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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끼만 먹는 걸로 식습관 바꿀까 제안했다 아내에게 혼난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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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요리를 할 줄 아는 남자와 그러지 못한 남자의 노년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노인복지 전문가인 한혜경 교수(호남대·사회복지학)는 말한다. 은퇴 이후 행복한 노년을 꿈꾼다면 남자에게 요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이다. 아내만 쳐다보는 가련한 ‘삼식이’가 되지 않으려면 간단한 요리 정도는 스스로 만들어 먹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몇 달 전 근속휴가로 한 달간 집에서 쉰 적이 있다. 역시 하루 세 끼 ‘밥’이 문제였다. 일주일쯤 지나자 “하루 한 끼만 먹고 살 순 없나”란 푸념인지 핀잔인지 모를 소리가 아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영식님’ 아니면 ‘일식씨’로 살다가 갑자기 하루 세 끼 얻어먹는 처지가 되고 보니 이 땅에 사는 삼식이들의 설움이 새삼 가슴에 와 닿았다.

 하루 한 끼만 먹는 것이 오히려 건강하게 오래 사는 비결이란 주장을 담은 책이 화제다. 일본인 의사 나구모 요시노리(南雲吉則)가 쓴 『일일일식(一日一食)』이란 책이다. 올 4월 출간 이후 일본에서 50만 부가 팔렸고, 지난달 초 국내에서 번역돼 벌써 3만 부 이상 나갔다고 한다. 유방암 수술의 권위자이며 국제안티에이징학회 명예회장이기도 한 그는 스스로 하루 한 끼 식사법을 10년째 지켜 건강과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며칠 전 서울에 왔을 때 찍은 사진을 보니 쉰여섯이란 나이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밖에 안 돼 보인다.

 그는 “인류는 굶주림과 추위에 맞설 때 더 강력한 ‘생명력 유전자(시르투인·sirtuin)’를 발현할 수 있도록 진화해 왔다”고 주장한다. 노화와 병을 막고 수명을 늘려주는 것이 시르투인 유전자인데 이것이 작동하기 위한 조건이 공복(空腹)이란 것이다. 그는 “하루 세 끼 규칙적으로 균형 있는 식사를 해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생각은 낡은 사고”라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한 번 들리면 내장지방이 연소하고, 두 번 들리면 외모가 젊어지고, 세 번 들리면 혈관이 젊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는 가급적 저녁 한 끼만 밥과 국 한 그릇, 야채 한 접시로 끝내는 ‘일즙일채(一汁一菜)’ 식사법을 권한다. 또 과일이나 작은 생선을 껍질째 또는 통째로 먹는 ‘일물전체(一物全體)’ 식사법이 완전한 영양소 섭취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하루 한 끼만으로 건강과 젊음을 유지하고 장수까지 할 수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나 같은 예비 삼식이에게는 그런 희소식이 없다. 비만과 기아가 공존하는 지구촌의 불평등한 현실과 한정된 자원, 환경 문제까지 생각한다면 인류를 위한 ‘복음’이다. “나도 하루 한 끼만 먹는 걸로 식습관을 바꿔볼까.” 남편의 진지한 제안에 기어이 찬물을 끼얹는 아내. “하루 세 끼 다 차려 줄 테니 술·담배나 끊으시지.” 나는 할 말이 없다.

글=배명복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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