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취재일기

탈북자 인권 보호하랬더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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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장세정
정치부문 차장

탈북자들을 위한 정착 지원기관인 하나원에 빈자리가 생겨나고 있다. 모자랄 듯했던 시설이 남아돈다. 수용 규모의 30~40%가 비어 있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탈북자들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올 1~9월 탈북자들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0%가량 감소했다. 그러다 보니 올해 50여억원인 하나원 예산이 남아돌아 불용액으로 처리해야 할 판이라 한다.

 그럼 탈북자가 줄어든 이유는 뭘까. 북한의 주민 생활 여건이 좋아져서가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북한과 중국 국경 지역의 경계가 엄중해진 탓이 크다. 또 중국 당국이 탈북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면서 남한으로 오지 못한 채 발이 묶인 사람도 많다고 한다.

 한국에선 올 초부터 중국 정부를 향해 탈북자의 강제 북송 반대를 촉구하는 집회가 수없이 열렸다. 박선영 전 자유선진당 의원은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단식투쟁을 벌였다. 이 집회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 여론도 움직였다. 이어 중국에서 북한 인권활동을 벌이다 체포돼 고문을 당한 김영환씨는 인권을 짓밟는 중국 공안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노력이 현실적 효과를 별로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탈북자의 인권 보호를 아무리 호소해도 그들의 실질적 인권 수준이 향상되지 않고 있다.

또 그들을 탄압하는 북한과 중국 당국을 아무리 비판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 되레 탈북자에 대한 단속 강화로 이어지고 말았다.

 특히 우리가 탈북자의 인권을 내세워 중국을 강하게 비판한 뒤론 중국 공안의 태도가 더 경직됐다고 한다. 종전보다 원칙을 내세우며 훨씬 까다롭게 법 집행을 하는 바람에 탈북자들에게 불똥이 튀고 있다는 것이다. 탈북자 출신의 국회의원 조명철(53·새누리당) 의원은 이를 두고 “원칙과 현실 사이에 큰 딜레마를 느낀다”고 했다. 또 “탈북자의 인권 보호를 외치는 목소리엔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보편적 당위성이 있는데도, 현실은 예상 밖으로 전개되니 당혹스럽다”고도 했다.

 그렇다고 탈북자의 인권에 대해 입을 다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가만히 있는다고 중국이 탈북자들의 남한행을 눈감아 준다는 보장은 없다. 목소리를 높일 때엔 높여야 하지만, 일이 되게 하려면 유연한 자세도 필요한 법이다. 북한 인권 문제는 뜨거운 가슴만으로 풀기엔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젠 당위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좁히는 게 새로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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