 게이머들과 게임 산업간의 연결고리가 되고 싶었다."

-수입이 많이 줄었을텐데.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 회사원이 되면서 내게 된 세금 등을 따지면 과거의 20% 정도다. 그러나 아직 어린 만큼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말 현재 한국프로게임협회에 등록된 선수는 2백여명. 골프의 '세미 프로' 개념인 '준(準)프로'와 프로 진입을 꿈꾸며 각종 대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합치면 1천여명에 달한다. 그러나 연간 1천만~2천만원이라도 소득을 올리는 사람은 20~30명에 불과하다.나머지 대부분은 교통비를 근근이 해결하는 수준이다(참고로 프로야구의 최저연봉은 1천7백만원선이다). 김씨와 같은 '고소득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 그나마 수입의 상당액을 대회 상금에 의존해 불안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자유롭게 살다 회사에 묶이니 답답하지 않나.

"정반대다. 입사 후 처음 자유시간이라는 것이 생겼다. 게이머로 활동할 때는 하루 12시간 이상 연습하다 보니 내 시간이 전혀 없었다. 회사에 들어오니 근무시간 외에는 내 맘대로 쓸 수 있어 좋다."

이 분야 관계자들은 "공부가 싫어 게임으로 시간을 때우는 식의 자세로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선수들은 하루 평균 10시간, 큰 대회를 앞두고는 20시간씩 연습에 매달린다. 그만큼 노력하고도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한국프로게임협회 장현영(29)기획팀장은 "김동수급의 선수는 게임에 쏟은 노력의 반만 다른 분야에 투자했어도 어느 분야든 최고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3년간의 게이머 생활을 평가한다면.

"얻은 것은 자유로운 사고방식이고 잃은 것은 다양한 경험의 기회다. 게임에서는 이미 정석으로 굳어진 전략만 가지고는 절대 승리할 수 없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교 시절과 졸업 후 게임에만 몰두하느라 다른 일을 해보지 못한 점은 조금 아쉽다."

그는 고교 재학 중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학교 측이 교사(校舍) 현관문을 걸어놓자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게임방을 찾기도 했다. 그야말로 '목숨 걸고' 게임을 한 셈이다. 덕분에 입학 당시는 반에서 5등 안에 들었지만 고3 때는 성적표가 '양' '가'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그는 "대회에 참석하느라 학교 졸업식마저 빠진 것은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후배 게이머들과 지망생에게 해주고픈 말은.

"미국의 인기 헤비메탈 그룹 메탈리카는 '진정 음악을 하고 싶다면 공무원.회사원 등 다른 직업을 가지고 남는 시간에 음악을 하라. 프로가 되는 것은 음악적.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뒤에도 늦지 않다'고 했다. 게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라 생각한다."

김씨가 주로 활동하던 게임전문 케이블TV 온게임넷에선 오는 2월 정규 리그가 끝난 뒤 그의 은퇴식을 열어줄 계획이다. 그는 "별것 아닌 일로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 부끄럽다"고 말했다. 4만여명에 달하는 인터넷 팬클럽 회원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농사꾼'이다. 외모.생각 모두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우직해서다.

김선하 기자 <odinelec@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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