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기업 퇴출 CEO들 갈수록 늘어

중앙일보

입력

인터넷 콘텐츠 사업체를 경영하다 지난 5월 퇴출당한 A사의 K사장(41) 은 최근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회사가 부실해지자 한 때 시세로 따져 10억원에 이르던 지분을 모두 회사에 반납하고 퇴직금 형식으로 받은 7천만원을 회사 투자자들에게 나눠줬지만 거기서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주주들이 회사 미수금까지 책임지라며 따지고 있어 자칫하면 송사에 휘말릴 처지다.

A사는 최근 2년새 40억원이라는 거액을 투자받았지만 현재 남은 자금은 거의 없고 회사 자산도 기껏해야 수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엔터테인먼트 관련 인터넷 사업을 했던 B사 L사장(36) 은 지난 4월 새 회사를 세우려 했다가 주주들의 반발로 퇴출된 사례다.

1999년 6월 회사를 설립한 L사장은 그동안 10억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지난 3월 자금이 바닥나자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내세워 투자를 유치하려 했다가 여의치 않자 회사를 새로 차리려 했다. 그러나 기존 주주들의 반발로 회사를 나왔다.

인터넷 교육사업을 벌이다 물러난 C사 P사장(35) 은 지난해 초 회사를 세워 투자받은 5억원을 1년여 사이 모두 소진해 안절부절 하지 못하다가 주주들을 설득한 끝에 새 CEO를 영입했다.

그는 그동안 콘텐츠 구축에 대한 공로로 일정 지분을 보장받는 대신 사장 자리를 내줬고 자신은 백의종군하고 있다.

벤처불황이 장기화하면서 투자를 받지 못하거나 경영부실로 퇴출되는 CEO가 늘고 있다.

경북대 이장우 교수는 "최근 2년 동안의 경영성과에 따라 벤처기업의 옥석이 가려지고 있다" 며 "벤처기업 경영진의 물갈이 바람은 당분간 이어질 것" 이라고 말했다.

벤처기업 가운데 인터넷 닷컴 업체들의 CEO 교체가 빈번한 편이다. 닷컴기업에 대한 투자가 얼어붙은 데다 수익성이 떨어져 회사경영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청 벤처기업과 관계자는 "2~3일에 한번 꼴이던 대표이사 명의변경 신고 건수가 최근 몇 개월 사이 하루 3~4건으로 늘고 있다" 고 말했다.

하지만 벤처기업 CEO들은 최근 주주들과의 갈등으로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20억원을 투자받아 여성 사이트를 운영 중인 D사 Y사장(35) 은 "주주들의 성화에 당장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다" 며 "투자자들의 전화 때문에 해명 요원을 따로 둬야 할 판" 이라고 토로했다.

A사 K사장은 "일을 열심히 했는데 일부 주주들이 경영진을 범죄인 취급하는 것은 곤란하다" 고 주장했다.

이재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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