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국·과장에게 호통친 곽노현 비서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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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한길
사회부문 기자

“이제 비선(非線) 라인을 통해 결정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2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내부회의가 끝나 갈 즈음 이대영 서울시교육감 권한대행은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시절의 비선 라인을 겨냥해 비판을 쏟아냈다. 이날 회의는 곽 전 교육감이 물러난 뒤 열린 첫 공식 회의였다.

 이 권한대행은 본청 조직 축소 등 곽 전 교육감이 마련한 조직개편안을 두고 “정당치 못한 비선 라인에서 (의사 결정이) 이뤄졌다는 점은 대단히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젠 각 실·국과 과장, 장학사들이 모든 권한을 갖고 업무를 수행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 권한대행이 작심한 듯 거론한 ‘비선 라인’은 다름 아닌 비서실이었다. 곽 전 교육감의 비서실은 그야말로 교육청 정책과 인사 전반을 좌지우지했다.

 “마치 점령군 같았어요. 비서실이 정책을 결정하면 우리는 이를 뒷받침할 실행 방안을 만들 뿐이었습니다.”

 한 장학관은 지난 2년3개월을 이렇게 표현했다. 교육청 공무원들이 전하는 비서실의 행태는 심각했다. 무상급식·학생인권조례 등을 두고 해당 부서가 다른 뜻을 표하면 비서실 7급 보좌관이 3급 담당 국장을 불러 “교육감 뜻은 그게 아니다”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서울시의회에 인사를 갔던 한 5급 보좌관은 동행했던 국장(3급)과 과장(4급)을 부하처럼 부리다 의원들로부터 “직급에 맞게 행동하라”는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비서진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교육 현장은 모른 채 밀어붙인 정책들은 곳곳에서 마찰을 빚었다. 행여 교육청 직원들이 문제나 부작용을 지적할라치면 호통부터 날아오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곽 전 교육감은 이들을 감싸기에 바빴다. 지난 2월 비서실을 확대 개편하고 7급이었던 비서들을 6급으로 승진시키려다 비판이 일자 “나의 동지들”이라며 방어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 뒤 비서진의 위세가 더 커진 것은 물론이다.

 교육감이 자신의 공약과 교육 이념을 현장에 접목시키기 위해 뜻이 맞는 사람들을 가까이 두는 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비서진이나 보좌진은 어디까지나 조언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정책 결정과 집행은 교육청 내 공식 조직과 공개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정책에 권위가 서고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곽 전 교육감이 이 같은 원칙을 지켰다면 지금처럼 그가 떠나자마자 정책이 뒤집어지고 비서실에 대한 비난이 터져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12월 누가 새로운 교육감이 되더라도 ‘비선 라인’에 기대지 말아야 한다. 공식 라인과 절차를 존중하고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서울 교육이 산다.

이한길 사회부문 기자